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 2014년 12월 17일 자 내용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미리 파악하고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후속 조처까지 사전에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헌재의 통진당 재판 결과가 사전에 청와대로 유출됐다는 것을 뜻해 헌재의 정치적 독립성도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됐다.
청와대 역시 삼권분립을 노골적으로 훼손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이런 사실은 CBS 노컷뉴스가 5일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유족의 동의를 받아 확보한 비망록을 통해 밝혀졌다.
◇ 김기춘, ‘통진당 해산’ 선고 이틀 전에 알아김 전 수석은 2014년 12월 17일 메모에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정당해산 확정,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이라고 언급한 사실을 기록했다.
또 ‘지역구 의원 상실 이견-소장 이견 조율 중(금일), 조정 끝나면 19일, 22일 초반’이라는 내용도 적혀 있다.
실제로 헌재는 이틀 뒤인 12월 19일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통진당 해산을 결정했다.
결국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헌재의 선고 이틀 전에 ‘통진당 해산 결정’과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이라는 재판 결과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또 통진당 소속 지역구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을 둘러싸고 재판관들 사이에 이견이 존재하고 있으며, 박한철 소장이 이를 최종 조율하고 있다는 당시 헌재 내부 움직임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김 전 수석은 특히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이런 발언 내용을 기록한 뒤 테두리를 둘러 ‘중요 사항’이란 점을 강조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선고 전날인 12월 18일에는 통진당 해산 결정에 따른 후속조처를 논의했다.
김 전 수석의 당시 비망록에는 ‘⓵ 국고보조금 환수-계좌 압류-동결 ⓶ 공문 발송-채무부담 등 원인행위 금지 등 ⓷ 의원직 판단이 없는 경우-비례: 해산유지 법조항 전원회의-지역:조치 불가 국호 윤리위가 해결’이라고 적혀있다.
실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다음 날 헌재 결정 직후 통진당의 국고보조금을 압류하고 재산을 동결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거론된 김기춘 청와대 전 비서실장이 20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지난 19일 일본으로 돌연 출국했다. 박종민기자
◇ “김기춘과 박한철, 내밀하게 의논하면서 재판 진행”김 전 비서실장이 헌재의 통진당 재판과정을 꼼꼼하게 챙긴 흔적은 비망록 곳곳에서 드러난다.
2014년 10월 4일자 메모에는 김 전 비서실장이 ‘통진당 해산 판결-연내 선고’라고 말한 것으로 돼있다.
박한철 소장은 10월 17일 국정감사 오찬장에서 국회의원들에게 “해산심판 선고는 올해 안에 선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김 전 비서실장은 이런 사실을 박 소장의 공개 발언이 있기 약 2주 전에 벌써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이 역시 김 전 비서실장과 박 소장이 ‘삼권분립’을 심각하게 무너뜨리는 부적절한 접촉을 했을 가능성을 짙게 하는 대목이다.
당시 통진당의 소송대리인으로 변론했던 이재화 변호사는 “이 메모는 김 전 비서실장과 박 소장이 내밀하게 의논하면서 재판을 진행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8월 25일 박 대통령 주재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대수비) 내용을 기록한 메모에는 ‘통진당 사건 관련 지원방안 마련 시행’이라는 문구도 등장한다.
이어 ‘-재판진행 상황, 법무부 TF와 접촉, -홍보·여론’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 변호사는 이 메모에 대해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이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청와대가 헌재와 사전 조율을 통해 주된 주장을 바꾸고 신규 증인을 채택한 짜고 치는 고스톱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헌재는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청구된 모든 사건들을 처리하는데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협의한 적이 없다”는 원론적인 해명만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