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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우리의 미래는 다시 솟는 연둣빛 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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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시집 '사월 바다'

 

우리의 미래는/불에 탄 나무에서 다시 솟는 연둣빛 새순/햇살의 화살 한개를 쏘고 있는/태양의 따스한 손길에 있다/(…)/증오의 말을 가르치지 말라/세상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경전 같은 말들이 있음을 가르치되/시인의 음성으로 하라/나약하지도 않고 사납지도 않은 목소리로/신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게 하라/거기 희망이 있다 그들이 희망이다/그래야 우리의 미래 오래도록 희망이다(「희망의 이유」 부분)

도종환 시인의 신작 시집 '사월 바다'가 출간되었다.

도종환 시인은 여전히 “뻐꾸기 소리만 들어도 걸음을 멈추고/씀바귀꽃에도 노랗게 물드는 사람”(「뻐꾸기 소리」)이다. 이번 시집이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이 녹아 있는 터라 ‘절망’ ‘슬픔’ ‘고통’ ‘분노’ 같은 부정적 정서가 많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서정 시인으로서의 순정한 마음과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 시선을 잃지 않는다. “야만의 시대가 치욕의 시대로 이어지는 동안”(「눈」) “끓어오르며 소용돌이치던 것들”(「어느 저녁」)을 다독이며 시인은 진흙탕 같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고립에서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자연을 벗삼으며 “평화롭게 하루를 살았으면 좋겠”(「나머지 날」)다는 소망을 품는다. “소요의 한복판을 벗어나”(「아모르파티」) 자연과 가까워지는 만큼 마음도 편안해지는 호젓한 고요 속에서 시인은 “아름다운 정경은 사람을 선하게 한다”(「정경」)는 깨달음에 닿는다.

찬술 한잔으로 몸이 뜨거워지는 겨울밤은 좋다/그러나 눈 내리는 저녁에는 차를 끓이는 것도 좋다/뜨거움이 왜 따뜻함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며/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있는 겨울 저녁/거세개탁(擧世皆濁)이라 쓰던 붓과 화선지도 밀어놓고/쌓인 눈 위에 찍힌 산짐승 발자국 위로/다시 내리는 눈발을 바라본다/대숲을 흔들던 바람이 산을 넘어간 뒤/숲에는 바람 소리도 흔적 없고/상심한 짐승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은 지 여러날/그동안 너무 뜨거웠으므로/딱딱한 찻잎을 눅이며 천천히 열기를 낮추는 다기처럼/나도 몸을 눅이며 가만히 눈을 감는다(「겨울 저녁」 전문)

시인은 삶을 돌아보는 자기성찰에서 사회적 문제와 현실정치 속으로 시선을 넓혀간다.
“사악함이 승리하고 정의가 불의를 이기지 못”하는 “불행한 시대”(「팔월」)를 향해 분노가 아니면 가눌 수 없는 목소리를 드높인다.

사월에서 오월로 건너오는 동안 내내 아팠다/(…)/슬픔에서 벗어나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섬 사이를 건너다니던 새들의 울음소리에/찔레꽃도 멍이 들어 하나씩 고개를 떨구고/파도는 손바닥으로 바위를 때리며 슬퍼하였다/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아 있을 아픔이었다/죽어서도 가지고 갈 이별이었다(「화인(火印)」 부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치욕스러운 고통 속에서도 시인은 “내게 오는 운명을 사랑하리라”며 “쓰러질 때까지” 끊임없이 “선택하고 뉘우치고 또 나아”(「아모르파티」)간다. “사람에게서 위로보다는 상처를 더 많이 받”(「해장국」)으면서도 절망에 잠기거나 포기하는 대신 “불가능한 것을 꿈꾸”(「별을 향한 변명」)며 사랑을 실천하는 길을 걷고자 한다.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살아야 하고/희망이 보이지 않는데도 일을 해야 하는 게 힘들”어도 시인은 “하찮고 사소한 일상을 물수건으로 닦아/빛을 내는 일”(「그는 가고 나는 남았다」)을 자신의 삶으로 여긴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 가망없는 시대에 “무슨 시를 써야 할 것인가”(「눈」) 고민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을 수 있고/이전에도 없었”지만 ‘그날’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것”(「도요새」)이다.

그날은 오지 않을지 모른다/누구에게든 그날은 잠시 머물다 가고/회한과 실망과 배신감만이 길게 남을지 모른다/그래도 그날을 향해 또 가야 한다는 생각에/마음이 아팠다/어느 시대에도 그날은 오지 않았는지 모른다/그날이 우리 곁에 왔다고 말하던 시절에도/내 하루의 삶이 그날로 채워져 있지 않았으므로/다시 그날을 기다려야 했다/일상이 그날인 그날까지 다시 가야 한다고/나를 다독이며 마음 아렸다(「그날」 부분)

시인은 이제 “세상에서 받은 쓰라린 것들을 뜨거움으로 가라앉히며”(「해장국」) 사랑과 “용서로 천천히 시를 쓰리라”(「가을이 오면」) 다짐한다. “생사의 고통은 갈수록 깊어지고/역병은 창궐하며/견탁(見濁)의 삿된 말들은/끓는 물처럼 흘러넘”치는 “겁탁(見濁)의 세상”(「화엄 장정」)에서도 “시를 보호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이며 “간난한 시의 길”(최원식, 발문)을 묵묵히 걸어가는 시인의 발걸음이 믿음직스러우면서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시가 “굶주림과 전쟁과 질병과 재앙”이 그칠 줄 모르고 “그릇된 믿음과/밑도 끝도 없는 적개심과 사악함이/도처에 출몰하는”(「서유기 3」) 이 야만의 시대 한복판에 “참혹하게 젖어 있는 우리의 내일”(「눈」)을 밝히는 별빛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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