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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안 될 거라 했는데" 땀으로 일군 김준성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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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성. (사진=KBL 제공)

 

2014년 9월17일. 명지대 졸업반 김준성(24)은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낙방했다. 쉽게 말하면 취업 실패다. 게다가 드래프트 당일은 간암 판정을 받았던 아버지가 퇴원하는 날이었다. 오히려 아버지는 아들이 평생해온 농구를 못한다는 사실을 걱정만 하셨다. 김준성은 울었다.

2년이 흐른 2016년 10월18일. 김준성은 다시 한 번 울었다.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2라운드 9순위.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SK 문경은 감독은 김준성의 이름을 불렀다.

단상에 오른 김준성은 흐르는 눈물을 참느라 마이크를 잡고 한참을 서있었다.

그리고 "모두 안 될 거라고 했다. 그럴 때 엄마만 힘내라고 해주셨다. 재작년에 드래프트에서 떨어졌을 때 아버지가 항암 치료 후 누워계셨다"고 소감을 밝힌 뒤 목 멘 소리로 "아빠"를 불렀다. 다시 정적이 흘렀다. 김준성은 "항상 겸손하고 열심히 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말을 이었다.

◇카페 알바·장례식장 매니저…다시 농구 선수로

2년 전 드래프트에 떨어진 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고, 어린이 농구교실에서 주말 강사도 했다. 2015년 2월 장례식장에 직원으로 들어가면서 농구공을 놓았다. 김준성의 말대로 다른 길을 갔다.

하지만 가장 잘 하는 것, 가장 좋아하는 것은 농구였다. 일단 모교인 명지대 코치로 부임했다. 그리고 올해 3월 실업팀 놀레벤트 이글스의 선수 모집 공고를 보고 다시 선수의 꿈을 키웠다. 어려운 집안 사정이었지만, 아버지는 "성공을 해도, 실패를 해도 내 아들인 것은 변함이 없다"고 힘을 실어줬다.

김준성은 "사실 위기 의식도 있었다. 내가 외동 아들인데 아버지가 편찮으시고, 어머니 혼자 직장을 다니시면서 계속 뒷바라지를 하셨다"면서 "이제 다 컸는데 이거 아니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이 농구였다"고 말했다.

김준성과 SK 문경은 감독. (사진=KBL 제공)

 

실업팀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체육관이 없어 연습경기를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선수들도 자주 바뀌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86kg이었던 체중도 72kg까지 빠졌다. 전국체전에서는 연세대를 꺾었고, 상무와도 대등한 경기를 했다.

김준성은 "체육관도, 숙소도 없었다. 고등학교란 고등학교는 다 연습경기를 했던 것 같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너무 힘들었다. 버스도 없고, 테이핑도 넉넉하지 않았다"면서 "다들 열심히 했다. 그래서 전국체전에서 그런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드래프트에 지원했을 때 다들 "안 된다"라는 말만 했다. 하지만 김준성은 부모님을 떠올리며 다시 신발끈을 조여맸다.

김준성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 간이 안 좋으셨다. 어머니 혼자 뒷바라지를 하셨다. 전기회사에서 검침을 하셨는데 경기 날이면 항상 오셨다. 어린 시절에는 어떻게 우리 엄마처럼 경기장에 잘 올 수 있을까 생각도 했다. 커서 보니까 사회 생활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면서 "그런 게 힘이 됐다. 포기하면 안 됐다"고 말했다.

사실 기대는 안했다. 그저 마지막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도전했다. 하지만 문경은 감독은 김준성의 장점을 봤다. 무엇보다 절실함이 문경은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문경은 감독은 "2년 전 드래프트에서 재능은 있는데 슛이 안 좋다는 전력분석이 있었다. 실업 기록을 보니 전부 20점이 넘었다. 나도 슛을 좀 쏴본 사람인데 노력으로 2년 사이에 좋아질 수는 없다. 노력이 보였다"면서 "그 정도 노력이라면 절실함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또 팀 분위기에 모범이 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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