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에 저항하는 젊은 연극인들의 페스티벌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진행 중입니다. 6월부터 시작해 5개월간 매주 1편씩, 총 20편의 연극이 무대에 오릅니다. CBS노컷뉴스는 연극을 관람한 시민들의 리뷰를 통해, 좁게는 정부의 연극 '검열'부터, 넓게는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뿌리박힌 모든 '검열'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리뷰 순서="">
1. 우리 시대의 연극 저널리즘 /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
2. 포르노 시대 한가운데에 선 나를 보다 / '그러므로 포르노 2016'
3. 그들이 ‘안티고네’를 선택한 이유 / '안티고네 2016'
4. 주장이 구호가 안 되게 서사의 깊이 보장해야 / '해야 된다'
5. 2016년 우리는 <김일성 만세="">를 볼 수 있는가 / '자유가우리를의심케하리라'
6. 불신, 이래도 안 하실 겁니까? / '불신의 힘'
7. 그는 검열하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겠지 / '15분'
8.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 / '광장의 왕'
9.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과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 / '이반 검열'
10. “내 정보는 이미 팔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 '삐끼ing', '금지된 장난'
11. ‘안정’이라는 질병에 대한 처방전 / '흔들리기'
12. '우리' 안에 갇힌 '우리' … 개·돼지 같구나 / '검은 열차'
13. '그때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일 / '그때 그 사람'
14. 극(極)과 극(劇) / '괴벨스 극장'
15. 그래도 행진하는 바보같은 예술을 위하여 / '바보들의 행진'
16. "털을 자르는 기준이 뭐예요?" / '검열관과 털'
17. ‘자기진술’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은 어떻게 가능할까? / '씨씨아이쥐케이'(계속)
연극 '씨씨아이쥐케이' (제공 사진)
“이걸 뭐라고 부르죠?”
면접관이 ‘연필’을 집어 들고 묻는다.
“엔-삐쯔”
“우리말로 대답 하세요”
당황한 지원자는 허둥지둥 댄다.
“우리말이요? 그럼 연필? 아니면 펜슬?”
연극 '씨씨아이쥐케이'는 미군 산하 민간통신검열부대(CCIG-K)의 조선인 검열 요원들을 선발하기 위한 면접시험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가 종횡 무진하는 이 시대는 바로 미군에 의해 군사 통치가 실시되던 시기이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48년 남한 단독 정부 수립까지의 3년, 연극에서는 미군 산하에 검열 요원들이 어떻게 민간인들의 편지를 검열하고 보고했는지, 편지의 내용들은 어떠한지를 당시의 신문기사, 소설, 영상 등 각종 기록을 재구성하여 충실히 재연한다.
연극 '씨씨아이쥐케이' (제공 사진)
당시 신문, 방송에 대한 검열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의 내밀한 편지나 전화까지 감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극의 초반부에는 검열을 통해 패전 직후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조선에서 축적한 재산을 밀반출하기 위한 정보 교류를 차단하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검열 작업은 금세 공산주의 활동을 감시하는 내용으로 전환된다. 영어도 배우고 점심 식사와 옷이 지급되는 직장에 다니게 되어 기뻐하던 조선인 검열 요원은 혼란에 빠진다.
“해방이 되었는데 이제 일본인들도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왜 계속해서 검열을 해서 미군에 보고를 하는 거지?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무엇을 지향하든 어떠한 정부이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해방된 나라의 사람들인데.”
연극 '씨씨아이쥐케이' (제공 사진)
이 연극의 미덕은 검열 작업을 둘러싼 여러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초보 검열 요원의 문제제기에 경력직 요원 오 씨는 지금 남한은 미성년자 상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통제가 필요하다고 열변을 토하는데, 식민지와 전쟁을 경험한 자의 공포와 무기력이 어떻게 검열의 존재를 내면화하는지 드러낸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일본인으로부터 적산(敵産) 가옥을 빼앗는 또 다른 검열요원, 검열 부대의 대령이지만 그 역시 검열을 당해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를 받는 미군 대령의 모습 등은 당대 혼란상을 체감하게 한다.
연극 '씨씨아이쥐케이' (제공 사진)
무엇보다 연극 '씨씨아이쥐케이'는 70여 년의 시간차를 뛰어넘어 ‘지금-이곳’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공공질서·안전·안보 등의 외피를 겹겹이 두른 채 일상에서 횡행하는 정치 검열. 수사기관이 ‘카카오-톡’을 사찰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예술인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며, 블랙리스트 속 예술인들은 지원 금지 대상이 되는 일들, 이러한 억압과 통제의 시대에 포섭되지 않고 ‘자기진술’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은 어떻게 가능할까? 내 의지는 생략된 채 사상이 주입되고 통제되는 일이 폭력이라는 것을 깨닫고, 검열의 주체와 본질을 탐색하고 나누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술계에 벌어진 검열 사태에 연극인들이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로 응답한 것처럼 말이다.
신수연 / 녹색연합 평화생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