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간 쉴새 없이 달려온 롯데 수사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영장 기각이라는 중대 변수를 만나면서 급제동이 걸렸다.
검찰은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수사의 동력은 사실상 꺾였다. 결과적으로 "신 회장에게 면죄부를 주고 끝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신 회장 측 논리 인정한 法, 반발하는 檢
29일 새벽 신 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은 "현재까지 수사진행 내용과 경과, 주요 범죄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신 회장 측의 변론이 일견 타당하다고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신 회장 측은 수사 과정에서 줄곧 "부친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그룹 경영에 실질적인 지배를 해왔기 때문에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해왔다.
검찰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검찰관계자는 "피의자(신 회장)의 변명에만 기초한 결정"이라며 "이보다 경한 사례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그동안의 재벌수사와 형평성에 반하고, 향후 대기업 비리 수사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신 회장이 그룹 컨트롤타워로 불리는 정책본부장이자 그룹 부회장으로서 대부분의 경영 업무에 부친과 함께 개입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그룹 의사결정을 할 때 신동빈 회장과 신격호 총괄회장이 공동으로 상의해 결정한 정황도 그룹 관계자의 진술 등으로 확보했다.
검찰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은 정책본부장 시절 실질적인 집행 책임자 역할을 했다고 본다"며 "불법적인 투자에 대해 막으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거나 건의할 수 있는 위치였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격호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 등을 계열사 등기이사로 이름 올려 500억원대 부당급여를 지급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를 받고 있다.
또 서씨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에 롯데시네마 내 매점 운영권을 주는 등 일감을 몰아줘 770억원대 수익을 챙겨주고,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 과정에서 다른 계열사에 470억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특경가법상 배임)도 있다.
이처럼 총수일가에서 1200억원 넘는 수익을 안겨주고 수백억대 횡령.배임이 이뤄지는 과정에 신동빈 회장의 역할이 주효했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비자금 수사 확대 어려워져…마무리 수순 밟나그러나 법원이 신 회장의 책임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당장 '수사 2라운드'를 준비하던 검찰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당초 롯데수사는 ▲롯데가(家)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횡령 배임 ▲중국 홈쇼핑 업체 등 인수합병 과정에서의 배임 ▲롯데케미칼 세금 소송사기 등 3가지 단서를 잡고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역대 최대 규모로 꾸려진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 수사 과정에서 비자금 정황이 포착됐다. 단순히 횡령 배임을 넘어 롯데건설 비자금 300억원 정황 등이 포착되면서 추가적인 비자금 여부와 용처 규명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신동빈 회장의 영장 기각으로, 향후 수사는 2라운드로 더 뻗어나갈 여지가 사실상 차단됐다.
한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신 회장의 신병을 확보해 강도 높게 수사하지 않는 이상, 비자금 용처를 밝혀내는 것은 어렵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 상태만으로는 '실패한 수사'라는 평과 함께, 검찰이 신 회장에 대해 영장을 재청구하더라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롯데 수사의 정점이 신 회장이라고 했는데, 수사 내용 때문에 영장이 기각됐다는 것은 수사가 실패했다는 의미 아니겠냐"며 "신 회장만 혐의에서 빠져나간 결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 서미경씨를 불구속 기소한 뒤 나머지 총수일가에 대해서도 조만간 불구속 기소하는 수순을 밟을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특별한 단서가 없는 이상 신 회장도 불구속 기소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재판에서도 신 회장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