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겔은 국내에서 '오르간', '파이프 오르간', '풍금' 등의 명칭으로 통용된다. 오르겔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큰 성당이나 교회,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콘서트홀 등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악기다. 아직은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은 악기지만, 서양에서는 '악기의 왕'으로 불린다.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의 악기이기도 하거니와 장엄하고 웅대한 오르겔 한 대가 수십, 수백 가지의 소리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신간 '천상의 소리를 짓다'는 오르겔바우마이스터(오르겔 제작 장인) 홍성훈의 삶과 작품 세계를 13년간 기록한 사진작가 김승범의 사진집이자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오르겔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인문서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서양의 악기에 한국의 소리를 담으려 노력해온 마이스터 홍성훈의 땀과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지은이 김승범은 2003년 4월 덕수궁에서 홍성훈을 처음 만났다. 당시 44세의 활기 넘치는 홍성훈은 영락없는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오르겔바우마스터'라는 직업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는 생소하고 드문 터라 사진작가로서 본능적 관심이 발동했다. 첫 만남의 인연을 시작으로 김승범은 13년간 홍성훈의 삶과 작품 세계를 기록했다.
홍성훈은 독일에서 오르겔 제작에 투신해 독일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앞만 보고 달렸다. 만 12년 반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오르겔바우마이스터라는 직함을 가슴에 안게 되었다. 독일에서 마이스터가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고 기회도 잘 주어지지 않는 일이어서 보통 명예로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바쳐 노력한 끝에 독일에서 순탄한 삶을 보장받았으나 홍성훈은 모든 것을 마다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서양의 악기가 아닌 '한국적 오르겔'을 만들고 싶었다. 독일에서 마이스터 도제 과정을 밟기 전,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세운 흥사단에서 사물놀이, 봉산탈춤 전수 등의 활동을 한 이력과 주체할 수 없는 끼를 서울시립가무단(현 서울뮤지컬단)에서 발산하기도 했던 청년 홍성훈의 몸속엔 이미 한국의 신명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르겔 제작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홍성훈은 18년의 세월 동안 한 대씩 한 대씩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오르겔을 지어왔다. 그가 만드는 오르겔 소리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천상의 소리이자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소리이기도 하다.
"무형의 공기가 수백 개의 파이프를 타고 들어가 천상의 하모니로 다시 태어나는 그 놀라운 순간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38쪽
"오르겔은 보이는 소리로서의 형태와 들리는 소리로서의 음색이 합쳐져서 하나의 생명체로 탄생한다." ―58쪽
홍성훈이 오르겔을 설명하는 표현이다. 그는 서양 악기인 오르겔에 "보이는 소리로서의 형태"를 부여할 때 한국적인 색채를 담고자 노력해왔다. 오르겔 외관을 한국적 격자무늬나 비천상으로 장식한 것, 양평의 아름다운 자연을 고스란히 담아낸 산수화 오르겔을 만든 것, 한국의 전통적인 경첩과 칠보공예, 채화기법을 오르겔 제작에 적용하는 것이 바로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