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에 대한 특검 수사와 재판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 농단 주역들의 '수싸움'도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사정 당국을 상대로는 '모르쇠'로, 자기들끼리는 결국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책임 떠넘기'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 박 대통령 최측근 안종범, '등 돌린 지 오래…'
먼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최근 진행된 공판과 헌재에서의 증언 등을 종합해보면 '스텐스'를 확실히 정한 것으로 보인다.
앞선 11일 공판에서 국정농단의 중심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결정적 증거인 자신의 업무 수첩에 대해 증거 채택을 거부할 때만 해도 대통령을 위한 '시간끌기'로 보인다는 분석이 분분했다.
하지만 이후 16일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된 5시간이 넘는 신문에서 나온 안 전 수석의 증언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안 전 수석은 재단문제와 삼성 승계, SK사면 등에 '대통령이 배후'라는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라 '자기 방어'를 위한 통상적인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
한 변호사는 "업무 수첩은 박 대통령의 지시로 일을 한 것이라는 증거도 되지만 자신이 뇌물의 중간 고리 역할을 하면서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며 "안 전 수석측은 수첩 전체가 증거로 채택되는 건 불리하다고 보이기 때문에 부동의 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요즘 특수수사 사건들을 보면 결정적 증거의 내용에 대한 진위여부를 떠나서 수집 과정에서의 위법성 주장을 통해 처음부터 불리한 증거를 제거해 버리는 것이 최근 변호의 전형적인 전략"이라며 "업무 수첩의 증거 능력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업무 수첩에 적혀 있는 대통령이 지시한 사실은 인정하겠다는 것은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떠넘기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 김종, 시종일관 "대통령이 한 일, 나와는 무관"최순실씨 일가로부터 '미스터 판다'로 불렸던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가 "(최씨의) 수행비서 같았다"고 할 정도로 권력에 빌붙어 '시녀'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김 전 차관은 시종일관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전날 열린 공판에서는 "삼성과 대통령이 직거래 했다"며 자신의 연결고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최씨 등과 공모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삼성 후원금을 강요한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은 이 자리에서 "삼성 후원금은 청와대와 삼성이 직접 소통해 처리한 일"이라고 진술했다.
김 전 차관측 변호인은 "안종범 전 수석의 메모 등 관련 증거에 의하면 이 후원금은 청와대와 삼성 수뇌부가 직접 소통해 지원된 것임이 이미 드러났다"며 강요 혐의를 박 대통령과 안 전 수석에게로 떠밀었다.
특검에서 삼성 측을 '강요의 피해자'가 아닌 '뇌물공여자'로 판단한 만큼, 강요 혐의가 적용된 김 전 차관 자신은 무죄라는 취지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특검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430억원대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발판으로 삼아 자신의 처벌 수위를 낮추고 '삼성 수렁'에서 빠져나가겠다는 '꼼수'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장시호, 일찌감치 혐의 인정…아들 위해 이모와 결별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는 일찌감치 혐의를 인정하고, '마이웨이'를 달려 왔다.
장씨는 최씨·김 전 차관과 공모해 자신의 한국동계영재스포츠센터에 16억2800만원을 후원하도록 삼성그룹을 압박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또 장씨가 최씨의 태블릿PC를 특검팀에 제출하면서, 그동안 '태블릿PC를 사용할 줄 모른다'고 주장해 왔던 최씨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다.
이 태블릿은 최씨와 삼성간의 뇌물 거래를 증명하는 '스모킹건'(사건 해결을 위한 결정적 증거)이 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영장이 청구되는 '나비효과'를 발휘했다.
이 과정에서 장씨는 "아들이 너무 보고 싶고, 이러다 영영 아들을 못보는 게 아니냐"는 걱정과 "이렇게 된 마당에 빨리 협조해서 사태를 마무리 짓고 선처를 받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태블릿PC를 제출하게 됐다고 대리인 측은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법조계 또다른 관계자는 "장시호씨의 경우 다른 국정농단 관련자들보다는 형량이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런 상황에서 어린 아들을 향한 모정이 함께 작용해 수사에 적극 협조함으로써 형량을 더 낮춰보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