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RI 홈페이지 캡처)
'한국형 알파고' 연구 개발을 위해 210억원의 대기업 출자로 출범한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 원장 선임 과정에서 이미 특정인을 원장으로 내정하고 형식적인 절차만 진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5년간 나랏돈 750억원 투자 약속을 받은 국내 최초 AI 민간연구소임에도, 온라인 시험과 외부 교수 평가로 연구원을 선발하는 등 허술한 절차로 진행하고 있어 논란이 될 전망이다.
◇ "원장 선임, 내정돼있었다?"…서류심사서 8명 중 6명 '탈락' 면접도 형식적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올해 초 AIRI 설립 추진단장을 맡았던 현 김진형 원장이 당시 AIRI 연구원장 모집에 형식적 응모절차를 거쳐 초대 원장으로 취임했지만 당초부터 김 원장을 원장이자 대표이사로 내정하고서 형식적 절차만 진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AIRI 원장 모집은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4일 단 일주일 동안 진행됐다. 그뒤 7월 6일 서류평가, 이틀 뒤인 8일 면접 평가가 이뤄졌다. 출자 기업 임원 7명이 원장 후보를 선정하고 이사회를 거쳐 최종 확정했다.
그러나 이 과정 자체가 '요식 행위'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5년간 국민 세금인 750억원에 달하는 정부 과제를 약속받고 국내 AI 연구를 짋어지고 나갈 최고의 연구원 수장을 선임하면서 정작 '연구원장 모집 공고문을 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지금도 연구원장 공고문을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또 정책위 측이 출자사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원장 모집에 신청한 8명 중 6명이 서류심사에서 무더기로 탈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류 결과 발표 이튿날 바로 진행된 면접에는 현 김진형 원장과 삼성 출신 인사 1명 등 2명만 들어갔다. 곧바로 김진형 씨는 AIRI 원장 겸 대표이사에 올랐다.
정책위 관계자는 당시 면접에 참여했던 출자사의 임원의 말을 인용해 "면접시간은 매우 짧았고, 질문은 형식적인 것들로 심도있는 질문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미래부는 이에 대해 '지난 6월 29일 (AIRI)원장 모집 공고문을 전자신문에 1번 올렸고, IITP(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홈페이지에 배너 홍보(6.28∼7.5)를 한 뒤 '삭제'했다고 밝혔다. 또 AIRI 설립추진단 홈페이지에 공고한 뒤 AIRI 법적 설립 완료일인 지난 8월 1일 "추진단 홈페이지를 폐쇄했다"고 밝혔다.
정책위 측은 미래부에 서류 및 면접에서 심사위원 구성, 평가 항목 등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AIRI는 민간기업 문제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는 대답만 되풀이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방송통신 수석위원은 "원장 공모절차를 전문지 1곳 외 제대로 보도되지 않아 외부인들이 인지조차 할 수 없었다"면서 "최고의 연구원 수장을 선발하면서 이런 초라한 방식으로 공고문을 띄워 일반인들이나 관련 전문가들이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 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의 발기인이다. 이후 '힘찬경제추진단'에서 추진위원을 맡았고, 박근혜 정부 초대 '국가과학기술심의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최근까지 미래부 산하 정보통신지흥원 부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 '최고' 연구원 뽑는데 실기는 온라인, 면접은 평판조사? 깜깜이 모집 '논란'
나랏돈 750억원이 투입되는 AIRI 연구원 채용 절차가 온라인 실기 시험과 특별한 면접 과정없이 내외부 전문가 인터뷰로만 진행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AIRI 홈페이지 캡처)
최고의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연구원 모집 절차는 더 허술하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AIRI 홈페이지 내 연구원 채용공고문에는 지원서 이메일 접수 → 서류심사 → 개발 능력 평가(온라인 코딩시험) → 내외부 전문가 인터뷰(2~5회) → 연구원장 최종면접→ 최종 합격 이후 연봉계약의 절차가 나온다.
그러나 연구원 모집분야에 '인공지능/소프트웨어 개발 전공'만 나와있을 뿐, 코딩 테스트 일자, 모집기간, 면접일자 등은 보이지 않는다. 또 개발능력을 평가하는 '코딩 시험'도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이후 특별한 면접과정이나 절차 대신 2~5회 내·외부 전문가 인터뷰만 진행된다.
AIRI 관계자는 "AI관련 분야 외부 교수들한테 지원자에 대한 평가를 받고 최종적으로 원장이 결정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역시 구체적인 방법이나 절차를 알 수 없다.
정책위원회가 출자사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연구원 선발을 위한 공식적인 심사위원회는 구성돼 있지 않을 뿐더러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출자사측 전문가나, 출자사가 추천하는 사람이 심사위원으로는 참여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위 고위관계자는 "이는 연구원 선발을 위한 공식적인 심사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았다는 의미"라면서 "최고의 연구원 선발에 구체적인 채용 계획이나 로드맵이 없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AIRI와 달리, 비슷한 연구를 하는 주요 연구기관은 대부분 철저한 검증과 엄격한 심사를 거쳐 연구원을 선발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경우, 연구원 선발시 내부 해당 부서의 최고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엄격한 서류 심사, 연구성과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물론 중간 간부 면접, 상위 간부 면접 심사 등 까다로운 심사 끝에 최종 결정한다.
김진형 원장이 초대 소장으로 최근까지 이끌었던 NIPA 부설 SW정책연구소 역시 서류전형→발표면접→실무진면접→임원면접 등의 엄격한 절차를 통해 연구원을 뽑는다.
미래부 측은 이에 대해 "연구원장과 연구원은 객관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모집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자세한 운영 사항 등에 대해서는 민간 기업이기 때문에 정보에 대해 한계가 있다"며 입을 다물었다.
한편, AIRI에는 지난달 기준 선임급 5명, 책임급 5명 등 총 10여명의 연구원이 모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연구원 신청자 80명에 대한 면접이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9~10명을 먼저 뽑고 연말까지 30여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정부는 AIRI에 매년 150억원씩 향후 5년간 총 750억원의 정책 과제를 할당한다는 방침이다. 아직 연구원도 채 구성되지 않았고 올해는 3개월도 남지 않았다. 올해 150억원 할당 계획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