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박종민기자/자료사진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7일 오후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난해 8월30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당권 불출마 선언 이후 사실상 대선 경선 출마를 준비해왔다. 저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대권 도전 의지를 밝힌 지 162일만이다.
김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을 찾아 불출마 의사를 선언하기 전 복도에서 자신이 준비해온 원고를 미리 꼼꼼히 체크했다. 대권 주자로서는 마지막 기자회견이었지만 지지해준 국민들과 정치적 동지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이었다. 아쉬운 인사를 건네는 취재진에게도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반겼다.
"공존하는 나라, 상생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저의 도전은 끝내 국민의 기대를 모으지 못했습니다. 시대적 요구와 과제를 감당하기에 부족함을 절감했습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셨던 국민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묵묵히 도와주었던 동지들,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제가 평생 갚아야 할 빚입니다."
담담한 어조로 입장문을 읽은 김 의원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김 의원 보좌관들은 자신들이 잘 모시지 못해 중도 탈락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김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뚝심과 추진력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야권에서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이라고 불렸던 대구 수성갑에서 당선되면서 야권 확장성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도 군포에서 3선을 한 중진이지만 "한 지역구에서 4선 국회의원은 월급쟁이에 불과하다"며 민주당적을 지닌채 '보수의 심장' 대구로 떠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갈 때의 심정이라고 했다.
20대 국회의원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김 의원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19대 총선 때 대구 수성갑에서 40.42%를 득표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해 야당 후보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40.3%의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역시 떨어졌다. 이 때부터 김 의원의 뒤통수에는 '제2의 바보 노무현'이란 별칭이 따라붙었다.
지난해 4.13 총선 당시 대구의 중심지 수성갑에서 62.3%(8만4911표)란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상대는 새누리당 잠룡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이었던 만큼 대구에서의 승리는 민주당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진정책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국정당화를 이어받았다는 평가가 당장 나왔다.
하지만 민주당 확장성의 아이콘으로 차기 대선을 고민하기 시작했던 김 의원의 행보는 '정치적 순응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진보진영 내 분위기 속에 위기를 맞았다.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 말해주 듯 참여정부에서 주요 보직을 거치며 쌓은 정치적 자산도 없었고, '좌광재 우희정'이라 불릴 정도로 노무현의 측근 참모라는 네임밸류와 충청대망론이라는 지역적 자산도 갖추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등을 외치며 민심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같은 순발력도 없었다. 대신 문 전 대표의 사드 배치 관련 무원칙성을 주창하다가 반대편 지지자들로부터 18원짜리 후원금과 문자폭탄이 쇄도했고 결국 휴대폰 번호까지 바꾸는 고초를 겪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종민기자/자료사진
1980년 서울의 봄 시절 서울대 정치학과에 복학한 대학생 김부겸은 '사자후'로 통하는 명연설로 일찌감치 이름을 떨쳤다. 당시 정치학과 복학생이었던 김 의원은 서울대 대학본부와 중앙도서관 사이 공터인 아크로폴리스에서 재학생 1만여명을 상대로 기염을 토했다.
당시 학생운동의 투쟁 노선을 둘러싼 논란을 현란한 언변과 정연한 논리로 30여 분간 정리했고 이는 아직도 서울대 전설로 남아있다고 한다. 김 의원은 당시 자신을 따르는 후배들에게 사석에서 '나는 앞으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의 꿈은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둔 현재 일단 접혔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 소추를 당해 치러지는 대선인 만큼 제왕적 대통령제로 상징되는 '87년 체제'를 마감하고 제7공화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의 외침은 이제 공허함으로 되돌아 왔다. "차기 대통령의 리더십은 적폐 청산이 가능한 도덕성과 함께 분열을 치유하고 하나가 된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는 통합력을 갖춰야 한다"는 그의 외침도 당분간 들을 수 없게 됐다.
김 의원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차기 당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