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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력을 발하는 고전 80여 편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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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세계문학 브런치_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세계문학 브런치="">의 저자 정시몬은 고전 문학의 참맛을 조금씩이나마 직접 선보이려는 뜻에서 이 책을 썼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그 어떤 이득을 따지기에 앞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어야 한다.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면서 그로부터 섭취할 수 있는 각종 비타민과 풍부한 섬유소만 생각하는 사람은 뭔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사과는 우선 맛으로 먹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의 각 챕터에 엄선된 세계문학의 명장면, 명문장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문학의 맛을 음미하는 기회를 누렸으면 한다."

저자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읽을 엄두도 못 내는 고전이 된 것을 무척 안타까워하며 해결책을 제안한다. 그저 책을 성큼 집어 들고 읽으라는 것이다. 본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해설이니 주석이니 하는 것들을 일단 뒤로하고 한장 한장 넘기다 보면 깨알같은 재미를 느낄 만한 대목이 곳곳에 있다고 귀띔한다. 주인공 블룸의 식도락 취향을 아기자기하게 소개한 구절이라든가, 유대인에 대한 사람들의 이중적 태도를 비꼰 아일랜드식 블랙 유머를 그 예로 들면서, "'율리시스'는 여느 문학 작품처럼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일단 책을 집어 보면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다고 느껴지지는 않는, 아니 읽을수록 재미가 우러나는 그런 책이다"라고 단언한다.

문학이 독자에게 직접 전하는 재미와 감동에 초점을 맞추는 <세계문학 브런치="">에는 서양 문학의 원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부터, 애거사 크리스티의 명품 추리 소설, 영문학의 보물 셰익스피어의 희극과 비극과 역사극, 독특한 매력을 내뿜는 카프카의 부조리 소설, 담백한 시어로 깊은 울림을 전달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전원시에 이르기까지 50여 작가들의 시, 소설, 희곡 작품 80여 편이 망라되어 있다.

담백하고 명쾌한 언어로 쓰인 프로스트의 시 「택하지 않은 길」(흔히 「가지 않은 길」이라고도 번역된다)을 읽노라면 숲 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언어의 삼림욕’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가 하면,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가 '악의 꽃'에서 인간의 구질구질한 속내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시구를 감상할 때는 뒤틀린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도 하는 것이다.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 또한 문학 읽기로 얻을 수 있는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의 거장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 같은 대하소설을 통해 장대한 서사의 힘을 보여 주었다면, 비슷한 시기에 '보바리 부인'을 쓴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작가 개인의 감정을 배제한 채 엄격한 객관성을 추구하며 당대의 사회상에 대한 사실적 묘사의 모범을 제시했다. 오스카 와일드와 조지 버나드 쇼는 모두 ‘냉소와 독설’로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들이지만,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문학 자체의 미적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주력한 와일드가 정치적으로 다소 개인주의자 내지 무정부주의자였던 데 비해, 평생에 걸쳐 사회 변혁에 관심을 가졌던 쇼는 희곡 '바버라 소령'을 통해 민중을 계몽함으로써 그들을 빈곤과 무지에서 빠져나오게 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 문학, 아니 세계문학의 거인 중의 거인이라 할 수 있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톨스토이가 세계문학의 큰 봉우리라면 도스토옙스키는 심해, 혹은 심연이라고 할까. 톨스토이가 화려한 러시아 상류 사회로부터 민초들의 삶까지를 아우르는 스케일 속에서 인간의 지성과 인식 확장을 도모한다면,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정신 속에서 요동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마치 강력한 자기장처럼 주변 세계 역시 그 질문 속으로 빨아들이는 일종의 문학적 ‘흡성대법(吸星大法)’을 구사한다. 톨스토이의 소설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는 반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약간만 과장하자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전율이 느껴진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자신의 지혜가 부족한 것을 자책하는 파우스트에게 접근한 메피스토펠레스는 자기가 가진 악마의 능력을 빌려주겠다는, 언뜻 달콤해 보이지만 실상은 무시무시한 제안을 던진다. 하지만 파우스트로서는 그 유혹을 차마 뿌리칠 수가 없다. 이렇게 메피스토펠레스는 한 사람의 영혼을 놓고 장난을 치는 악마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묘한 친근감이 들기까지 한다. 그 이유를 저자는 메피스토펠레스가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속 가려운 곳을 골라 팍팍 긁어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우리가 한번은 생각해 봤음 직하지만 체면이나 주변 분위기 때문에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 대변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첫 만남에서 정체를 밝히라고 다그치는 파우스트에게 “나는 항상 악을 탐하면서도 언제나 선을 행하는 힘의 일부입니다”라고 응수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저 능청스러운 입담을 통해 우리는 시원함을 느끼면서 한편으로 인간의 위치, 현실의 삶을 자기도 모르게 곱씹게 될지도 모른다. 위대한 문학 작품은 이렇게 우리가 처한 상황을 비틀어 보여 주
면서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책 속으로

『일리아스』 속의 많은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이야기의 진행과 함께 매우 입체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가령 헬레네가 전남편 메넬라오스와의 결투에서 쩔쩔매다 아프로디테 여신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 돌아온 파리스에게 어떻게 말하는지 한번 보자.

“그래서 당신은 싸움에서 돌아왔군요. 차라리 당신이 한때 내 남편이었던 그 용감한 사내의 손에 쓰러졌으면 좋았으련만. 당신은 맨손과 창으로 싸우면 메넬라오스보다 뛰어나다고 떠벌리곤 했죠. 그럼 가세요, 가서 그에게 다시 도전하세요―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그러지 말라고 권해야 하죠. 왜냐하면 당신이 어리석게도 그 사람과 일대일 결투에서 마주한다면 곧 그의 창날에 쓰러져 버릴 테니까요.”

전남편에게 왕창 깨지고 망신을 당한 채 돌아온 파리스를 못마땅해하면서도 금세 그렇다고 멍청하게 또 도전하지는 말라며 걱정하는 헬레네. 만약 이 대목에서 헬레네가 파리스를 마냥 비겁자로 조롱했다든가, 반대로 아무런 불평 없이 남편이 살아 돌아온 것을 기뻐하기만 했다면 일차원적인 캐릭터로 남아 버렸을 것이다. 이렇듯 생생한 전투 장면이나, 고대인들의 일상에서 정말 있었을 법한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입체적 심리 묘사 등은 모두 『일리아스』를 고전 중의 고전으로 만드는 힘이다.
_ 본문 31~32쪽 ‘『일리아스』의 리얼리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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