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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민중봉기 에너지, 광화문 광장으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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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100년, '근대 태동의 시기, 민란의 시대'

-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정부, MB, 박근혜 뒤집어, 19세기와 비슷
- 정조의 개혁 실패 이후 국운 쇠락, 민중 저항 에너지 활발해져
- 일제강점기, 순수한 민중운동이 민족운동으로
- 민중 저항, 이번만큼은 미완으로 그쳐선 안돼
- 촛불시민혁명, 진정한 민주주의 가치실현 계기로 삼아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0)
■ 방송일 : 2016년 2월 6일 (월) 오후 19:05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이이화 (역사학자)

◇ 정관용> 우리의 힘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자. 민초들의 입에서 거리에서 이런 구호가 울려퍼진 것. 여러분 촛불집회 떠오르시죠. 그런데 조선의 마지막 100년. 이 조선의 마지막 100년이라고 하면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혼란기. 그래서 결국 강대국의 밥이 되었던 그런 시절로 우리가 여기죠. 그런데 오히려 바로 그 100년 사이가 민중들의 변화에 대한 욕망, 그리고 3.1운동, 4.19혁명, 6월 민주항쟁. 오늘의 촛불혁명으로까지 이어지는 민중 저항의 에너지가 태동한 시기였다, 이렇게 규정한 사학자가 한 분 계셔서 오늘 초대했습니다. 최근에 민란의 시대라는 책을 펴내신 제야 역사학자이시죠. 지금은 시민역사관권리추진 위원장도 맡고 계십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이이화 선생님을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선생님, 어서 오세요.

◆ 이이화>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민란의 시대.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 이이화> 이게 정조가 1800년에 죽었어요. 그다음에 1801년 19세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나라가 1910년에 망했는데 110년 만에 망한 겁니다. 이것을 대충 조선 말기. 그래서 근대의 태동, 이 시기로 잡는 것이죠.

◇ 정관용> 그 100년 사이가 선생님 보시기에는 민란의 시대였다?

◆ 이이화> 네.

◇ 정관용> 민중 저항의 에너지가 막 꿈틀대고 터져나오던 시기였다?

◆ 이이화> 그렇죠. 과거의 역사에서는 이 100년을 민란의 시대라고 해서 마치 혼란기로 생각해요. 그런데 실제 들어가 보면 혼란기가 아니라 근대의 여명을 여는 근대의 어떤 동력이 꿈틀거리는 그런 시대였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즉 말하자면 정체됐던 사회가 아니라 아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그런 사회였다. 가령 유럽의 역사를 봐도 근대는 굉장히 격동을 많이 겪어요, 프랑스혁명을 비롯해서.

◇ 정관용> 시민혁명 과정이 치열했죠.

◆ 이이화> 그렇습니다. 그래서 근대가 제대로 자리가 잡히는 것인데 우리에게도 역사 관계를 비춰보면 그런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런 시민혁명적인 에너지가 분출했었다. 다만 성공하지 못한 거죠.

◆ 이이화> 그게 단계적으로 있어요. 크게 역사를 보면 절대로 성공과 실패를 얘기할 수 없습니다.

◇ 정관용> 물론.

◆ 이이화> 거기에 깊은 일관된 흐름이 있어요. 물이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콸콸 내려가면 그것이 정화가 돼요.

◇ 정관용> 좋습니다. 그 말씀은 이해하겠습니다마는 어쨌든 1910년 나라를 빼앗김으로써 시민혁명적 에너지가 근대국가 건설로 바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110년 동안은 정말 뭐가 막 분출했다, 이 말씀이신 거죠?

◆ 이이화> 그렇죠.

◇ 정관용> 예를 들면 저는 지금 떠오르는 게 동학혁명 이런 건 떠오르는데 1800년대 초반부터 그런 민란들이 있었습니까?

◆ 이이화> 아니, 예를 들면 짧은 시간이라서 요약해서 말하면 1812년에 평안도를 중심으로 해서 홍경래의 난이라는 게 일어납니다.

◇ 정관용> 아, 홍경래의 난.

◆ 이이화> 그래서 평안 일대를 휩쓸어요. 그렇지만 그게 실패로 갔어요. 그런데 그 뒤에도 계속 그런 사건이 일어나는데 심지어 제주도에서도 민중봉기가 일어날 때 홍경래가 살아서 우리를 도와주러 온다. 그러면 그게 마치 홍경래가 자기들의 수호신처럼 그렇게 받들었어요. 그 뜻이 계속 이어져온 것이죠.

◇ 정관용> 그리고 제가 말씀드린 동학혁명, 동학농민전쟁도 그런 시민혁명적 성격을 갖는 거 아니겠습니까?

◆ 이이화> 그것이 이제 그 전 단계에서는 대충 양반을 타파하자. 또는 극단적인 지주, 지주제도를 없애자. 또 국가에서 수취제도. 가령 조세를 걷는 것. 부정으로 다 저지르니까 이런 것을 다 깨자, 이렇게 갔는데 이게 민중운동이죠. 그런데 1894년에 와서는 이런 민중운동과 함께 외세라는 게 들어왔기 때문에 개항 이후에 우리의 많은 자원을 수탈하고 더욱이 일본이 주권까지 다 앗아가요. 그러니까 이 순수한 민중운동이 결국은 민족운동으로 연결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1910년 의병까지 그것이 그렇게 이 단계로 흘러온 것이죠.

◇ 정관용> 홍경래의 난을 시작으로 하는 각 지역의 농민봉기들.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외세에 저항하는 의병운동으로까지. 그게 110년의 역사다. 처음 홍경래의 난이 나오고 이러던 당시는 사실 조선왕조의 힘은 추락하면서 지방토호들이 정말 문란한 그런 어떤.

◆ 이이화> 그건 두 가지로 나눠서 얘기할 수 있어요. 심지어 이게 문벌정치라고 그러는데 이 문벌정치가 다른 게 아니에요. 모든 걸 독점하는 겁니다. 벼슬도 독점하고 토지도 독점하고. 이런 독점체제를 깨자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문벌 자체는 뭐냐 하면 양반. 소위 요새 말하면 기득권 세력이에요. 모든 부라든가 권력에 편중되는 겁니다. 이걸 깨려고 했던 것인데 성공을 못한 것이죠. 이게 국고는 텅텅 비었어요. 그러니까 조세도 개인 주머니로 다 들어가고 하니까. 그러면 이게 외세가 들어왔을 때 거기에 대비할 힘이 없습니다. 가령 일본하고 우리는 임진왜란도 겪었고 고려시대 원나라하고 오랫동안 싸웠는데 1910년대에 들어왔을 때는 을사조약을 비롯해서 진행될 때 전쟁 한 번 못했어요. 그런데 의병은 중앙 정식 군대가 아니라 순수한 백성의 군대입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민중들이 일어나서 나라를 지키자, 외세를 몰아내자.

◇ 정관용> 왕조가 그나마 좀 버티고 있었으면 백성들의 삶이 그렇게까지 피폐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씀하신 것처럼 양반 기득권층의 벼슬과 토지 독점, 조세까지 포탈하는 그건 결국 민중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거 아니겠습니까?

◆ 이이화> 그러니까 문제가 어디 있냐 하면 왕조 체제 자체가 왕권을 행사할 수 없어요. 밑에서 세습 군주제이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그 문벌들이 전부 모든 걸 차지하고 왕을 마치 허수아비처럼 만드는 이렇게 만드는 겁니다. 그것이 결국은 어디로 가느냐 하면 나라가 멸망하는 단계로, 식민지로 전락하는 단계로 가게 되는 것이죠.

이이화 재야 사학자 (사진=시사자키 제작진)

 

◇ 정관용> 그 시작을 정조의 죽음 1800년을 꼽으신 게 정조는 그래도 그런 걸 개혁해 보려고 하다가 발표한 거죠?

◆ 이이화> 1801년에 관노비 해방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게 정조가 다 만들어놓은 거예요. 두 가지죠. 하나는 정말로 노비들이 인권이 유린되고 하니까 인간답게 살지를 못하니까 이걸 개선하자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노비들이 다 도망갔어요, 스스로. 그러니까 저항입니다, 이게. 레지스탕스는 다른 게 아니에요. 도망가버리니까 문서가, 노비문서가 비어 있어요. 이걸 노비문서를 통해서 일도 시켜야 되고 그것으로 신공이라는 몸값도 받아야 하는데 이게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죠. 국가 재정이 마비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해서 해방이 됐는데 이것은 유럽에서도 평등운동, 노예해방운동이 거의 같이 일어난 거예요. 그런데 우리도 이런 점에 있어서는 스스로 유럽의 사주가 안 들어왔어요, 그때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게 내제적 발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단계를 거쳐오는데 아까 문벌정치들이 전부 정조가 만들어놓은 걸 전부 뒤집어놨어요.

◇ 정관용> 뒤집어버리는 거죠.

◆ 이이화> 다 완전히. 그건 내가 후배들한테 자꾸 물어서 이렇게 얘기하는데 우리가 근대에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정말 민주정부를 한번 만들어보려고 그러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와서 다 뒤집어 엎어놨다. 이게 19세기하고 거의 같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 정관용> 그럼 그 당시에 홍경래의 난, 또 각 지역의 난 이런 건 왕조 타도하자, 이런 건 아니었던 거죠, 그러니까? 그냥 양반들의 폭정에 그냥 저항하는 그런 거였었죠?

◆ 이이화> 그런데 표면으로는 양반 신분제도를 타도하는 것이었는데 그때 그 내면에 깔린 것은 이 씨 왕조가 바치는 게 두 가지예요. 기초예요, 이게. 신분제도하고 토지제도. 그러니까 왕도 상당히 그래도 민중들 조심스러웠어요. 유교사회는 충이라는 걸 굉장히 강조하기 때문에 역적까지는 안 가려고 하는 그런 것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기본 흐름은 지도자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굉장히 홍경래를 비롯해서 왕조 타도. 전봉준도 왕조 타도하려고 그랬지 무슨 적당하게 타협하려고 그런 건 아닙니다.

◇ 정관용> 신분제 철폐, 그리고 양반들의 토지 독점 해소. 이런 주장들을 명시적으로 내걸었었다?

◆ 이이화> 네.

◇ 정관용> 그러던 것들이 이제 외세에 저항하는 의병운동으로 연결됐다.

◆ 이이화> 후반기에 들어서는.

◇ 정관용> 의병운동의 주도세력은 그런데 또 사대부들 아니었나요?

◆ 이이화> 두 가지예요. 하나는 내 책에도 그렇게 썼는데 1차 의병은 아까 말한 과거의 그런 흐름. 양반제도를 없애자 막 이런 걸 갖다가 반대한 것이에요. 하늘이 내린 것인데, 이 신분제도는. 그런 걸 개화정부가 또는 동학농민운동 단계에 이걸 주장하니까 이걸 타파하자, 이걸 주장한 것이고.

◇ 정관용> 1차 의병이?

◆ 이이화> 그게 누구냐 하면 소위 공자, 맹자 이건 유림대예요. 그 중심대예요. 그 자신들이 기득권 세력들이에요. 그런데 2차, 3차 단계에 오면 일본이 을사조약을 맺고 우리의 국권을 다 하니까 그때는 뭘 했냐 하면 반외세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에요. 그런데 결국은 일관된 민중운동의 흐름이 민족운동의 흐름으로 결합된 것이에요. 그러니까 의병도 다 같은 의병이 아니라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서.

◇ 정관용> 지금 선생님 말씀하신 2차, 3차 의병은 반외세 민족운동으로 가는데 그때의 신분제 철폐 이런 것들도 들어있었나요?

◆ 이이화> 그때는 같이 있지만.

◇ 정관용> 결합이 되나요?

◆ 이이화> 그러니까 민중운동이 결국은 민족운동과 결합이 된다 그 말이죠.

◇ 정관용> 1차 의병은 거기서는.

◆ 이이화> 소위 유림.

◇ 정관용> 유림이 주도해서.

◆ 이이화> 기득권 양반세력들이 주도했는데.

◇ 정관용> 농민들의 신분제 철폐를.

◆ 이이화> 그래서 거기 호응을 안 했어요.

◇ 정관용> 그걸 막으려고 하다가 2차, 3차부터는 그게 결합됐다?

◆ 이이화> 그렇죠. 그래서 가령 예를 들면 경상도에 가면 신돌석이라고 머슴 출신은 아니고 평민이에요. 엄청난 어떤 무장항쟁을 벌일 때 정말로 큰 성과를 냈어요. 또 전라도도 농업중심지역인데 개항 이후에 우리 쌀이라든가 목화라든가 이런 걸 전부 일본이 수탈해 가고 그 대신 옥양목 같은 걸 갖다주고 하니까 여기에 저항이, 순수한 농민 출신의 저항이 일어났는데 그게 엄청난 능력을 발휘했던 것이죠. 그래서 일본이 가장 무서운. 그래서 그때 남조선은 토벌작전에서 엄청난 대량학살을 한 겁니다.

◇ 정관용> 바로 그랬기 때문에 1800년부터 1910년의 그 사이가 즉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신분제 철폐하고.

 

◆ 이이화> 자, 봅시다. 아까도 거듭 얘기했지만 양반사회는 토지문제가 있다고 그랬잖아요. 벌써 우리는 식민지인 19세기 단계부터 양반이 무너지기 시작한 겁니다. 오늘날 양반 있어요? 없죠. 귀족 있어요? 없죠. 돈 있는 자가 귀족이라든가 권력 잡은 사람이 귀족이 된 것으로 바뀌어진 것이죠. 토지문제도 그렇습니다. 조선시대, 고려시대에 엄청난 토지를 독점하고 있었어요. 대지주들. 일제시대까지 지주를 다 했어요. 그런데 해방 후에 단계를 거쳐서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기본에 따라서 무상몰수 해서 무상분배를 했지만 또 남쪽에는 일부는 유상으로 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지주제도를 깨버렸잖아요. 결국은 그 민중의 요구가 현실에 와서는 다 맞아떨어진 거예요. 그리고 또 우리는 일본은 천왕제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왕조 체제가 무너져버렸잖아요.

◇ 정관용> 민주공화국을 세웠죠.

◆ 이이화> 그렇죠. 우리가 늘 오늘 민주주의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듯이 이렇게 온 겁니다. 그 흐름이 결국 현대 와서까지도 이어져왔고 또 하나는 나는 4.19 세대라고 볼 수 있는데 그때도 이번에도 촛불시위 때도 전봉준이 투쟁하는 것이 농민 중심으로 트랙터 몰고 올라오잖아요. 100년 전에 그 전봉준이, 그러니까 현대에서도 여전히 우리 정신 속에는 살아남이 있는 것이죠.

◇ 정관용> 일제강점기에도 3.1운동을 시작으로 하는 독립운동으로 이어져갔고 그다음 이승만 독재에 저항하는 4.19혁명으로 이어지고 6월항쟁으로 이어지고. 오늘날 촛불집회는 어떻게 보세요?

◆ 이이화> 그래서 제가 얘기하는 게 제 책에도 썼지만 이게 미완의 혁명이라고 볼 수 있어요, 다. 동학운동부터 시작해서 다 미완이잖아요. 동학농민은 일본군에 의해서 깨졌고.

◇ 정관용> 깨졌죠. 4.19는 5.16으로 깨졌죠.

◆ 이이화> 4.19운동도 일제에 의해서 깨졌고 임시정부는 들어섰어요, 우리는. 4.19는 깨졌죠, 6월항쟁도. 우리가 호원을 철폐하고 직선제로 만들어냈어요.

◇ 정관용> 그런데 노태우 당선자가.

◆ 이이화> 그렇지만 노태우가 들어섰잖아요. 그래서 이게 미완이에요. 그래서 이번만큼은 우리가 미완으로 그치지 말고. 저는 벌써 명명했습니다.

◇ 정관용> 뭐라고요?

◆ 이이화> 촛불시민혁명이라고요. 이게 농민혁명이 아니에요, 이제. 시민혁명으로 가면 그걸 완성을 해야 해요. 그러면 완성이 뭐냐 하면 시민혁명, 우리 정말로 민주화 가치를 제대로 잡고 극단적인 부의 편중 같은 것을 바로잡고 인권이 보장되는 이런 사회를 만들어내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이거를 미완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민주화 가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역사적인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저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 정관용> 바로 그 촛불시위 혁명을 완성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거 완성시키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이이화> 과거를 청산해야죠. 과거는 뭐냐. 바로 눈앞에 비리를 저지른 그자들을 감옥도 보낼 겸 보내고 프랑스 혁명이 완성되는 것은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올린 것이에요. 이건 척결을 한 것입니다.

◇ 정관용> 그렇죠.

◆ 이이화> 그것이 완성단계예요. 이게 유야무야 넘어가고 그 사람들 봐주고 뭐 봐주고 넘어가자, 이렇게 되면 이건 미완입니다. 척결할 건 척결하고 또 손을 잡을 수 있는 세력은 또 손을 잡아서 앞으로 우리의 경제문제라든가 통일문제라든가 이렇게 가야 하는 것이지. 미적미적거리고 이것도 놔두고 저것도 놔두고 이러면 또 여전히 우리가 6월항쟁 같은 그런 재판이 일어난다, 저는 이렇게 보고 있어요.

◇ 정관용> 척결할 건 확실히 척결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분명히 신봉하는 그런 세력들이 집권하고 그래서 개혁조치들을 해 나가고. 이것이 완성이다.

◆ 이이화> 우리가 할 일이 너무 많잖아요. 재벌들의 독점체제라든가 소위 관료들의 권력남용이라든가 이런 걸 전부 깨야 진정한 민주주의 가치로 가는 것입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할 수 있겠죠, 우리?

◆ 이이화> 저는 그래서 늙어가지고 팔십 늙은이가 그런 희망을 가지고 글도 쓰고 이렇게 강연도 하고 그럽니다.

◇ 정관용> 이 책 준비하실 때는 꽤 오래전부터.

◆ 이이화> 제가 이 책을 엊그제 다 쓴 게 아니고 80년대 유신 때부터 이쪽 공부를, 자료를 다 뒤지고.

◇ 정관용> 물론이죠.

◆ 이이화> 제가 머릿말에다가 짜깁기했다고 했어요. 일관된 자료가 없어요. 이것도 모으고 저것도 모으고 같은 유를 모아서 짜깁기를 해서 계속 논문을 썼고 그것이 작년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정리를 해야겠다 해서 정리를 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나오기는 우연히 나왔지만 이 시대를 예견을 하고 쓴 건 아니고 1년 전부터 준비를 다 했었습니다.

◇ 정관용> 바로 그런 1800년대부터 시작된 그 힘이 사실 오늘 광화문에서도 계속 울려퍼지는 거 아니냐, 그 말씀이신 거죠?

◆ 이이화> 그것이 역사정신이고 시대정신이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선생님.

◆ 이이화> 감사합니다.

◇ 정관용> 이이화 선생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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