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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의 맛] 짜장면보다 싸야 한다! 4천원 사골칼국수의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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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통 대전 '신도칼국수' - 이명주 사장

외식시장의 전설로 불리는 사장님들이 들려주는 '장사의 철학', 그들의 이야기가 "장사나 해 볼까?" 생각하는 창업 꿈나무들과 장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700만 자영업자들에게 장사의 대한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칼럼을 시작한다. [편집자 주]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1980년대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 칼국수를 참 많이 먹고 자랐다. 주말이면 엄마는 어김없이 밀가루 반죽을 치대다가 홍두깨로- 그때는 홀두깨가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밀어서 칼국수 면을 만들었다. 우리 집은 진한 멸치 육수에 주로 감자와 호박을 고명으로 올렸다. 마지막에 들깨 한 숟가락을 뿌리거나 얼큰한 걸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빨간 양념장을 얹어 드셨다.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칼국수는 참 지겨웠다. 나도 앞집 사는 수정이네처럼 짜장면이 먹고 싶었다. 당시 면 요리의 지존은 두말할 필요 없이 짜장면이었으니까.

치킨 집 다음으로 많은 가게가 칼국수집일 것이다. 푸드 컨설턴트 김유진씨는 '칼국수집은 망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마진이 꽤 좋고 많은 인력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란다. 할머니 혼자서도 예닐곱 테이블 정도는 거뜬하게 받을 수 있고 소문만 좀 나면 손님을 줄 세우게 하는 마법을 부리는 게 칼국수집이란다. 문제는 그만큼 칼국수 가게가 많고 많다는 것이다.

그 많고 많은 칼국수집 가운데 '신도칼국수'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다. 내 유년시절과 함께 한 추억의 맛집이고 나의 소울 푸드이기 때문이다.

사골 국물에 들깨가루가 듬뿍 뿌려져 나오는 이 집 칼국수는 고소하고 면발이 부들부들하다. 더불어 배가 터질 만큼 양이 많다. 사골 육수를 쓰지만 지금도 한 그릇에 4천 원 하는 착한 식당이다.

예전에도 그랬다. 착한 칼국수 가격에는 1988년 작고하신 '신도칼국수' 창업자 김상분 할머니의 장사철학이 담겨있다. "짜장면보다는 싸야한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신도칼국수'는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의 축복 같은 식당이다.

◇ 칼국수는 경기가 어려울수록 사랑받는 음식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신도칼국수'에 들어서면 벽에 일렬종대로 붙어 있는 크고 작은 다섯 개의 양푼 그릇이 있다. 찌그러지고 낡고 오래된 양푼들은 그냥 그릇이 아니다. 1960년대 창업할 때부터 2000년까지 '신도칼국수'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당시 쓰던 양푼을 그대로 보관한 것이라 더욱 귀중하다.

1950~60년대 기차역 앞에는 항상 짐꾼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인도 같은 나라에 가면 지금도 마찬가진데 당시엔 기차 이용객들의 짐이 참 많았다. 메고 이고 양손에 들어도 모자랄 만큼 늘 뭔가 바리바리 들고 다녔다. 기차를 이용한 물류 이동도 적지 않았던 때라 역전에는 늘 짐꾼들이 있었다. 그리고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맨 손 쥐고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도 역 근처다.

이렇게 대전역 주변에서 삶을 꾸리고 살아가는 가난하고 허기진 사람들이 적은 돈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신도칼국수'였다. 처음에는 냉면 장사를 하다가 1960년대 초 밀가루가 수입되고 정부가 분식을 장려하면서 칼국수로 전향한 김상분 할머니는 허기진 사람들을 든든하게 먹이고 싶은 마음에 고기 뼈를 고아육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큰 양은대접이 잘름거리도록 한가득 칼국수를 퍼주고 30원. 그게 '신도칼국수'의 시작이다.

1980년대 내가 '신도칼국수'를 드나들 때 식당 입구에 걸려 있던 커다란 가마솥에는 하루 종일 사골 국물이 끓고 있었다. 펄펄 김이 오르던 가마솥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당시에는 칼국수 한 그릇 가격이 500원 정도였는데 작은 가게가 늘 손님으로 북적였다.

이명주 사장이 들은 얘기로, 서울의 명동칼국수는 창업주가 시어머니께 돈을 빌려가 시작한 가게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방의 작은 칼국수 집의 위력이다. 그 작은 칼국수 집에만 국수를 납품하던 국수공장이 있을 정도였다.

이명주 사장의 남편이자 김상분 할머니의 외아들인 박종배 씨는 13년간 프랑스 유학을 하고 돌아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잠시 휴직하고 고향으로 내려 와 가게를 돕고 있었다.

50년 전통 대전 '신도칼국수' 이명주 사장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두 사람은 그때 만났다. 그는 남자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시댁이 칼국수 집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국수를 삶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 후 갑자기 남편이 어머니가 평생을 지켜 온 가업을 이어받겠다고 했다. 그것이 외아들인 자신을 위해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보답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일본은 창업한 지 100년이 넘은 기업이 2만개가 넘는다. 대기업 임원이거나 대학교수를 하다가도 가업을 잇기 위해 고향으로 달려가는 게 일본이다. 그것이 비단 시골의 작은 국수가게라고 할지라도…. 어쩌면 박종배 씨는 프랑스 유학을 통해 가업과 식당의 가치에 대해 일찌감치 눈을 떴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엔 다 그랬듯 이명주 사장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남편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내가 칼국수 집을 할 테니 당신은 다니던 회사 다니라고 했겠어요. "

박종배 씨가 가업을 이어받아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 계기는 지방의 작은 칼국수 가게였지만 대기업 월급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짭짤한 수입 때문이었다. 또 어머니가 평생을 두고 일군 가게를 그냥 버릴 수가 없어서이기도 했다.

"근본적으로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효자였거든요."

어머님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가게에 나와 있는 걸 좋아하셨다. 평생의 일터였고 가게가 곧 인생이었던 분이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신도칼국수'는 모든 메뉴가 어머님의 노하우로 만들어졌다.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은 국물 없는 열무김치는 밀가루 풀 대신 면수를 이용해서 담그는 게 특징이다. 대접에 밥만 달라고 해서 김치를 넣고 쓱쓱 비벼먹어도 훌륭하다. 칼국수와 짝을 지어주긴 다소 어색하지만 곁들임 찬으로 단무지가 나오는 것도 이 집만의 특징이다.

"어머님은 단무지 써는 소리만 듣고도 오늘 손님이 얼마나 왔는지 아셨죠(웃음)."

손님이 많아 바쁜 날이면 단무지 써는 소리가 다급하고 경쾌했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날에는 조금 여유롭지 않았을까? 당신이 모든 과정을 거쳤으니 눈 감고도 알았을 것이다. 실제로 달인의 경지에 오른 식당 주인들은 음식 색깔만 봐도 짠지, 싱거운지, 너무 익었는지, 덜 익었는지 귀신처럼 안다.

이상분 할머니가 생전에 고집하던 장사철학은 딱 두 가지였다. 첫째, 배불리 먹여라. 둘째, 칼국수 값이 짜장면 값보다 싸야 한다. 그 철학을 존중해 지금도 양은 줄이지 않고 있으며 칼국수 가격도 늘 짜장면 가격보다 저렴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기준이 짜장면일까? 가장 접근성이 좋은 저렴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이 짜장면 먹으러 가기 전에 우리 것을 먼저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죠."

칼국수는 경기가 어려울수록 장사가 잘 된다. 섣불리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이유다.

"500원 올릴 때도 심사숙고하게 됩니다."

◇ 주인이 바뀌면 음식 맛도 바뀐다

손님은 신기하게도 주인이 바뀌면 음식 맛도 다르게 느낀다. 대를 잇는 식당 주인들이 하나같은 겪는 일이다. 이 문제로 이명주 사장 역시 오랫동안 고심했다.

1988년 김상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내외가 식당을 이어 받았을 때 다행히 며느리였던 그가 시어머니와 많이 닮아서 딸인 줄 아는 손님도 많았다. 그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됐지만 손님들은 여전히 시어머니께서 하던 때의 맛과 다르다고 말했다.

어머님의 맛을 지키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다는 이명주 사장 역시 "그 맛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재료가 다르고 불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식자재가 대부분 국산이었지만 지금은 수입을 쓸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얘기다. 또 어머님은 화학조미료로 감칠맛을 더하셨지만-그 시절에는 '마법의 가루'라고 불리는 비싼 화학조미료를 아낌없이 팍팍 넣어주는 '신도칼국수'가 우월한 식당이었다-지금은 천연재료로 맛을 낸다.

음식을 하는 연료도 바뀌었다. 이상분 할머니는 연탄불을 썼지만 지금은 가스불이다. 오랫동안 장사를 해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음식을 하는 연료는 가스보다 연탄이 한 수 위라고 한다. 연탄불이 만들어 내는 깊은 맛을 가스불은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탄불을 사용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명주 사장은 새벽 5시면 사골 솥에 불을 켠다. 그리고 가게 문을 닫는 늦은 밤까지 불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칼국수는 아무나 끓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잘 끓이기는 힘들다. 특히 사골육수는 오랜 시간 불의 세기를 조절하면서 끓여야 하는데 거기에는 정성이 가미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도칼국수'는 대를 이으면서 더 번창했다.

"맛을 잘 지키면 손님은 오랜 역사는 배반하지 않는 것 같아요."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물론 맛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일 것이다. 이명주 사장은 대전 지역의 대표메뉴인 두부 두르치기를 새로 선보였는데 두부와 오징어를 섞은 두루치기는 칼국수만큼 인기메뉴로 자리 잡았다. 늘 두부를 먹을까, 오징어를 먹을까 고민하는 손님들을 위해 두부랑 오징어를 섞은 것.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 입맛도 달라졌다. 그는 '신도칼국수' 전통의 맛을 지키면서 요즘 사람들의 입맛을 잡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예전보다 더 맛있다는 손님들도 있어요. 그럴 때 제일 기뻐요."

이명주 사장은 자신의 인격을 음식 값에 맞추는 손님들을 대할 때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10만 원짜리 한식집에 들어가면 아주 공손한 사람이 4천 원짜리 칼국수를 먹을 때는 인격도 같이 저렴해지는 것이다. 반말은 예사고 욕설을 퍼붓는 손님들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고 혼자 눈물 콧물 쏟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상 손님을 대처하는 그의 자세는 무엇일까?

"저는 주방으로 들어갑니다. 더 맛있는 음식으로 코를 납작하게 해 줘야지 하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죠."

아이러니 한 건 그런 손님들도 계속 칼국수를 먹으러 온다는 것이다. 진상 손님들은 음식이 싫어서가 아니라 좋아서 진상을 부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인은 진상 손님마저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오늘도 '신도칼국수'에 가면 주방 직원들과 같은 차림으로 일하고 있는 이명주 사장을 만날 수 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은 그가 직원인지, 주인인지 구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며느리가 있어서 '신도칼국수'가 지켜지고 있다. 오래도록 음식 맛을 지키면서 잘되는 식당의 공통점은 주인이 직접 음식을 만들면서 주방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레시피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대를 잇는 식당들을 인터뷰해본 결과, 이러한 가게에는 특별한 레시피가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레시피가 있는 집도 있지만 대부분 공개할 만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레시피 만으로 낼 수 없는 맛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노포들은 안다.

◇ 세월은 흘러도 칼국수는 남는다

서울에 멸치 육수를 쓰는 칼국수는 평균 4천원이며 그보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집도 많다. 그러나 사골 육수를 쓰는 칼국수가 4천원이라 하면 전무후무할 것이다.

"고급 한우 쓰고 그 가격은 당연히 못 받죠. 지금은 수육은 칠레산 돼지고기, 뼈는 호주산이에요. 최고가 아니라 언제나 최선을 선택합니다."

마지막에 뿌려지는 들깨가루도 예전에는 참깨가루를 썼는데 가격오름세를 견디지 못하고 들깨로 바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천원 칼국수는 넘치도록 착하다.

앞으로는 강하게 성장한 칼국수 집만 살아남게 될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여름이 길어지고 있는데다 쌀국수, 짬뽕, 파스타, 우동 같은 대체가능한 면요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먹을거리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칼국수는 우리 시대 소울 푸드라는 강점을 갖고 있고 한때 쌀국수, 짬뽕 같은 유행 음식을 찾더라도 어느 날 문득 칼국수가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역시 절대 망하지 않는 장사는 칼국수인가?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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