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의 1주기를 추모하며 그가 남긴 말과 글을 모은 두 권의 책-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신영복="" 유고=""> <손잡고 더불어:="" 신영복과의="" 대화="">-이 출간되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신영복="" 유고="">는 신문과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글과 강연 녹취록 등 기존의 저서에 포함되지 않았던 글들을 모았다. 신영복 선생의 깊은 사유와 정갈하게 조탁된 언어를 다시 반추할 수 있는 뜻 깊은 책이다.
「지금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할 때」와 「교사로 산다는 것」은 교사를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한 말씀으로, 목표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비판적 성찰을 통한 콤플렉스의 청산을 주문한다. 학교는 오늘로부터의 독립, 사상으로부터의 독립이 보장되는 최후의 진지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책의 제일 마지막에 수록된 「석과불식,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 할 희망의 언어」는 마치 지금의 한국 상황을 예견한 듯한 문장이 읽는 이를 전율케 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평화와 소통과 변화의 길이다.
광화문(光化門)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길이다.”
이 책에는 신영복 선생의 미발표 유고 7편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선생의 유품 속에서 나온 낱장으로 된 글들로 A4용지보다 약간 긴 갱지에 또박또박 써내려간 글씨가 선생의 성품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통혁당 사건으로 감옥에 수감되기 전, 즉 1968년 이전에 쓴 글이다. 젊은 날의 습작이지만, 20년 뒤 만나게 될 신영복 서간문학의 맹아(萌芽)를 느낄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제목이 따로 없어 편집자가 제목을 임의로 붙인 글이 있고, 또 앞부분이 일실되어 완성된 형태가 아닌 글도 있다. 원본 사진과 함께 이 책에서 처음 공개한다.
“이건 노력하는 게 아니다.
내게 부과된 땀을 나는 에누리하고 있는 거다.
걸어 보라, 청량리 천변(川邊)의 빈촌(貧村)을.
땟국이 흐르는 개천과, 땟국만 씻으면 혜화동 아이들만큼이나 이쁠 개천가의 때 묻은 어린 얼굴들.
인간의 자유, 그것의 충족은 양(量)의 증대(增大)에 달린 게 아니다.
부자유도 적응(適應)에 의하여 자유로워질 수 있다.
세칭(世稱), 미화(美化)되고 있는 자유의 근본(根本)도 그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자유의 내용은 평등과 적응이다.
평등은 적응의 필요조건이며 적응은 자유의 충분조건이다.”
_「귀뚜라미」 중에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388쪽 | 15,000원
<손잡고 더불어-신영복과의="" 대화="">는 선생이 20년 20일의 수형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이듬해인 1989년부터 타계하기 직전인 2015년까지 나눈 대담 중 선생의 사상적 편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담 10편을 가려 뽑아 수록한 대담집이다.
여기에는 선생이 정운영, 홍윤기, 김명인, 이대근, 탁현민, 지강유철, 정재승, 이진순 등 인터뷰어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언론인이자 경제학자인 고(故) 정운영(1944~2005)과의 1992년 대담에서는 본인 스스로 거의 밝히지 않았던 유년기와 성장기, 또 대학 재학 시절과 통혁당 연루 시기의 깨알 같은 전기적 사실들이 흥미롭게 펼쳐지고 있다.
정운영: 60년대의 서울상대 출신 가운데 지금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여럿입니다. 혹시 김근태나 장명국에 대해 기억에 남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신영복: 김근태와 장명국은 65학번으로 동기였다고 기억됩니다. 장명국은 1~2학년 때부터 자신의 이념적 입장을 비교적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구속되면서 조사를 받는 등 고생도 하고, 그 후로도 그 일 때문에 여러 가지 애로가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김근태는 제가 가지고 있는 책들을 빌려 읽을 정도로 매우 학구적이었고,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는 능력이 돋보였지요. 제가 세미나를 지도하던 당시는 두 사람 모두 1~2학년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활동을 개시하기 이전이었습니다. 그때의 세미나는 근대경제사, 즉 자본주의 성립사를 주제로 하였습니다만 토론 과정에서는 헤겔을 비롯하여 고리키에서부터 쇼스타코비치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문제들을 다루었습니다. 대담자인 정운영 교수도 학번은 다르지만 그중의 한사람이었다고 생각되는데요.
홍윤기, 김명인 등과의 대담에서는 “처음처럼”이나 “더불어숲”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아포리즘으로 알려진 대중적 에세이스트 신영복이 아니라, 여전히 좌파 경제학자이자 변혁운동가로서의 지적 유산과 그로부터 기인한 현실에 대한 과학적 통찰력에 기초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세계의 정세와 분단 한반도의 현실과 전망, 대안 체제를 모색하는 현실 운동의 원칙과 방향에 대한 깊고도 냉철한 진단이 펼쳐지고 있다. 이 책의 대담들을 통해 에세이스트 신영복이 아닌 사상가 신영복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선생의 마지막 대담은 2015년 10월 26일 김영철 서울시평생교육원 원장과의 대담이다. 이때 인터뷰어인 김영철 원장이 선생께 마지막 질문으로 이렇게 묻는다. “글씨는 어떤 태도와 자세로 써야 합니까?”
“잘 쓰려고 해선 안 됩니다. ‘무법불가, 유법불가’이지요. 글씨 쓰는 법이 없어도 안 되고, 글씨 쓰는 법이 있어도 안 됩니다. 교육과 학습의 이상적 형태도 바로 이런 자유로움과 다양성입니다.”
선생의 삶은 글씨에 대해 이야기한 이 마지막 답변과 닮았다. 선생은 좌우라는 인간이 만든 어리석은 사상적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중심의 교조주의를 벗어난 변방의 사상가로서 자유롭게 살다 가셨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경계의 언저리를 맴돌며 선생을 평가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길게 보면서, 먼 길을 함께 걸었으면 합니다.
저도 그 길에 동행할 것을 약속드리지요.” _마지막 인터뷰 중에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354쪽 | 15,000원 손잡고>냇물아>손잡고>냇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