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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척화파도 주화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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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나는 역사 이야기-인물로 읽는 한국사]

 

병자호란을 겪으며 이를 수습한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을 역사에서는 주화파라고 부른다.

최명길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 진영을 오가며 화의에 앞장섰다.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온갖 수모를 겪으며 난국을 화의로 건지려 했다. 그러나 척화파는 심지어 칼을 꼬나들고 면전에서 그를 죽이려 했다.

이런 분란 속에서 최명길은 눈물을 뿌리며 항복문서를 손수 써야 했다. 이때 김상헌이 들어와서 이를 빼앗아 북북 찢어버렸다. "명망 있는 선비의 아들로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소?" 최명길은 찢어진 종이를 주워 맞추며 말했다. "대감은 찢으나, 나는 주워 맞추리다."

인조는 난국을 수습하라는 뜻으로 그를 정승의 반열에 올리고 1637년 영의정을 맡겼다. 그는 인질로 끌려간 척화대신과 포로석방을 교섭하는 한편, 독보라는 중을 명나라에 보내 그쪽 정세를 살피게 했고 쫓겨온 명나라 군대를 도와주었다. 그는 최고의 관직에 있으면서 동분서주하며 뒷수습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청나라가 박아둔 첩자에 의해 모두 발각되었다. 이 일로 그도 청나라의 수도 선양으로 끌려가 김상헌이 갇혀 있는 감옥 옆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2년 동안 모진 고초를 겪은 끝에 김상헌과 함께 풀려났다. 청나라는 그들이 풀려날 적에 청나라 황제가 있는 쪽을 향해 절을 하라고 강요했다. 김상헌은 허리가 아프다고 핑계대고 끝내 절을 안 했지만 최명길은 서슴없이 절을 했다. 그는 외형 따위에는 구애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마음을 믿었던 것이다.

"청음(김상헌의 호)의 척화는 수경(守經) 한 가지이지만, 나의 주화는 지경(知經)하여 달권(達權)한 것이다. 나의 마음은 고리같이 둥글어서 돌아갈 줄을 안다."

''수경''은 근본을 지킨다는 뜻이지만, ''지경''과 ''달권''은 근본을 알지만 적절하게 방편을 쓴다는 것이다. 얼마나 자신의 행동에 신념을 가졌다는 말인가? 그의 행동철학은 양명학을 수양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평가한다.

척화파와 주화파, 이 관계를 규정하기에 당시의 현실은 너무나 절박했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고 감히 우리 뒷사람들은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외침에 여지없이 무너지면서도 명분만을 먹고 살 수 없는 것이요, 국력을 기르지 않고 기개만을 떠들어보아야 나라를 파멸로 이끌고 말 것이다.

최명길은 광해군을 몰아내는 대열에 섰었지만, 실리와 타협을 추구한 광해군의 외교노선을 충실히 계승한 외교가였다. 외침에 적절히 대응하는 외교전통을 세웠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ㅣ 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 인물로 읽는 한국사 1(김영사)

※지은이 이이화는 강단 있는 역사학자다. 우리 겨레 고난의 민족사, 백성들의 자취가 짙게 밴 생활사, 압제를 받았던 민중사를 복원하는 글을 주로 써왔으며, 오늘의 관점에서 역사인물을 재평가하는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를 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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