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명절 설이지만 학원가와 도서관은 고향가는 철도역이나 버스터미널만큼 붐볐다.
통계청 조사결과 '사실상 실업자'가 450만 명에 달했고 청년실업률도 사상최고치(9.8%)를 기록한 가운데, 2030 청년들은 고향가는 열차표 대신 학원가를 돌며 특강 수강권을 끊었다.
노량진의 한 고시원 (사진=자료사진)
◇ "도서관은 휴관…어디서 공부하죠?" 귀향보단 공부 걱정인 청춘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이재우(27) 씨는 올 설에는 귀성을 포기했다. 가족들과의 시간대신 학교에서 '그룹스터디' 동료들과 함께 상반기 공채를 대비해 자기소개서 등을 작성하며 명절을 보냈다.
명절 분위기 탓에 마음이 들떠 공부에 지장이 생기진 않을까하는 생각에 출첵스터디(출석체크)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 씨는 밤 9시까지 빼곡하게 하루 일정표까지 짜놓았다.
서로의 기상시간과 도서관 입실시간 등을 체크하는 출첵스터디가 공부도 공부지만 명절기간 마음을 다잡는 '심리적 피난처' 역할도 한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설 연휴 4일 내내 이루어지는 한 학원의 특강은 일찌감치 수강신청이 마감됐다.
이 씨는 "스스로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며 "친척들의 이런저런 질문에도 뭐라 답해야할지 고민이라 올해는 전화만 드렸다"고 답했다.
이어 "명절연휴에도 학교 도서관에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며 "아쉽지만 이번 귀향을 포기한 것이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회계사시험 준비를 하는 윤모 씨는 이번 명절기간 동안 동네인 경기도 일산 근처 카페를 전전했다. 명절기간 동안 동네 도서관이 휴관을 해 공부할 장소가 없었기 때문.
윤 씨는 "설 당일엔 도서관도 휴관이라 그나마 영업하는 카페를 찾아다녔다"며 "자주 가던 식당도 문을 닫아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했다"고 답했다.
서울의 대표적 학원가이자 고시촌이 밀집한 동작구 노량진은 평일과 큰 차이 없이 수험생들로 가득했다.
지난해 공기업 취업에 실패해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었다는 이모(32·가명)씨도 부산 귀향길을 포기했다. 마찬가지로 학원가 근처 독서실에 자리를 잡고 4월에 있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 씨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공무원 시험을 그만둘 생각이다. 그는 "고향 걱정보단 우선 당장 있을 시험 걱정이 더 크다"며 "올 4월과 8월에 있을 시험을 마지막으로 공무원 준비도 그만 둘 계획"이라며 무거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노량진 학원가에서 컵밥으로 식사를 떼우는 취준생들 (사진=자료사진)
◇학원 설 특강 자리 이미 동 나…설음식 담은 도시락으로 허기달래며 공부공무원 시험 학원 등 대부분의 취업준비 학원들의 설 특강은 이미 한참 전에 동이 난 상태.
대부분의 학원들은 연휴 첫날인 지난 27일부터 시작하는 일정으로 특강을 준비했고 수험생들은 선착순 마감되는 연휴특강의 기회를 잡기위해 일주일 전부터 신청에 열을 올렸다.
한 학원의 설 특강 시간표는 연휴기간 4일 동안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이어지는 그야말로 '스파르타 일정'이었다. 그럼에도 수험생 인터넷카페에는 돈까지 얹어가며 특강 자리를 사겠다는 수험생·취준생의 글로 가득했다.
한 공무원시험 학원 관계자는 "지난 추석에 이어 이번 설에도 시험대비 특강을 마련했다"며 "추석 특강과 비교해 이번 명절에 수강생이 더 늘어났다"고 답했다.
설 특강 기회를 놓친 학생들은 웃돈을 줘서라도 사겠다는 입장이다. (취업 학원가 카페글 캡처)
편의점 등 식료품업체들도 앞 다퉈 설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취준생들을 위한 설 도시락까지 내놓았다.
앞서 만난 윤재호 씨도 "생각보다 설 반찬 등이 다양하게 준비된 도시락에 놀랐다"며 "설 당일 식당들이 문을 안 열어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식 실업자 중 취업준비생은 40만 1000명에 달했고 고시학원·직업훈련기관 등 학원생은 22만7000명으로 나타나 역대 최대치를 갱신했다.
역대급 고용한파, 그리고 2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각종 시험일정과 4월 공무원 시험 등이 겹치면서 대부분의 취준생들이 귀경을 포기한 가운데 오늘도 도서관과 고시원에서 2030청춘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