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전CBS는 가정과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의 충격적인 실태를 고발했다. 가정과 학교에서 보호받지 못했던 아이들은 사회에서도 '가출·비행청소년'이라는 편견 속에 더욱 움츠러들어야 했다. 만약 사회가 편견 대신 관심과 도움을 준다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달라질까? 대전CBS는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편견을 딛고 비상(飛上)한 아이들의 사례를 매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청소년참여활동단체 혜욤의 박배민씨. (사진=혜욤 제공)
'같이 돈까스 먹으러 가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고가 떴다. 고기뷔페를 가거나 백순대, 떡볶이를 먹으러 간 적도 있다고 한다. 식도락 모임일까? 여느 동호회 모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공고는 때때로 '영화 보러 가요', '중고서점에서 만나요'의 형태로도 올라온다.
공고를 띄운 청소년참여활동단체 혜욤의 박배민씨는 모임의 목적을 이렇게 말한다.
"학교를 나온 친구들에게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생기거든요. 십여년을 몸담은 학교라는 곳에서 자기가 사라진 거잖아요. '어떻게 이들에게 좀 더 친근하고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담겨있어요."
학교 밖 청소년은 전국적으로 30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청소년 지원기관·단체의 문을 두드리는 청소년은 극소수에 머무르고 있다.
나머지 청소년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이끌어내는 것, '장벽'을 허무는 것이 혜욤의 주된 활동 중 하나다.
배민씨는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아자씨'로 불린다. 활동가나 선생님을 대신한 별명이다. 온라인 카페나 SNS를 통해 '아자씨'를 찾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함께 찾을 수도, 성향에 맞게 새로운 모임을 주도할 수도 있다.
최근에 했던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 그는 '학교 밖 청소년들과 함께 맨발로 도심 걷기'를 꼽았다. 말 그대로 맨발로 거리를 걷고, 지하철도 탔다. 황당하게 보일 수도 있는 활동의 의미는 참가자들의 말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 참가자는 "괜찮을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맨발로 걷는 게 이렇게 더 하고 싶은 일이 될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만큼 사회에 한 발 더 다가서고, 타인의 시선에서는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가벼운 활동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하는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성희롱·노동법 강의도 열고, 학교 밖 청소년의 성인이 된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한다.
처음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던 청소년들의 일부는 자원봉사자로, 나아가 활동가로 혜욤과 함께하고 있다. 현재 활동가 5명 중 3명이 학교 밖 청소년 출신이다.
배민씨도 18살에 학교를 떠난 학교 밖 청소년이다.
"고2 여름방학을 2주 정도 앞두고 '정부라는 학원장, 학교라는 학원'이라는 피켓을 들고 등·하교시간 시위를 했어요. 동조를 하거나 비난을 하거나, 솔직히 어떤 반응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는 거예요. 저를 돌연변이로 보는 듯한 시선에 충격이 컸어요."
이해받지 못했고, 소통하지 못했던 기억.
그래서 학교 밖 청소년들의 마음을 잘 안다. '헤아리다'는 뜻을 가진 단체명처럼, 학교 밖 청소년들을 헤아리며 활동하고 있다.
"저희는 그래서 '지원'이라는 말을 안 써요. 지원이라는 말 속에는 나는 문제가 없는데 너는 있으니까 도와주는 거야 이런 뜻이 담겼잖아요. 그래서 함께 활동한다 또는 함께 행동한다고 써요."
혜욤의 활동은 정부 예산을 받는 다른 기관·단체와 달리 '실적'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어려움도 따른다. 배민씨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가 뭘까.
"저희에게는 위로받고 싶은 청소년들이 많이 찾아오거든요. 보통 기관에 가면 '선생님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찾아와' 이런 식인데 '우리는 항상 여기 있어'라는 메시지를 주려고요. 청소년이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다 내 편이 아니라고 느꼈는데 딱 뒤돌아봤을 때 혜욤은 있다 이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청소년들의 키다리 아자씨' 배민씨가 오늘도 학교 밖 청소년을 기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