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가르쳐="" 주었다="">는 교도소에서 맹인 안내견을 키우는 특별한 사연을 담은 책이다. 이들은 교도소 담장 안의 재소자들이다. 불신과 분노로 가득 차 있던 재소자들이 개를 훈련시키면서 사람에 대한 믿음을 서서히 회복해 나간다. 또한 재소자들이 훈련시킨 개 일부는 실제로 안내견으로 성장해 시각 장애인에게 빛을 선사한다.
이 독특한 이야기의 배경은 시네마 현 하마다 시 아사히 마을에 있는 사회복귀촉진센터다. 범죄 성향이 강하지 않은 남성 초범 2,000명이 훈련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곳에서 점역(말이나 보통의 글자를 점자로 고치는 것)을 비롯한 여러 가지 갱생 훈련을 받고 있다. 재소자와 시각 장애인과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개가 다리를 놓는 이야기가 책 속에감동적으로 담겨 있다.
책 속으로형무소에 개가 있다. 몇 번을 봐도 감개무량한 광경이다. 철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무기물의 공간 속에서 숨 쉬는 무구한 생명. 무심코 안고 싶어지는 부드러운 털의 온기. 쳐다보면 지긋이 다시 눈을 맞춰 준다. 물기 어린 커다란 눈동자. 많은 훈련생이 이렇게 말한다.
“이런 눈으로 쳐다보면, 나쁜 짓을 할 수가 없습니다.”
-본문 24쪽(1장. 형무소에서 안내견을 키우기까지: 낯선 풍경)
나가세 씨가 수건을 입에 물고 납작 엎드려 오라를 부른다. 정신없이 수건에 달려들어 열심히 잡아당기는 오라. 둘이서 수건을 가지고 씨름하는 모습에 다들 배를 잡고 웃고 말았다.
문득 둘러보니, 어느새 비닐 시트 위에는 훈련생들이 빙 둘러앉아 번갈아 가며 강아지를 안고 있다. 강아지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원을 만들고 그곳에서 모두가 함께 웃고 있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음을 열어 주는 개의 힘을 새삼 느꼈다. -본문 77쪽(2장. 봄-강아지와의 만남: 개가 있는 생활)
지도원들은 시각 장애인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점역 실습을 통해 훈련생과 함께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진다. 그리고 훈련생들이 이곳에서의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정신적으로도 성장하기를, 그래서 출소한 뒤 실제로 점역을 하지는 않더라도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면 손을 내밀 수 있기를 그들은 바라고 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어느 지도원의 이 말이 모든 것을 표현해 주는 듯하다.
-본문 115쪽(3장. 여름-형무소에서 개를 키운다는 것: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아무튼 빨리 형기를 마치고 이곳을 나가고 싶다, 나가서 조금이라도 아내의 노고에 보답해야 한다, 이런 초조함을 느낀 나가세 씨는 그저 형무소에서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바랐다. 그런데 안내견이 될 강아지를 키우면서 이곳에서의 삶에도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이곳을 나갈 때 내 물건은 모두 버릴 작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라에 관한 추억은 버리고 싶지 않아요. 형무소에 가는 것은 일생 겪지 않아도 좋을 일이지만, 이곳에서 안내견 강아지를 키운 경험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으니까요.” -본문 123-124쪽(3장. 여름-형무소에서 개를 키운다는 것: 가족의 편지)
20대 무렵부터 5년 넘게 은둔형 외톨이였다는 고지마 씨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죽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자살을 생각하며 정말 목숨을 하찮게 여겼지요……. 조그만 새끼 때부터 이곳에 와서 점점 성장하는 개를 보며 생명의 소중함을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개와 있으면 마음이 상냥해집니다. 사람에게도 상냥해지고 싶어져요.”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다.
“점자도 익혔고 뭐든 하고자 마음먹으면 할 수 있네요. 나는 몸도 건강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데, 그런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고 있었던 거지요.”
자신의 틀에 갇혀서 가면 같은 무표정으로 마음을 닫고 있던 사람이 이렇게 자신을 긍정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안내견 강아지 육성 프로그램을 시작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문 151쪽(4장. 가을―삶이 바뀌는 첫 걸음: 강아지가 사람을 바꾸다)
오쓰카 아쓰코 지음 | 유은정 옮김 | 돌베개 | 200쪽 | 12,000원
<한식의 탄생="">은 우리가 밥상에서 마주하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설렁탕, 북엇국, 삼겹살, 빙과, 수제비, 추어탕, 떡만둣국, 수정과, 소갈비, 비빔밥, 상추쌈, 쥐포, 막걸리…….
이 책에서는 고추장이나 깍두기처럼 우리가 오래전부터 먹어 온 음식은 물론 치킨이나 짜장면, 부대찌개처럼 외국 문화의 영향으로 새로 생겨난 음식까지 다양한 종류를 다룬다. 현재 우리가 먹는 음식이 바로 ‘한식’이기 때문이다. 각 음식의 이름에 관한 유래, 조상들이 그 음식을 먹었던 기록, 음식이 탄생한 배경, 시대별 혹은 지역별 요리의 변천사, 언제 어떻게 먹어야 가장 맛있는지 그 방법까지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글에 30여 개의 일러스트를 더해 독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간다.
책 속으로 최근 많은 매체에서 “원래 삼계탕은 계삼탕이었다가 1980년대 이후 삼계탕으로 바뀌었다”라고 하지만, 여러 기록을 보면 이런 주장은 별로 신뢰할 수 없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삼계탕과 관련된 기록에는 ‘삼계’라는 단어가 월등히 많다. 삼계탕이라는 말이 신문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초반이지만, 빈도수가 많아진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대한민국에 본격적인 육식 문화가 시작되는 때와 삼계탕의 대중화가 괘를 같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삼탕이라는 말도 거의 같은 시기에 언론 노출 빈도수가 많아지지만 1980년대 이후 삼계탕에 밀려 거의 사라졌다.
- 33쪽, [복달임 음식 _ 옛사람들의 여름 나기]에서
일본에서는 전어구이를 거의 먹지 않는다. 전어의 일본말인 ‘고노시로(このしろ)’는 직역하면 ‘아이를 대신한다’는 뜻이다. 영주가 자신의 딸을 데려가려하자 전어를 관 속에 넣어 태운 뒤 딸이 죽었다고 속인 어부의 일화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인은 전어 굽는 냄새를 시체 타는 냄새로 연상할 정도로 전어구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재료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이처럼 상반된 결과를 낳은 것이다.
― 95쪽, [전어 _ 가을이라는 단어를 머금다]에서
기록상으로 보면 메주건 청국장이건 중국의 콩으로 만든 장이 한반도에서 건너갔다는 사실만은 개연성이 매우 높다. 한국에서 장이라는 글자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 신문왕 3년(683년)의 기록인데 장과 시가 동시에 나온다. 북송의 손목(孫穆)이 고려 숙종 8년(1103년)에 개성을 다녀간 뒤 쓴 《계림유사》에는 장을 ‘密組’로 부른다고 적고 있다. 당시의 중국 음으로 읽으면 이는 ‘며조’가 된다. 일본 된장 미소는 《왜명유취초(倭名類聚鈔)》1934년경에 고려장 미소(未醬)에서 온 것임을 밝히고 있어 일본 된장이 한반도에서 넘어온 음식 문화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 123쪽, [메주 _ 겨울을 견디기 위한 생존 의례]에서
미군부대를 들락거리던 한국인들은 그곳에서 구한 가공육을 한국식으로 먹고 싶어 했다. 제일시장 주변에서 ‘오뎅’을 팔던 허기숙 씨에게 소시지나 햄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 요리를 부탁했다. 부대 고기를 김치나 고추장 같은 한국식 재료와 볶아서 선보인 부대볶음은 인기가 많았다. 얼마 후 부대찌개도 만들어졌다. 1968년 지금의 자리에 ‘오뎅식당’이라는 이름을 달고 정식으로 가게를 시작했다. 부대에서 나온 고기는 넘쳐났지만 그걸 사용하는 건 불법이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오뎅식당이라는 이름이 편법으로 사용되었다.
― 182쪽, [부대찌개 _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가공육의 변신]에서
한국인에게 고기는 소를 의미했다. 다른 짐승의 고기에만 돼지고기, 닭고기처럼 이름을 붙였다. 중국에서는 고기가 돼지고기를 의미하는 것처럼 말이다. 막 잡아 사후경직이 일어나기 전의 엉덩이살, 다리살은 생고기로 먹거나 야채 또는 과일과 섞어 육회로 먹었다. 안심 같은 부드러운 부위를 제외하면 마블링이 없는 살은 질겼다. 귀하고 질긴 고기를 먹기 위해 사람들은 대개 탕을 끓였다. 갈비탕, 육개장, 설렁탕이나 곰탕 같은 음식은 그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 상식적이고 공평한 음식이었다.
― 195쪽, [소갈비 _ 찜과 탕에서 구이로의 변화]에서
단맛과 매운맛이 공존하는 고추장은 1920년대 본격적으로 소비된다. 하와이를 기반으로 한 신문 [신한민보] 1924년 3월 20일 자에는 간장, 고추장, 된장을 판매하는 광고가 실린다. 초기 이민자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고추장을 풀어 넣은 얼큰한 찌개나 비빔밥을 그리워했다. 1920년대부터 한국인의 정체성이 가장 강하게 반영된 비빔밥에 고추장은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다. 당시 비빔밥은 설렁탕 같은 탕 음식과 더불어 대표적인 외식 메뉴였다. 밥과 채소, 고기에 고추장이 더해지면 달고 매운 개성이 생겨난다.
― 232쪽, [고추장 _ 단맛과 매운맛의 조화]에서
박정배 지음 | 세종서적 | 272쪽 | 14,000원
<전주 한옥마을="" 다시보기="" 1="">은 단순히 주요 볼거리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문화적, 문학적으로 통합적인 시각으로 썼다. 유적지에만 집중하지 않고 전주한옥마을의 숨어있는 가치를 이끌어내려는 최근의 시도들도 함께 살펴본다.
책 속으로시나브로, 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창 주변엔 꽃이 활짝 폈습니다. 1926년에 준공한 이 건물은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붉은 벽돌 로 둘러싸인 창 주변은 꽃담으로 도배를 했군요. 성당의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본당과 같이 북향을 하고 있는 사제관은 르네상스 양식을 바탕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을 가미한 절충식 건물로, 근대 서양풍 건축입니다.
P. 37
지붕 같은 하늘채에는 흰구름이 윤무하고 침실 같은 대지와 출렁이는 저 하늘 밑엔 푸른 산과 꼬막 등 같은 사람의 집, 아름다운 전주천이 천년의 세월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P. 92
이종근 지음 | 오세림 사진 | 채륜서 | 272쪽 | 15,800원 전주>한식의>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