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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최강 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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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은 없다는 생각이 곧 주술

- 실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노동자들
- 박정희 군부독재로 덕을 본 것이 아니라 막대한 손해를 본 것. 부의 편중, 경쟁과 편법의 횡행, 사회 정의 상실
- 국정 교과서도 박정희 신화를 지속시키는 강력한 요인
- 박정희 동상 건설 발상 제정신으로 보기 어려워
- 동상은 대통령이 아니라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던 70년대 국민들, 파독광부, 간호사, 여성 노동자, 중동 노동자들을 형상화할 수 있어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0)
■ 방송일 : 2016년 11월 14일 (월) 오후 19:15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이영재 교수 (한양대)

◇ 정관용>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지금 온 국민이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데요. 돌이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 가장 큰 힘은 박정희 향수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한마디로 말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우리 경제성장 불가능했다. 이 정도 사는 거 박정희 대통령 덕이다, 이런 어떤 향수 말이죠. 오늘 11월 14일이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일이기도 하답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 없었으면 오늘날 한국이 없다라는 생각이야말로 우리가 빠져든 한갖 주술이다, 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공장과 신화라고 하는 책을 펴내신 한양대학교 이영재 연구교수를 오늘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이영재> 반갑습니다.

◇ 정관용> 제목이 의미심장해요. 공장과 신화. 무슨 뜻이에요. 왜 이걸 제목으로 붙이셨어요?

◆ 이영재> 저는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신화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 사회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게 사회공동체가 아주 어려운 일들. 가령 전쟁이나 재해 등을 겪었을 때 그걸 잘 극복해내는 과정에서 신화화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이제 성장신화가 그런 맥락일 텐데요.

◇ 정관용> 한강의 기적.

◆ 이영재>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성장신화의 내용 구성이 일부 세력에 의해서 좀 전략적으로 변조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던 사람들은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을 비롯한 대다수의 우리 국민들의 이야기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문제 의식에서 공장과 신화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 정관용> 실제 성장을 이끈 주역은 공장 노동자다. 이 말은 그러니까 한강의 기적,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었다. 박정희 시대를 좀 주술화시키는 그런 믿음에 대한 어떤 도전장이네요, 이 책이 그러니까.

◇ 이영재> 그렇습니다. 한강의 기적은 국민의 피와 땀의 산물이어야 되는데 특정세력들이 만들어낸 후유증들이 지금 한국사회의 극심한 피로도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김진명 작가님이 노컷뉴스에서 이러한 인터뷰를 하셨더라고요. 다음 세대가 먹을 밥상까지 이전 세대가 전부 먹어치웠다라고 표현을 하셨는데요. 저는 밥상만 빼앗은 게 아니라 밥상머리에 존재하고 있었던 예절까지 없애버린 후유증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그러면 이른바 박정희 성장신화. 실상을 좀 분석을 해 보죠. 먼저 성장률부터 분석해 볼까요?

◆ 이영재> 78년에 1인당 GNP가 1000달러를 초과했을 때 굉장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기대도 커졌었고요. 당초 기획보다 2년이나 앞질러서 달성을 했다고 대단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서민들의 삶은 어땠는가를 보면 인플레이션이 극성이었고요, 이때 만들어진 말들이 복부인이나 프리미엄이라는 말들이 횡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에 보면 사재기들이 상당히 많았었고요. 버스판매소에 지금은 없어졌지만 토큰이 전부 오일쇼크나 이런 것 때문에 앞으로 토큰을 살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굉장히 매진율이 높았다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토큰도 사재기를 했다?

◆ 이영재> 네. 그래서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저는 당시에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걸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노동자들의 급여를 보게 됐는데요. 1일로 계산을 하면 약 466원의 급여를 받게 됐습니다. 그것도 한 이제 10년 가까이 다녔던 분들이. 그 당시 460원이라고 하면 냉면 한 그릇 정도 가격이라고 합니다. 초임 노동자들은 300원 정도 받는 경우들도 비일비재했고요. 그러면 저는 이거에 문제는 성장의 수치가 어떻게 나타났느냐의 문제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성장의 열매가 제대로 분배되지 않았다 하는 점에 문제를 삼고 싶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그 1979년에 경제 악화가 2차 오일쇼크 때문이었다. 그렇게들 알고 있잖아요. 그것도 사실과 다릅니까?

◆ 이영재> 2차 오일쇼크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불가항력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모든 나라가 경제적으로.

◇ 정관용> 외부요인이니까요.

◆ 이영재>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좀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은 오일쇼크도 있었지만 저는 외채 도입의 규모들을 살펴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외채.

◆ 이영재> 1976년부터 외채 도입액은 늘어나면서 도입의 효과는 점차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외채 도입액이 늘어나는 것들을 메꾸기 위해서 수출주도 경제 정책을 가속화시킬 수밖에 없었고요. 그러다 보니까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그걸 대치하는 경향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저는 이게 한강의 기적의 민낯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독점재벌들 사이에 중화학공업에 대한 추진이 상당한 정도로 중복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중복투자가 많아졌다는 거죠.

◇ 정관용> 맞아요.

◆ 이영재> 78년 사례만 보더라도 기계의 경우는 52. 6%가 이제 재고로 증가를 하게 됩니다. 전기기기는 38. 8%, 운수장비는 49%가 됩니다.

◇ 정관용> 그런 중화학 중복수사 때문에 결국은 구조조정을 아주 엄청나게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한마디로 박정희 군부독재 덕을 봐서 경제성장했다, 이런 것보다는 부의 편중, 분배정의 또 사회통합. 이런 데 있어서 큰 손해를 봤다, 그런 얘기인 거죠?

◆ 이영재> 그렇습니다.

◇ 정관용> 거기에 구체적인 근거가 있을까요?

◆ 이영재> 저는 이게 이중의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을 합니다. 경제가 성장하는 데에 국민들은 상당 정도 웬만한 편법과 반칙은 눈감아 준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눈감을 수밖에 없었고요. 워낙 강하게 몰아쳤기 때문에. 저임금에 12시간 노동을 하거나 18시간 곱빼기 노동을 하면서 그걸 버텨왔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반칙을 범한 자들과 사주한 자들이 성장의 열매들을 독식하는 과정에 상대적 박탈감들이 상대적으로 커졌기 때문에 이건 바로잡아야 한다, 민주화해야 된다라고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은 정치권력에 의해서 호되게 당해 왔습니다.

◇ 정관용> 다 잡혀갔죠.

◆ 이영재> 이게 상당한 후유증을 낳게 되는데요. 이걸 경험했던 세대들이 자녀 세대들에게는 사회일에 개입하지 말아라, 너만 잘되면 된다. 나중에 높은 자리 가서 바꿔라라는 말을 신신당부할 수밖에 없었죠.

◇ 정관용> 맞아요. 저희 어렸을 때 그런 얘기 듣고 자랐습니다.

◆ 이영재> 그런데 이게 문제가 뭐냐 하면 일제강점기 동안에 독립운동했던 분들이 대접받지 못했던 사회를 이분들의 부모세대들은 또 봤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이중적인 전달과정이 되는데요. 우리 사회적 관습들이 두 번에 걸쳐서 우리를 앞만 보고 달려가는, 그래서 우리 사회 속에 상부상조나 공동협력의 어떤 전통들은 대부분 망가졌다고 보여지고요. 이제는 협력과 연대가 아니라 어떤 경쟁과 편법. 이것만 남아서 경제가 아무리 성장한다고 해도 저는 앞으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이 상당 부분 훼손됐다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그래요. 이 책의 주요한 내용 중에 보면 1970년대에 여성 노동자로 살던 분들을 지난 몇 년 동안 직접 인터뷰하신 내용들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그때 공순이로 불렸죠. 그러다 노동운동에 참여하면 빨갱이로 불렸던 그런 분들인데. 그분들은 박정희 시절을 어떻게 회고하던가요?

◆ 이영재> 태어나면서 글자를 알 때쯤 됐을 때부터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참 일을 할 때도 박정희 대통령이었고요. 그래서 정부는 불변하는 거라고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 정관용> 대통령은 한 사람.

◆ 이영재> 네. 그리고 이제 상당히 두려웠다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그런데 점차 공장에서 받는 여러 불합리함들이나 개선하고 싶었던 부분들을 노동청을 찾아가서 호소를 해 봐도 혼나고 오는 게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호되게 불려가서 당하기도 하고 위협도 당하고 하면서 오히려 그런 두려움들보다는 지금 내가 알고 있었던 정부가 우리 정부인가에 대한 회의들이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 인터뷰 중에 기억나는 말들은 정부가 정부다울 때 살맛이 나는데 이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모르겠다는 얘기들을 여러 선생님들이 이제 해 주셨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 이영재> 그리고 그 당시에 대부분 이제 해고가 되거나 범법자가 되셨는데요. 지금은 후회하지는 않는다라고 얘기들을 하시고요. 그리고 그분들이 또 감사하게도 사회 곳곳에서 지금도 중요한 역할들을 좀 하고 계십니다. 시민사회의 영역에서든지. 그래서 조금 더 우리 후세들은 정부다운 정부에서 살게끔 해 주게 하고 싶다는 게 그분들의 바람이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지금 그 바람이 또 깨지고 있네요. 그 박정희 시대의 유산 가운데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고 느껴지는 건 어떤 거라고 보세요?

◆ 이영재> 저는 그때 남아 있던 경쟁과 편법이라고 하는 건 오히려 더 강화되지 않았는가라고 생각이 되고요. 이게 어떤 현상을 만들어내냐면 이제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문제나. 그래도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얘기도 좀 나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게 점차 사교육시장이나 여타 넘어갈 수 없는 유리벽의 계층들이 존재하게 됐고요. 제가 놀랐던 사실은 서울에 이제 특정구와 특정구가 경제력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꾸는 꿈이 다르더라는 겁니다.

◇ 정관용> 꿈이 다르다?

◆ 이영재> 한쪽에서는 검찰총장, 과학자, 대통령들을 꿈으로 이야기하는데 한쪽 구에 있었던 모 구의 학생들은 중학생들입니다. PC방 주인.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느냐라고 했더니 우리 부모님들이 고생할까봐 그리고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뒷받침을 자기가 고려를 해 봤을 때는 더 큰 꿈을 꾸기 어렵다는 얘기를 하더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게 지금 우리 한국사회의 현주소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요. 오히려 그 편법과 경쟁들이 훨씬 더 심화된 거 아닌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라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금수저, 흙수저의 꿈 차이가 아주 피부에 와닿는군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되고 그것에 큰 바탕은 제가 처음 시작하면서 얘기했습니다만 박정희 향수. 조금 점잖은 표현으로 향수지 이게 일종의 신화이고 주술화다, 이렇게 말씀하신 거 아니겠어요? 그게 지금도 한편에서는 계속 유지되는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 이영재> 저는 이제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박정희 대통령 시기가 일방적으로 강제만 했던 시기는 아니었더라고요. 그 당시에 만들어졌던 소위 관변단체 빅3가 있습니다. 새마을중앙회, 바르기살기중앙협의회, 자유총연맹을 흔히 빅3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이 외에도 이제 몇몇 관변단체 지원에 관한 특별법들이 당시에 만들어집니다. 이 세력들이 어느 정도의 규모냐면 일선구에 시민사회단체 지원에 관한 예산들을 보면 70% 가까운 돈들이 이때 만들어졌던 관변단체의 고정비로 지급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문제는 시민사회를 동원하기 위해서 만들어냈던 관변의 효과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고요. 그리고 이제 또 하나는 교육의 영역을 박정희 정권 시기 동안 상당 정도 국정화하면서 독점해 왔던 그 후유증들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 정관용> 지금 국정교과서 여전히 강행되고 있잖아요. 집필진도 밝혀지지 않은 채.

◆ 이영재> 맞습니다.

◇ 정관용> 이런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이영재> 저는 이게 뉴라이트라고 이제 지칭되는 세력들이 마지막 역사의 정점을 좀 찍으려고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제 최초의 것은 이거입니다. 일제식민지 덕에 한국이 근대화되었다. 이게 식민지 근대화론의 요체라면 저는 이 논리는 조선총독부에 충성을 다했던 매국세력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거죠. 최근에는 사면 수준을 넘어서 건국이라고 하는 상장을 주자는 논리로 이제 비약했습니다.

◇ 정관용> 건국절 이런 거죠?

◆ 이영재> 그렇습니다. 그래서 건국절 운운하면서 건국신화를 날조하기도 하고요. 이건 수세적 면죄부 차원이 아니라 감투를 주는 거죠. 여기에 대해서 산업화 세력에 대해서 성장신화까지 연결이 된다면 저는 이게 국정화의 방향이지 않을까 이게 11월 28일날 내용이 공표된다고 하는데 저는 그 방향으로 좀 공표되는 내용들을 좀 검토를 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저는 이런 맥락에서 보면 친일세력과 반공세력과 산업화세력이 색깔만 바꾸고 세대만 바뀌었지 유사한 세력이다라고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 정관용> 그들이 스스로를 산업화의 주역, 산업화세력 이렇게 부르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아까 쭉 언급했던 공장 노동자. 그분들이 산업화세력 아니에요?

◆ 이영재>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방금 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이 연배로 따져도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 이런 사람들하고 비슷비슷하거든요.

◆ 이영재>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어렵게 살고 박해당하고 그리고 세상 좋아졌나 보다 하고 쳐다 보니까 최순실 재산이 몇 백억, 그 일가가 수천 억. 이런 얘기 들리고 심정이 어떨까요? 그 당시 여성 노동자분들, 지금 할머니 분들 심정이 어떨까요?

 



◆ 이영재> 요즘은 따로 만나자고 약속을 안 해도 거리에서 이제 종종 뵙게 되는데요. 놀라웠던 일들은 이번 달이죠. 12월 2일날 100돌 기념을 위해서 동상을 건립하겠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에서 범국민 모금운동을 하겠다.

◇ 정관용> 박정희 동상?

◆ 이영재> 저는 이분들이 제정신인가 하는 의구심이 좀 들고요. 그동안 상당 정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공과도 있다. 공적도 있고 잘못했던 부분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느슨하게 합의됐던 것들은 그냥 기념관 정도를 짓는다. 전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붙여준다는 정도에서는 그냥 용인을 해 왔다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게 직계자식이 임기 중일 때 광화문 한복판에 동상을 세우자. 그리고 모금운동을 하겠다. 저는 이런 제안을 좀 드려보고 싶습니다. 굳이 박정희 재단에서 동상을 건립할 거라면 동상의 주역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던 70년대 우리 국민들이어야 한다, 파독광부, 간호사, 여성 노동자, 중동 노동자 그리고 이런 분들을 형성화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이분들을 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주역들로 기념을 하겠다면 역으로 모금운동을 하는 경우는 저는 미래세대를 위한 재단으로 좀 성장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여기서 모금한 금액들은 우리 미래세대들이 좀 창의적인 역할들을 할 수 있게끔 지원하는 역할들을 좀 해 줬으면 좋겠고요. 이런 정도가 그나마 박정희 기념재단이 한국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그 재단에 이런 걸 요청하시는 거죠?

◆ 이영재> 그렇습니다.

◇ 정관용> 아마 안 될 겁니다.

◆ 이영재> 이분들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당사자 분도 쉽게 수긍 못할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이제 박정희 시절부터 사실 똑바로, 제대로 봐야 한다. 이런 오늘 배움을 가졌네요. 공장과 신화의 저자이신 한양대학교 이영재 연구교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영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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