정명훈 전 예술감독과 박현정 전 대표. (사진=자료사진)
'서울시향 성추문 사태'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정명훈 전 예술감독 측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부인을 통해 박현정 전 대표의 사퇴를 종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초 여성 CEO가 남직원들을 성희롱·추행했다고 알려진 이 사건은 경찰 조사에서 일부 직원들의 '자작극'으로 드러난 가운데, 현재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 정 전 감독 측이 박 시장의 부인을 통해 시정의 일부라 할 수 있는 서울시향 문제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까지 나오면서 파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 정명훈 부인의 집요한 '문자 압박'
경찰과 박 전 대표 등에 따르면, 정 전 감독의 부인 구모 씨가 지난 2014년 11월 28일, 정 감독의 비서 격인 백모 과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난데없이 '시장 부인'이 등장했다. 바로 박 시장의 부인 강난희 씨다.
구 씨는 "시장 부인한테서 '너무 미안하다'며 '시장한테 전했다'고 연락이 왔으니 처리하겠지요"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백 과장에게 보냈다.
구 씨는 이어 강 씨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복사해 전달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박 전 대표를 겨냥해 박 시장 측을 압박하는 내용도 상당수 담겼다.
강 씨가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해당 문자는 "유럽의 겨울이 그립습니다. 잘 모셔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시장님께 말씀드리고 전달해 드렸습니다. 몸 건강히 돌아오십시오. 강난희 올림"라고 적혀있었다.
이에 구 씨는 "한번 꼭 구경오셔야 하는데요. 저희는 12월 8일까지 여기서 머뭅니다. 시장님이 인권을 중요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이러한 인권유린을 하는 사람(박 전 대표)을 조속히 처리해 주실꺼라며 다들 의심없어 합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이어 다음날에는 강 씨가 구 씨에게 "시장님께 어저께 밤늦게 직접 보여드리고 말씀 또 드렸습니다. 아마 잘 해결될 거 같습니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나흘 뒤인 다음 달 1일 박 시장은 박 전 대표와의 면담에서 사퇴를 종용했다고 박 전 대표 측은 주장했다.
경찰은 이러한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확보한 뒤 검찰에 송치했다. 다만 박 시장 측으로 수사를 확대할 만한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수사 선상에 올리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 박 시장 측 "예우 갖춰 답변했을 뿐, 오해다"이들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기 하루 전인 11월 27일, 서울시의회에서는 정 전 감독에 대한 서울시와 시향의 '특혜 의혹'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문형주(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정 전 감독의 시향 외 개인 영리활동과 단원 해촉의 공정성 등을 꼬집은 것. 앞서 박 전 대표가 대내·외적으로 문제제기 했던 사안들이다.
정 전 감독이 구설에 오르자 구 씨는 당시 발 빠르게 박원순 시장을 이용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백 과장에게도 다급하게 지시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구 씨가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현 상황 한 문장 보내보면 우리가 수정하여 시장한테 메시지를 보낼꺼예요. (정명훈) 감독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박현정) 사장이 시장을 만나기 전에 우리가 당장 움직여야 합니다" 라는 내용도 나온다.
이는 배후에 강력한 권력이 있으니 안심하고 계획을 이어나가라는 의도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시기는 백 과장을 포함한 시향 일부 직원들이 박 전 대표로부터 성추행·희롱을 당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시기와도 일치한다.
박 전 대표는 이에 대해 "시장과 시향 대표 간의 약속 일정을 정 감독 측이 꿰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면서 "시의원의 지적을 무시한 채 정 감독 부인을 통해 사적으로 들어온 민원을 공적으로 해결하려 한 건 '시정농단' 아니냐"고 성토했다.
다만 서울시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정 전 감독 부인이 계속 문자를 보내고 하니 시장 부인으로서는 최대한 예우를 갖춰 답변했을 뿐"이라며 "나름대로 소극적으로 대응한 건데 기록이 남아있다 보니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해가 된 것 자체가 억울하며 시장 부인이 시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건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