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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술·오소리술 들어는 보셨습니까? 전설적인 평안도 사냥꾼의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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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산 식당, 옻순 비빔밥'의 박기영 시인이 전해주는 평안도 맹산 포수 아버지의 요리 '독수리술, 오소리술, 곰순대, 꿩두부…'

 

- 포수 아버지가 짐승을 찾아 며칠씩 눈속을 헤맬때 먹던 요리들
- 실향민 2세로서의 삶, 상실의 기억을 안고 뿌리 뽑힌 채 떠도는 것
- 시집을 낸 이유는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던 세월호 사건이 인간의 깊은 근원을 건드렸기 때문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6년 9월 16일 (금) 오후 6시 30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강헌 평론가, 박기영 시인

◇ 정관용> 안녕하십니까? 정관용입니다. 시사자키 추석특집.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밥상. 오늘 그 두번째 시간인데요. 오늘은 실향민들의 음식, 그러니까 옛날 우리 북한 음식이 되겠죠. 실향민들은 모여서 음식 나눌 친척도 없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송편도 빚지 않는 그런 추석 날을 맞이하는 실향민들이 많았었다고 합니다. 과연 그분들을 그런 명절에 어떤 음식들을 먹고 싶어 했을까. 오늘 초대한 두 분의 이야기 손님. 한 분은 시인이신데요.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이라고 하는 시집을 최근에 펴내셨어요. 맹산식당이 평안남도 맹산, 그 지역을 말하는 겁니다. 그 지역 출신인 아버님 덕에 옛 북한음식을 많이 맛봤다는 박기영 씨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박기영>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또 한 분은 여러분 잘 아시는 대중음악 평론가이신데요. 사실 맛집기행가, 음식평론가. 이렇게 불러도 손색이 없는 우리 강헌 씨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강헌>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먼저 박기영 씨는 시인 맞아요?

◆ 박기영> (웃음) 시인이 된 지가 오래된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런데 시집을 제가 보니까 91년도에 첫 시집 내시고 이번에 나온 게 두번째 시집이더라고요. 25년 동안 시 안 쓰고 뭐 하셨어요?

◆ 박기영> 그냥 떠돌았죠. 여러 군데. 우선 전국 한 바퀴 다 돌았고요. 그다음에 중간쯤 돼서는 캐나다 이민도 갔다가.

◇ 정관용> 캐나다 이민.

◆ 박기영> 네. 다시 되돌아와서 한국에 다시 들어온 지 올해로 14년쯤 돼요.

◇ 정관용> 왜 그렇게 떠도셨어요?

◆ 박기영>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는 고향이라는 문제였어요.

◇ 정관용> 고향. 우리 박기영 씨는 어디서 태어나셨어요?

◆ 박기영>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어요, 출생지는. 그런데 아버님 고향이 북쪽이고.

◇ 정관용> 평안북도 맹산.

◆ 박기영> 네. 그리고 어머님이 경상북도 상주예요.

◇ 정관용> 경북.

◆ 박기영> 두 분이 결혼하셔서 정착을 제대로 못 하신 거죠.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제주도하고 전라도 빼놓고는 다 살아봤어요.

◇ 정관용> 부모님하고 같이?

◆ 박기영> 네.

◇ 정관용> 부모님 때부터 떠도셨군요.

◆ 박기영> 네.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 정체성이 문제가 되더라고요. 특히 우리 외갓집 어머님 고향 쪽은 온천 바람이 불어서 황폐하게 무너진 곳이에요. 지금도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곳인데 그러다 보니까.

◇ 정관용> 그런 데는 있기 싫으셨고.

◆ 박기영> 네.

◇ 정관용>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평안남도 맹산 출신이시고 포수 출신이시라고요.

◆ 박기영> 네.

◇ 정관용> 그리고 실제로 대구지역에서인가 맹산식당이라는 식당도 하셨습니까?

◆ 박기영> 실제로 했습니다. 제 아버님이 남쪽에서 맨 처음 했던 직업이 나무장사였어요.

◇ 정관용> 나무?

◆ 박기영> 나무장사를 하다가 최종적으로 정착을 하신 게 대구에 정착을 하셨는데 대구에 굉장히 유명한 옻닭골목이 한 40년 전에 처음 생겼습니다. 그걸 맨 처음 만드셨던 분이에요.

◇ 정관용> 아, 옻닭집?

◆ 박기영> 네.

◇ 정관용> 저희 아버님이 하시기 전까지는 대한민국에서 옻닭이라는 음식은 그냥 집에서 사먹는 것이었지, 식당에서 사먹는 게 아니었어요.

◇ 정관용> 그 덕에 우리 박기영 시인도 옛날 북한 음식, 아버님이 드시던 음식을 여러 가지 맛보시고 그런 것을 이 시집에 고스란히 담으셨더라고요.

◆ 박기영> 네.

◇ 정관용> 우리 강헌 씨도 제가 아까 소개할 때 맛집기행가, 음식평론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고 했는데 북한 음식 쪽도 좀 아세요?

◆ 강헌> 저는 완전 반대죠, 우리 박 시인님이랑은. 제 부모님은 다 일본에서 태어나셨고요. 저는 태어나서 20년 동안 부산에서만 살다가 이제 서울에 올라왔으니까.

◇ 정관용> 그러니까요.

◆ 강헌> 제 일가친척 중에는 실향민 한 분도 없고.

◇ 정관용> 그렇죠.

◆ 강헌> 그래서 저는 오히려 서울에 와서 지금은 이런 맛집 미식 붐이 일면서 젊은이들까지 완전하게 미식에서 뜬 음식이 있다면 냉면이 있잖아요.

◇ 정관용> 그렇죠.

◆ 강헌> 평양의 냉면인데.

◇ 정관용> 평양, 함흥 다.

◆ 강헌> 제가 20대 초반 때 냉면을 먹으러 가면 젊은이들은 냉면집에 거의 없었습니다.

◇ 정관용> 노인네들만.

◆ 강헌> 전부 실향 노인들만 계셨는데 그 냉면을 저는 처음으로. 그 당시 부산에만 하더라도 평양 냉면집이 없었습니다.

◇ 정관용> 부산은 밀면 이런 게 있었죠.

◆ 강헌> 네. 밀면, 함흥냉면집은 있었는데.

◇ 정관용> 있었어요?

◆ 강헌> 평양냉면집은 부산에는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그걸 서울에서 처음 접하면서 평양음식에 대해서 굉장히 그때부터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죠.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분단된 지 꽤 오래 됐지만 평안도 음식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이 커진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리고 그 관심이 있어서 북한 음식도 찾아서 이것저것 많이 드셔보시고? 그런데 아마 박기영 시인의 시집에 등장하는 음식 중에는 아마.

◆ 강헌> 무시무시한 게 많이 등장하죠. (웃음)

◇ 정관용> 한 번도 못 먹어본 게 더 많을 걸요?

◆ 강헌> 못 먹어본 것은 고사하고 처음 듣는 이름이에요.

◇ 정관용> (웃음) 그럼 본격적으로 하나씩 얘기해 볼까요?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옻순비빔밥. 실제로 이걸 맹산식당에서 아버님이 파셨어요?

◆ 박기영> 네, 팔았습니다. 옻순을 식품화 처음 시킨 장본인이고 대중화시킨 장본인이 저희 아버님이세요.

◇ 정관용> 이거 옻오르지 않으세요?

◆ 박기영> 옻오르죠. 그런데 잘 모르는 사실 중의 하나는 북쪽에는 의외로 옻으로 음식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 박기영> 네. 그리고 옻과 관련돼서는 북한 태천 옻이 굉장히 세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리고 사냥 음식에서는 옻이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 강헌> 사냥 음식에서는.

◆ 박기영> 일반 짐승하고 다르게 사냥은 하게 되면 짐승 몸 안에 피가 그대로 배어 있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 박기영> 그런데 그 피를 빼는 역할을 옻을 통해서 하게 됩니다.

◇ 정관용> 그래요?

◆ 박기영> 그래서 사냥 음식들은 옻물에 살짝 이렇게 재웠다가 하게 되면 그 특유의 누린내라든지 이런 잡내가 없어집니다.

◇ 정관용> 그래요?

◆ 박기영> 그러다 보니까 옻을 손쉽게 다루죠.

◆ 강헌> 사냥에서는 굉장히 중요하네요.

◆ 박기영> 굉장히 중요한 음식입니다.

◆ 강헌> 그런데 옻순은 사실은 꼭 평안도 쪽뿐만 아니라 사실 전국적으로 사실은 다 오랫동안 먹어본 거 아닙니까, 몰래몰래.

◆ 박기영> 몰래몰래 먹어봤던 것들은 아니고요. 옻순은 사실 이동이 불가능한 음식이었어요. 그러니까 가서 현지에서 대표적으로 경남 함양, 마천이라든지 아니면 충북 옥천, 원주. 그것도 일반화되지 않고 그냥 키우는 사람들이 있고 잠깐 동안에 며칠 정도밖에 못 먹는 거죠. 한 3일.

◇ 정관용> 딱 3일?

◆ 박기영> 네. 3일 정도 먹는데 그것을 일반화시켰죠. 그래서 함양 마천에 있는 지금부터 40년 전에는 저희 아버님이 마천에서 옻순을 차로 실어서 대구 근방에다 풀고 그랬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시집의 내용을 보니까 ‘사내새끼들이 제대로 된 비빔밥을 먹어야지’ 이러고 나오는데 그 제대로 된 비빔밥이 바로 옻순비빔밥이다?

◆ 박기영> 옻순을 묵나물로 해서 비빔밥을 해 먹으면 꼭 고기 먹는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고기 씹는 맛이 나요?

◆ 박기영> 네, 특유의 맛이 납니다.

◇ 정관용> 그래요?

◆ 박기영> 옻순 자체가 나물 중에서도 특이하게도 기름기를 가지고 있는 나물입니다.

◇ 정관용> 기름기가 있는 나물.

◆ 박기영> 네. 그리고 단맛을 가지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까 최근에 옻순이 일반화된 지는 사실은 한 8, 9년밖에 안 될 겁니다. 제가 옥천 내려가서 옥천에서 옻순축제를 만들어줬어요. 그러면서 그때도 첫 해 옻순축제 할 때 캐치프레이즈가 ‘옻 오른 사람은 오지 마시오’였어요. (웃음)

◇ 정관용> 여기 보면 그 맹산식당에도 직접 써놓으셨다면서요. ‘옻 오르는 놈은 들어오지 마시오’ 이렇게.

◆ 박기영> 아주 혹독한 경험인데 이 옻이 오르고 나면 굉장히 괴로워요.

◇ 정관용> 가렵고 그렇죠.

◆ 박기영> 그러면 그런 음식을 팔았다고 와서 상을 뒤집어엎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아예 글자를 써붙이셨죠. 옻 오르면 옻 들어오지 마시라.

◆ 강헌> 저 어렸을 때는 최악에는 생명을 잃기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 박기영> 먹어서 그런 것은 사실 없습니다. 옻에 대해서 참 특이한 게 옻을 금기시키고 공포스럽게 만든 사람들은 일본인이에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옻을 식품에 굉장히 많이 썼어요. 된장을 담을 때도 된장의 잡내를 없애고 달게 만들 때는 꼭 그 옻나무 가지를 밑에 깔고 그 위에 장을 담았어요.

◇ 정관용> 그래요.

◆ 박기영> 거의 한 80에서 90%가 거의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일본인들이 그걸 못 먹게 했죠.

◇ 정관용> 왜요?

◆ 박기영> 일본이라는 나라는 있으면 옻은 거의 국기적인 문제입니다. 제팬(Japan)이라는 것이 칠을 하는 국가라는 뜻이거든요.

◇ 정관용> 칠. 그렇죠. 옻칠이 또 가장 좋은 칠 재료죠.

◆ 박기영> 네. 그래서 일본인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벌였던 일 중의 하나가 전국의, 한국의 옻 주산지에 어떤 옻이 잘 되는가 실험한 거고요. 그다음에 옻을 못 먹게 한 겁니다.

◇ 정관용> 칠해야 되니까, 먹으면 안 되니까.

◆ 박기영> 네.

◇ 정관용> 그런 거군요.

◆ 박기영> 그리고 노동착취 방법으로 보급을 했고요. 그리고 일제시대 당시에 옻칠을 채취한 기술자는 징병에서도 제외시킬 정도로 굉장히 귀하게 쳤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

◆ 강헌> 옻나무에 정말 이게 한일 근대사가 숨어 있네요.

◇ 정관용>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 방송에서 이대로 읽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옻올랐다고 지랄하는 놈은 김일성이보다 더 나쁜 놈이여’ 이렇게 쓰여 있네요. (웃음)

◆ 박기영> 흔히 말하는 70년대, 80년대의 가장 험한 욕이 대한민국에서는 그 욕이었죠. ‘김일성이보다 나쁜 놈’ 그러면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는데 어쨌든 글씨까지 써놓고 했는데 와서 올랐다고 치면 너는 김일성보다 더하다. 그런 식입니다.

◇ 정관용> 강헌 씨도 이거 못 먹어봤죠?

◆ 강헌> 저는 못 먹어봤습니다.

◇ 정관용> 옻닭은 즐겨 드세요?

◆ 강헌> 옻닭은 자주 먹었죠.

◇ 정관용> 그 시 앞에 있는 시가 ‘오소리술’인데요.

◆ 박기영> 지금 흔히 말하는 냉면 북한 사람들 겨울철에 먹는데 먹는 이유가 사실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그 육수를 꼭 꿩 육수를 했습니다.

◇ 정관용> 꿩.

◆ 박기영> 꿩 동치미를 쓰고. 그런데 그 꿩을 쓰는 이유가 감기몸살에 꿩이 약이었습니다. 그래서 겨울철에 냉면을 먹으면 추위를 견뎌내고 항바이러스적인 기능이 아주 강했어요. 그런데 그게 사라져버린 거죠. 그리고 오소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정관용> 오소리가 동물이죠?

◆ 박기영> 동물이죠.

◇ 정관용> 그런데 그걸로 술을 담가요?

◆ 박기영> 술을 담고요.

◇ 정관용> 어떻게 담가요?

◆ 박기영> 안에 있는 내장 빼고, 기름 빼고.

◇ 정관용> 쓸개, 기름 빼고.

◆ 박기영> 그것은 따로 다른 약으로 쓰고 나머지는 다 모아서 누룩하고 쌀하고 같이 넣어서 땅속에 묻습니다.

◆ 강헌> 이렇게 생고기 그대로.

◆ 박기영> 네, 그렇게 해서 1년 정도 지나면 그게 술이 돼서 나와요.

◇ 정관용> 잠깐만요. 아니, 독한 소주를 넣어서...

◆ 박기영> 아닙니다.

◇ 정관용> 예를 들면 뱀술 담듯이.

◆ 박기영> 누룩을.

◆ 강헌> 누룩을 발효시키는 거죠. 아, 이건 상상하기가 힘든데요.

◇ 정관용> 저희가 생각할 때 보통 동물의 술을 담근다 하면 내장 같은 것을 가지고 독한 술에 담가서. 이건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 박기영> 담금주 식의 방식인데.

◇ 정관용> 이것은 동물 한 마리를 아예 발효를 시켜요?

◆ 박기영> 네, 그렇습니다. 우리 북쪽 계통의 음식에서는 엉뚱한 게 참 많습니다. 된장에다가 돼지 다리를 잡아 넣는다든지 이런 방법을 쓰죠.

◇ 정관용> 통째로 넣어요, 돼지 다리를? 그래서요?

◆ 박기영> 그래서 한 1년쯤 묵힙니다. 묵혀서 꺼내서 하몽 먹듯이 그렇게 썰어먹습니다.

◆ 강헌> 그건 충분히 상상이 되네요.

◆ 박기영> 지금도 그 풍습은 흔히.

◆ 강헌> 하몽이라는 것 자체가 어차피 돼지 넓적다리에 소금으로만 해가지고 24개월 이상 숙성시키는 거니까 된장으로 하면 된장에 푹 박으면 되는데. 이건 상상이 되는데 오소리술은 정말 상상이.

◆ 박기영> 오소리술뿐 아니라 흔히 말해서 독수리 같은 경우에도 북쪽에서는 정신병이 있으면 그 술을 담가서 먹였습니다.

◇ 정관용> 독수리로 술을 담가요? 그것도 발효시킵니까?

◆ 박기영> 네, 발효시킨 거죠. 지금 같은 경우에, 우리 같은 경우에 남쪽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동물성 술은 만들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법으로.

◇ 정관용> 아. 법으로 금지돼 있습니까?

◆ 강헌> 그것도 법이 참 신경 많이 쓰시네.

◆ 박기영> 아까 얘기했던 법이라는 자체가 일제시대의 주류법하고 식품안전관리법을 그대로 이어받다 보니까 우리 고유의 풍습들이 자꾸 제외된 거죠.

◇ 정관용> 아니, 하기는 오소리 같은 건 요즘은 아주 귀한 동물들 아닙니까? 천연기념물까지는 갔나 안 갔나 모르겠네.

◆ 박기영> 아직 안 갔고요. 가축으로 사육도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아, 오소리를 키우기도 해요? 아니, 좌우간 그렇게 야생동물을 그렇게 함부로 잡고 그러면 안 되기 때문에 이런 걸 지금 오소리술 담가 먹자. 이런 말은 할 수 없고 옛 추억의 맛으로써 이런 것도 있었구나라는 정도인데. 드셔보셨어요, 오소리술? 어떤 맛이 납니까?

◆ 박기영> 씁쓸해요. 그 동물술들은 전부 씁쓸합니다. 알코올도 있고요.

◇ 정관용> 알코올 도수는 막걸리랑 비슷해요?

◆ 박기영> 막걸리 비슷합니다.

◇ 정관용> 많이 세지 않고?

◆ 박기영> 처음에 개봉했을 때 냄새는 기가 막힙니다.

◆ 강헌> 기가 막히다는 게 진짜 기가 막힌 건가요? 아니면 맛있다는 뜻인가요?

◆ 박기영> 제가 담는 음식 중에서는 어육장이라는 것이 있는데.

◇ 정관용> 어육장?

◆ 박기영> 어육장 같은 경우도 처음 개봉할 때는 기가 막힌 향기가 나옵니다.

◇ 정관용> 향기?

◆ 박기영> 차마 어떻게 이런 향기가 나올까 싶을 정도로 아주 정말 향기가 좋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동물성 단백질 땅속에서 발효했을 때는 특유의 잡내나 이런 것은 전혀 없고요. 특유의 냄새가 아주 고소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납니다.

◇ 정관용> 강헌 씨는 전혀.

◆ 강헌> 상상을 초월하는 겁니다.

◇ 정관용> 역겨운 냄새가 나지 않을까.

◆ 강헌> 그럴 것 같은데.

◆ 박기영> 전혀 안 그렇습니다. 정말 이 발효의 세계는 정말 신도 알 수 없으니.

◇ 정관용> 내친김에 어육장은 어떤 건지 좀 소개해 주세요.

◆ 박기영> 어육장은 꿩, 소고기, 전복, 조기 이걸 말려서 메주와 같이 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 정관용> 조합이 이상한데요?

◆ 박기영> 조합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 정관용> 꿩하고 소고기하고.

◆ 박기영> 전복.

◇ 정관용> 전복? 바다?

◆ 박기영> 전복하고요.

◇ 정관용> 그다음에.

◆ 박기영> 그다음에 어떤 집에서는 조기나 이런 생선도 잡아넣습니다.

◇ 정관용> 아니, 육해공군이 다.

◆ 박기영> 다 들어가는 거죠. 그런데 기록상에만 우리가 남아 있던 것을 최근에 와서 몇몇 사람들이 재현을 하는데 가장 큰 핵심적인 사항들을 우리가 까먹고 있어요. 뭐냐 하면 옛날에는 굉장히 추웠거든요.

◇ 정관용> 특히 북한은 더 춥죠.

◆ 박기영> 네, 그렇게 되면 소고기라든지 꿩이라든지 명태처럼 얼었다 녹았다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안의 핏기가 다 빠져 나갑니다, 사실은. 그런데 요즘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되지가 않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 박기영> 그러다 보니까 어육장을 보관하고 재현하시는 분들이 번번이 실패를 해요. 왜냐하면 핏기가 안 빠져나오면 나중에 비린 냄새라든지 이런 것들이 장 속에 남습니다. 그런데 그걸 명태 만들듯이 얼었다 녹였다 얼었다 녹였다 하면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그걸 제대로 재현들을 못하는 거죠. 그리고 거기에도 아까도 얘기했듯이 잡내 없애기 위해서 옻을 넣고.

◇ 정관용> 옻을 넣고.

◆ 박기영> 그렇게 해서 1년 동안 땅속에 묻어놓습니다.

◇ 정관용> 그럼 그 결과물이 결국 장인 거예요?

◆ 박기영> 네, 장이 나오는 거죠. 거기에서 장을 갈라요. 간장 따로 가르고 된장 따로 가르고 고기 따로 갈라서 먹게 되는 거죠.

◆ 강헌> 왜냐하면 간장은 온갖 단백질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동남아시아 같은 경우에는 생선으로 간장을 만들죠. 그걸 어장이라고 하고요. 그런데 어장은 우리나라에서도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육장은 말씀하신 것처럼.

◇ 정관용> 육해공군이 다.

◆ 박기영> 육해공군 최고의 뭐랄까, 초호화로운 장이죠.

◇ 정관용> 그렇게 해서 거른 간장의 맛은 일반 간장과 어떤 차이가 있어요?

◆ 박기영> 상상을 초월할 수 없습니다. 저희들이 대체적으로 한 3리터 정도? 일본 친구들만 다 사가버리거든요. 아마 거의 완벽한 소스일 거예요.

◇ 정관용> 그래요. 그렇게 하고 남은 고기도 또 먹어요?

◆ 박기영> 고기는 조리해서 먹습니다. 전복은 그냥 썰어서 먹으면 되고 그다음에 조기는 찌면 되고요.

◇ 정관용> 참. 우리 강헌 씨가 음식평론가라고 여기 앉아계신데 별로 할 말이 없네요.

◆ 강헌> 할 말이 없죠.

◇ 정관용> 한 번도 먹어본 게 없기 때문에.

◆ 강헌> 아니, 어육장은 먹어봤는데 진기명기의 영역입니다.

◇ 정관용> 어육장 드셔보셨다고요?

◆ 강헌> 네. 방금 말씀하셨듯이 최근에 어육장을 이렇게.

◇ 정관용> 재현해서.

◆ 강헌> 재현을 하고 사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왜냐하면 사실 간장이라는 게 우리나라에는 너무, 집에서 보통 담그지 않고 그냥 공장에서만 만든 간장이 모든 간장의 영역을 침식해 버렸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실 우리에게는 굉장히 다양한 간장의 문화가 있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이제 다시 옛 문헌들을 토대로 해서 추가된 질문, 뭐랄까 연구가 있거든요. 그 덕분에 맛을 봤는데. 저는 그렇게 사실 솔직히 감동을 못 받았습니다마는 선생님 말씀 들어보니까 아직까지 제대로 못 만든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러니까. 박기영 시인이 만든 것도 특별한 거죠?

◆ 강헌> 그 말씀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 정관용> 꽁꽁 얼었다 녹았다.

◆ 강헌> 고기를 마치 황태덕장에서 말리듯이. 이렇게 얼렸다 녹였다 얼렸다 녹였다 이 과정이 중요하다.

◇ 정관용> 그리고 옻이 들어가야 되는 게.

◆ 박기영> 그리고 지금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여러 음식들이 고기 발효과정을 거의 없애버린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느낀 것이 과메기 같은 경우.

◇ 정관용> 과메기.

◆ 박기영> 우리가 과메기 포항분들 옛날 구룡포 분들은 그걸 어디에 놨느냐 하면 두엄 위에다 던져서 발효를 시켰거든요.

◆ 강헌> 지금처럼 말리는 게 아니고.

◇ 정관용> 바람에 말리는 게 아니고 두엄 위에서. 슬슬 열을 받으면서 발효가 된다.

◆ 박기영> 그렇게 발효가 되면 기름기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요. 고기가 좀 퍼석퍼석하고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식으로 안 하죠. 그리고 이제 원래는 청어에서 내려올 때도 그렇게 됐고. 그러니까 우리 음식 전달법들이 좀 이렇게 너무 상업화되다 보니까 사실은 전통업계와 단절이 돼 버린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 정관용> 지금 여기까지 방송 들으신 분들은 ‘저 사람들 뭐하는 사람들이야. 오소리로 술을 담고 독수리로 술을 담고 고기를 된장에 넣어서 삭힌다고? 참 희한한 사람들이네’ 이럴 것 같은데. 평안남도 지역에서는 지금 쭉 소개하신 그런 음식들을 항시 먹던 겁니까, 어떤 겁니까?

◆ 박기영> 저희집 같은 경우는 아버님이 포수였기 때문에 특이하게 됐는데 일제 당시에 아버님 같은 경우에는 대표적인 친일 인사로 볼 수 있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 박기영> 왜냐하면 일제 때는 한 군에 공식 포수를 한 사람밖에 안 줬습니다. 총기를 만져야 되니까. 흔히 말해서 자기한테 협조 잘 되고 이런 친구한테 포수.

◆ 강헌> 본인의 가족을 이렇게 친일하셨다고 말할 수 있는 분들은 우리나라에 굉장히 보기 드문데.

◆ 박기영> 아니요, 그건 명확한 사실이니까요.

◆ 강헌> 박 선생님이 처음이신 것 같아요. 다른 분들도 본받았으면 좋겠는데.

◆ 박기영> 그리고 저희 맹산 쪽 저희 집 뒤에 이제 해방공간 쪽에서는 홍명희 씨가 와서 살았거든요.

◆ 강헌> 벽초 홍명희 선생이요.

◇ 정관용> 혼불의 작가?

◆ 강헌> 아니요, 아니요. 임꺽정.

◇ 정관용> 임꺽정.

◆ 박기영> 북한에서 부수상까지 하셨죠.

◆ 강헌> 네. 그 당시 군정사령관 1소련쪽 군정사령관이었던 두브체크인가 그 친구가 자주 왔다고 합니다. 왔는데 저희 아버님이 그 지역의 유일한 포수니까 같이 다니고 그랬거든요. 그 덕에 저희 형님은 북쪽에 칠남매가 있는데 배다른 이복형 칠남매가 있는데 저희 큰형님은 그 덕분에 강동정치학원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최종적으로 군에서 제대하실 때는 북쪽에서 상좌 계급을 달고.

◇ 정관용> 그러니까 평안남도 지역 맹산지역이라고 누구나 맛보는 음식이 아니고.

◆ 박기영> 사냥꾼들만이 가지고 있었던 문화들이죠.

◇ 정관용> 오늘 ‘북한 음식 이야기 하겠습니다’가 아니네요.

◆ 박기영> 북쪽의 산간지역.

◇ 정관용> 산간지역 포수 집안에서 먹던 진귀한 음식.

◆ 박기영> 꿩이라든지 토끼 정도는 흔히 말해서 북한 주민들이 누구나 만질 수 있는 것이었거든요. 그리고 이것 같은 경우에도 꿩 잡는 방법이 좀 다르죠.

◇ 정관용> 어떻게 잡나요?

◆ 박기영> 총으로 잡는 게 아니거든요. 낚시로 잡습니다.

◇ 정관용> 낚시로? 어떤 낚시요?

◆ 강헌> 꿩을 낚시로?

◆ 박기영> 겨울철에 눈이 오면 콩을 불립니다. 콩을 불리고 거기에다가 낚싯줄을 숨겨서 들에 널어놓으면 꿩이 날아가다가 콩 비린내가 굉장히 멀리 퍼지죠. 그러고 나서 물고 이제 목에 걸려서 잡히는 거죠.

◇ 정관용> 그래요.

◆ 박기영> 그게 현재로 넘어오면서 일본 친구들이 흔히 말하는 극독물 사인을 풀게 되니까 사인에다가 넣고 뿌리는 정도로 바뀐 거죠.

◇ 정관용> 그런데 총으로 쏴서 잡는 것과 그렇게 낚시로 잡는 것의 차이가 어떤 게 있어요. 맛이 어떻게 다릅니까?

◆ 박기영> 낚시로 잡으면 죽은 채로 안 잡힙니다. 산 채로 잡혀요. 그럼 그렇게 잡아서 피를 뺄 수가 있습니다. 총으로 잡은 것들은 흔히 말해서 납탄이 그대로 붙어 있죠.

◇ 정관용> 붙어있고 몸속에 피가 남아 있는 채로 죽으니까.

◆ 박기영> 남아 있는 채로 죽으니까 맛이 없습니다.

◇ 정관용> 그렇군요.

◆ 강헌> 똑같은 어종도 낚시로 잡느냐, 작살로 잡느냐.

◇ 정관용> 다르죠.

◆ 강헌> 그리고 그물로 잡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 정관용> 물고기 같은 경우에는 바다 속에서 작살로 잡았을 때.

◆ 강헌> 그게 가장 비싸다고 합니다.

◇ 정관용> 피가 한꺼번에 쫙 빠지기 때문에 그게 더 좋다, 이렇게 하던데 꿩은 낚시로 잡는다. 여기 꿩두부, 꿩냉면 이런 건 좀 보편화된 음식들이죠?

◆ 박기영> 보편화돼 있죠. 북한 쪽에서도 보편화돼 있는데 만두 만들 때도 북한에서는 만두용 두부를 따로 만들어 씁니다.

◆ 강헌> 만두용 두부.

◆ 박기영> 그러니까 두부를 이렇게 끓여서 꿩을 다져서 가루로 만들어서 꿩을 뿌리면 꿩고기에 두부가 모입니다. 그렇게 해서 짜서.

◆ 강헌> 아, 그러니까 꿩과 두부를 가지고 섞는 게 아니고?

◆ 박기영> 섞는 게 아닙니다.

◆ 강헌> 두부 자체에 만들 때.

◆ 박기영> 꿩고기 가루를 뿌리면 꿩고기 옆으로 두부가 엉키게 됩니다. 그게 꿩두부입니다. 그래서 두부 종류가 사실은 굉장히 다양하게 나올 수 있거든요. 김치를 뿌리면 김치가 모여서 될 수가 있고요.

◇ 정관용> 김치두부. (웃음)

◆ 박기영> 굉장히 다양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정관용> 두부가 엉기는 과정에 어디를 중심으로 만드느냐. 남쪽에는 그런 거 없죠?

◆ 강헌> 네, 처음 듣습니다.

◆ 박기영> 남쪽과 북쪽 음식 차이가 이런 것 같아요. 북쪽은 거의 밭작물 중심으로 음식들이 발달됐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 정관용> 논이 적으니까.

◆ 박기영> 네, 잡스럽고 단순합니다. 굉장히 단순합니다. 단순하고. 이쪽 남쪽 음식들은 참 제가 돌아다녀본 바로는 경상도 쪽만 해도 음식이 굉장히 특색 있는 짜게 만든 이유가 있어요. 경상도 음식은 굉장히 짜게 만든.

◇ 정관용> 왜요?

◆ 박기영> 물산이 적거든요. 물산이 적다 보니까 짜야 나눠먹게.

◇ 정관용> 조금씩 먹고 두고두고 먹고.

◆ 박기영> 전라도처럼 젓갈도 발달이 안 돼 있고. 제가 이제 한창 떠돌아다닐 때 보니까 경상도는 한 마지기가 120평까지 나갑니다. 강원도처럼.

◇ 정관용> 전라도는 200평?

◆ 박기영> 아니죠. 진도 같은 경우는 300평에서 400평 정도. (웃음)

◆ 강헌> 한 마지기 단위가 다르다.

◆ 박기영> 맞아요, 단위가 달라요.

◇ 정관용> 그렇군요.

◆ 박기영> 그래서 고향 음식이 다 다른 맛이 느껴지는 거죠.

◇ 정관용> 꿩두부 얘기 들었고 꿩냉면은?

◆ 박기영> 그런데 기본적으로.

◇ 정관용> 냉면육수를 꿩고기로 낸 거죠.

◆ 박기영> 그리고 동치미를 담글 때도 그 동치미 국물을 꿩국물로 해서 담습니다.

◇ 정관용> 꿩 육수로 동치미를.

◆ 박기영> 지금은 동치미들이 보면 그렇게 맑은 색인데 북한 음식에서는 청갓이 하는 역할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 강헌> 청갓.

◆ 박기영> 그러니까 남쪽 것하고 다릅니다. 흔히 말하는 갓김치, 남쪽 갓김치와 북한 갓김치가 전혀 다릅니다.

◇ 정관용> 그래요?

◆ 박기영> 북한에서는 갓김치를 짠지처럼 담습니다. 담가서 항아리에 넣고 1년, 2년 그냥 둡니다. 그래서 하나만 이렇게 딱 꺼내서 잘게 썰어서 국수국물에 딱 풀면 국수국물이 빨갛게 됩니다.

◇ 정관용> 색깔 전체가 바뀐다.

◆ 박기영> 네. 그걸 이제 먹을 수 있는 길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마지막 먹어봤던 게 강원도의 양구였거든요. 그리고 그 갓김치를 익힐 때는 꼭 나무독이 필요했습니다.

◆ 강헌> 나무독이.

◆ 박기영> 나무독이 없어졌죠. 그러니까 그런 건 못 먹는 음식이 돼 버린 거죠.

◇ 정관용> 그건 지금 재현하실 수 없으세요?

◆ 박기영> 재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청갓 자체를.

◇ 정관용> 구하기가 어렵죠.

◆ 박기영> 옛날만큼 구하기가 힘들어요. 옛날에는 서리 막 내리고 나서 수확을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수확을 안 하더라고요.

◇ 정관용> 아예 품종 자체가.

◆ 박기영> 달라졌어요.

◇ 정관용> 갓하고 청갓하고 다른 거죠?

◆ 박기영> 다르죠.

◇ 정관용> 맛도 좀 다른 겁니까?

◆ 박기영> 겨자 냄새가 아주 강합니다.

◇ 정관용> 청갓이 훨씬 강해요?

◆ 박기영> 네, 훨씬 강합니다. 그래서 냉면에 겨자 넣는 거 북쪽에서 오신 분에게 물어보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 강헌> 그렇죠.

◇ 정관용> 그분들은 이미 청갓에서 그 향이 나니까.

◆ 박기영> 나기 때문에 안 넣습니다. 그리고 식초 역시 마찬가지죠. 동치미의 시큼한 맛이 있으니까 넣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게 이제 대중화되고 이러다 보니까.

◆ 강헌> 소고기로 육수를 내다 보니까 그런 이제. 동치미를 쓰지도 않고. 그러니까 식초를 넣어야 하고. 청갓이 없으니까 겨자를 넣어야 하는 거죠.

◆ 박기영> 꿩육수 동치미가 했던 역할이 있습니다. 유산균도 많고 역할이 있었는데 그 범위는 요즘 맛 찾아 다니는 분들이 생각을 안 하시는 것 같아요. 흔히 말해서 혀끝에 대한 느낌만 아주 강해서.

◆ 강헌> 냉면이 여름음식이 돼버렸지 않았습니까.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겨울에.

◇ 정관용> 북한은 겨울에 먹었었는데.

◆ 강헌> 먹어야만 되는 이유가 있었다면.

◆ 박기영> 그리고 아버님하고 같이 음식을 할 때 보면 메밀이 남쪽과 북쪽이 달랐다고 그래요. 북쪽에서는 흔히 말하는 순메밀로 해도 차지게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아무리 해도 차지게 나오지 않아요.

◇ 정관용> 뚝뚝 끊어지죠.

◆ 박기영> 네. 그러다 보니까 전분이 들어가게 되고 특이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위질하는 냉면이 돼 버린 거죠.

◇ 정관용> 그렇군요. 냉면 하나만 해도 우선 그 원재료가 되는 메밀부터 다르니까 옛날 북한식 제대로 된 냉면을 먹어본다는 건 지금으로서는 참 상상하기 어렵겠군요.

◆ 박기영> 좀 힘든 편이죠.

◇ 정관용> 그렇죠. 시사자키 추석특집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밥상. 그런데 이것 참 지키기가 참 어려운 밥상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평안남도 맹산 포수집안에서 드시던 그런 음식들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시인 박기영 씨, 대중음악 평론가 강헌 씨와 함께하고 있는데요. 이 시집에 등장하는 음식 중에 가장 무시무시한 음식이 곰순대인데. 진짜 곰 잡아서 하는 겁니까?

◆ 강헌> 네, 곰을 잡아야 가능한 요리입니다.

◇ 정관용> 어머나. (웃음)

◆ 강헌> 이거야말로 정말 미션 임파서블이네요.

◆ 박기영> 지금처럼 차를 타고 사냥하던 시절도 아니고 곰을 한번 추적하게 되면 일주일씩 이렇게 추적을 하게 되는데 그릇 같은 걸 못 가져가거든요. 쌀만 지고 가서 잡게 되면 지금 한의원 하시는 분들도 이 이야기를 모르실 거예요. 곰 쓸개, 웅담 값은 말입니다. 거기에 이름이 몇 개 달리냐에 따라 값이 결정되는 거예요.

◆ 강헌> 무엇이 몇 개 달렸나?

◆ 박기영> 이름.

◆ 강헌> 이름이요?

◇ 정관용> 웅담에 이름이 달려요? 포수가 몇 명 동원됐나?

◆ 강헌> 아니요.

◇ 정관용> 그럼?

◆ 강헌> 곰을 만들면 순대를 만들어요. 곰을 잡으면 현장에서 그대로 창자를 내서 그 창자를 그대로 뒤집어서 곰고기를 잡아넣으면 한 마리가 그 안에 다 들어갑니다, 창자 안에.

◇ 정관용> 곰고기를 저며서 창자 속에 넣는다.

◆ 박기영> 네, 뒤집어놓은 채로.

◇ 정관용> 한 마리가 다 들어간다?

◆ 박기영> 다 들어가요. 다 들어가고 포수는 대가리부터 쓸개까지만 하나 들고 오고. 그다음에 현장에서 순대에 싸리나무로 구워요. 구우면 외부에 붙었던 이상한 물질들은 다 타고 없어지고 순 고기순대만 남게 되죠. 그걸 둘둘 말아서 내려와서 가장 가까운 부락에서부터 그 고기를 썰어줘요, 사람들한테. 썰어주면서 웅담을 만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웅담은 생으로 먹는 게 사실 아닙니다. 웅담을 종지기에 굽고 그걸 졸입니다. 졸여서 그걸 다시 웅담 자리에 넣거든요. 그리고 그 웅담거리를 길게 쭉 뽑아요. 먹은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씁니다. ‘맹산군 수정리 강현’ 하고 자기가 먹었다고 증명서를 붙입니다. 증명서가 많으면 많을수록 어떤 의미냐면 곰이 컸다는 이야기거든요.

◇ 정관용> 당연하죠, 당연하죠.

◆ 박기영> 웅담도 그렇게 해서 발효를 시켜요.

◇ 정관용> 그럼 요즘 한약재 웅담 하는 건 전통적 방식으로 만든 게 아니네요.

◆ 박기영> 아니에요.

◇ 정관용> 그냥 그대로 웅담을 말려서 쓰는 건데.

◆ 박기영> 그것도 흔히 말해서 졸이고. 그러니까 졸이다 보니까 크게 만들 수도 있고 적게 만들 수도 있죠.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이름을 붙이고. 그리고 그걸 겨울철 내 잡아서 가지고 평양으로 가지고 나가면 그 사람들 숫자에 따라서 웅담 가격이 결정이 되는 거예요.

◇ 정관용> 곰의 크기가 거기에 나오니까.

◆ 박기영> 거기서 드러나니까.

◇ 정관용> 이런 얘기 들어봤습니까?

◆ 강헌> 처음 들어요. 곰순대라는 걸 처음 들어요.

◇ 정관용> 박기영 씨도 이건 못 먹어봤을 것 같은데.

◆ 박기영> 아니요, 먹어봤어요.

◇ 정관용> 어떻게 드셔보셨어요?

◆ 박기영> 80년 당시에 곰들이 넘쳐흘렀습니다.

◆ 강헌> 80년대까지만 해도요?

◆ 박기영> 80년대 당시에. 어디에서 나오는 곰이냐면 흔히 말하는 전 씨네 일가들이 퍼뜨린 곰이 대한민국에 굉장히 많았습니다.

◆ 강헌> 네?

◆ 박기영> 양육하던 곰, 사육하던 곰.

◇ 정관용> 전 씨네 일가라면 전 대통령?

◆ 박기영> 네.

◇ 정관용> 그 일가가 사육을 했어요, 곰을?

◆ 박기영> 곰을 수입을 해서 곳곳에서 사육을 했습니다.

◇ 정관용> 왜요?

◆ 박기영> 흔히 말하는 웅담이나 건강식품으로 팔아먹었죠.

◇ 정관용> 그래요?

◆ 박기영> 네.

◇ 정관용> 그래서 곰사냥이.

◆ 박기영> 사냥이 아니라 곰을 잡고 팔게 되면 누군가 그걸 손을 봐야 되잖아요. 누가 손을 볼 수 있어요? 사냥꾼만 손을 볼 수 있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아버님이?

◆ 박기영> 불려가서 해체하고.

◆ 강헌> 이제 그 사람들이 필요한 건 웅담뿐일 테니까.

◆ 박기영> 웅담뿐이고 다른 거는 어떻게 쓸 줄 모르고.

◇ 정관용> 그래요?

◆ 강헌> 그러면 그 곰을 한 마리를 다 순대에다가 담으셔서. 맛은 어떤가요?

◇ 정관용> 아버님이 직접 불려가신 가게가, 누구한테 불려간 거예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말해 보세요.

◆ 박기영> 흔히 말하는 1970년대,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밀렵 천국이었습니다.

◇ 정관용> 밀렵?

◆ 박기영> 네, 밀렵의 천국이었는데 곰뿐만 아니라 사냥 이런 것들 의외로 굉장히 많이 잡혔습니다.

◇ 정관용> 사냥.

◆ 박기영> 그러면 주로 어디에서 잡혔다 그러면 처리하는 방법은 저희 아버님이 영남지방에서 가장 솜씨가 뛰어났어요. 가서 해 오시고 그랬습니다.

◇ 정관용> 그렇군요.

◆ 박기영> 그래서 김윤환 씨 같은 경우에도 처리를 했고, 돌아가신.

◇ 정관용> 허주 김윤환.

◆ 박기영> 네. 경상도 일대에서는 편안하게, 솜씨를 가지고 있는 동안은 편안하게 지내셨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곰순대까지도 만드셨고.

◆ 박기영> 네.

◆ 강헌> 그럼 곰순대 맛은 어떤가요?

◆ 박기영> 소시지보다 좀 질기다고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아버님이 가장 어려워했던 게 싸리로 해야 하는데 싸리로 못 했어요. 그냥 일반으로 했는데 싸리 향기가 없으니까 맛이 좀 덜하다고 말씀하셨어요.

◇ 정관용> 그런데 아무튼 옛날에는 곰을 사냥해서 마을 사람들한테 한 점씩 한 점씩 귀한 음식이니까 맛봐라. 대신에 이름을 써라.

◆ 박기영> 먹은 사람 이름을 써라.

◇ 정관용> 그래서 곰의 크기를 그걸로 가늠을 했다. 전설 같은 얘기입니다.

◆ 박기영>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 정관용> (웃음) 명태밥이라고 하는 건 뭡니까?

◆ 박기영> 밥을 하는데 명태 내장만 빼고 전부 다 같이 밥을 하는 거예요.

◇ 정관용> 통째로 명태를 넣어서?

◆ 박기영> 네.

◇ 정관용> 쌀을 넣고 밥을요?

◆ 박기영> 네. 그리고 나중에 이제 같이 푸는 거죠.

◇ 정관용> 왜요?

◆ 박기영> 북한 음식 중에서 아주 단순화시킨 음식들이 많아요. 콩비지밥이라든지 시래기밥이라든지.

◆ 강헌> 명태밥은 지금 동해안지방에서 팔죠?

◆ 박기영> 네.

◇ 정관용> 동해안지방에서 팔아요?

◆ 강헌> 특히 함경도 쪽 실향민들이 모여 있는 천호동에 아직도 명태밥이 있고요. 실제로 생선을 그대로 넣어서 밥을 하는 경우에는 다른 지역에도, 남쪽에도 많이 있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 강헌> 가령 섬진강 쪽에 가면 예를 들어서 은어밥.

◇ 정관용> 은어밥?

◆ 강헌> 네. 밥을 할 때 은어를 그대로 넣어서 밥을 합니다. 그리고 밥이 다 되면 은어가 다 익었을 거 아닙니까. 그러면 수저로, 이건 적으니까. 수저로 살을 쭉쭉 훑어내는 거죠.

◇ 정관용> 뼈는 바르고, 가시는 바르고.

◆ 강헌> 가시도 작으면 그냥 먹어도 되고요. 약간 간장양념을 해서.

◇ 정관용> 비벼 먹는다?

◆ 강헌> 굉장히 맛있죠.

◆ 박기영> 그런 음식들이 차츰차츰 바뀌어 버린 거죠.

◇ 정관용> 이 시집에 또 하나. 청국장 반다지라고 하는 음식이 있는데요.

◆ 박기영> 반대기.

◇ 정관용> 반대기? 여기에 ‘남쪽 에미나이들은 이 맛을 몰라. 며칠씩 눈 속을 헤매봐야 알디’ 이렇게 써 있는데 이건 뭐고 어떨 때 먹는 겁니까?

◆ 박기영> 전형적인 전투식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청국장을 소금하고 같이 이렇게 다져서 손으로 눌러버리거든요. 그리고 그걸 이제 불에 굽습니다.

◇ 정관용> 구워요? 그래서요?

◆ 박기영> 수분 다 날려버리고 그럼 그거 하나만 들고 가면 며칠씩 먹을 수 있습니다.

◇ 정관용> 엄청 짤 거 아니에요.

◆ 박기영> 네.

◆ 강헌> 그런데 그 안에 아주 엄청난 열량이 들어 있으니까 전투식량이 되죠.

◆ 박기영> 전투식량이 되죠.

◆ 강헌> 실제로 일본에서도 된장을 이렇게 국자에다가 구워서 그렇게 먹는 문화들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된장 구워먹으면 맛있어요.

◇ 정관용> 그러니까 포수들이 산에 짐승들 사냥하러 갈 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 강헌> 비상식량이죠.

◇ 정관용> 그릇이나 이런 거 챙겨서 못 간다. 그럼 어떻게 식사를 해먹었던 거예요?

◆ 박기영> 가장 좋은 건 육포를 만들어가는 거예요.

◇ 정관용> 육포. 그건 금방 이해가 됩니다.

◆ 박기영> 육포 이렇게 노루라든지 곰고기로 육포 만들어가면. 소 같은 경우에도 육포를 만들면 한 사람이 질 정도로 그게 줄어든다고 하거든요.

◇ 정관용> 유목민들이 항상 먹던 거니까.

◆ 박기영> 그다음에 청국장반대기 하나, 두세 개 정도. 그다음에는 쌀 미숫가루.

◇ 정관용> 한국에 와서도 사냥을 계속 하셨죠?

◆ 박기영> 사냥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곳 자체가 70년대 후반까지도 흔히 말해서 총기 관리가 철저했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 박기영> 그랬는데 저희 아버님 직업 중에 하나가 이제 지금은 국립경찰시대라서 충주에서 다 교육을 다 받습니다마는 옛날에는 도립경찰시대였습니다. 도 단위에서 교육을 하고 있는데 도립경찰 학교의 식당을 한 15년 가까이 하셨어요. 그러면서 엉뚱하게 만질 수 있었던 게 흔히 말하는 경찰총, 칼빈총 같은 거. 경찰 간부들하고 사냥을 가끔 다니시고 그러셨는데.

◇ 정관용> 불법으로.

◆ 박기영> 불법이 아니라 이건 *4148 비위배적이죠?

◇ 정관용> 비위, 비위적.

◆ 박기영> 대충 산에 가시면 간부들한테 자리를 목을 하나씩 알려줘요. 알려주면 노루를 몰면 다 놓쳐요. 그런데 아버님은 딱 한 군데서 딱 빵! 거리면 한 마리예요.

◇ 정관용> 백발백중 명사수셨네요.

◆ 박기영> 백발백중 명사수인 것도 있지만 노루가 가다 보면 가서 자기가 서 있는 곳이 딱 있어요.

◇ 정관용> 그 습성을 아시니까.

◆ 박기영> 네. 아시니까 거기만 딱 보고 있는 거예요.

◆ 강헌> 잡으려고 해도 움직이는 노루를.

◆ 박기영> 못 잡아요. 꿩도 날아오를 때는 쏴서 잡는 게 아니거든요. 날아올라서 수평을 잡을 때. 수평 잡으면 그다음부터는 직선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거기 그 앞에 총을 쏘는데 그런 특징들을 잘 가지고 계셨어요.

◇ 정관용> 그렇군요. 오늘 이 방송의 콘셉트를 바꿔서 이제는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 이런 식으로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튼.

 

◆ 강헌> 그렇지만 또 이렇게 북한 음식 중에서도 지금도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음식 냉면 말고도 또 있잖아요.

◇ 정관용> 대중화된 것도 있으니까.

◆ 강헌> 빈대떡.

◇ 정관용> 빈대떡도 있고. 그런데 빈대떡도 이 시집에 나오던데.

◆ 강헌> 시집에 굉장히 재미있는.

◇ 정관용> 여기 뒤적이지 말라우, 그대로 있으라우.

◆ 강헌> 50 다 된 남자와 10살 아들이 사는 여자 없는 집.

◇ 정관용> 그런데 왜 빈대떡을 뒤집지 말라고 하셨어요.

◆ 박기영> 빈대떡은 딱 한 번 뒤집는 겁니다.

◇ 정관용> 딱 한 번?

◆ 강헌> 인생에 한 번.

◇ 정관용> 그 밑에 있네요.

◆ 박기영> 너무 뒤적뒤적거리면.

◇ 정관용> 딱 한 번 뒤집는 기여, 사는 길은.

◆ 박기영> 사실 아버님 혼자 내려와 보니까 아버님이 음식을 잘하셨던 건 아니거든요. 아버님도 이제 어깨 너머로 보셨던 음식인데 남쪽에 와서 남쪽 어머님이 북한 음식 못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직접 하시면 이제 옆에 있던 꼬마가 거둘 수밖에 없는데 북한 음식은 혼자 할 수 있는 음식이 별로 없습니다.

◇ 정관용> 누가 도와야 합니까?

◆ 박기영> 네. 꿩을 하든지 분틀로 국수를 눌러도 둘이 해야 합니다, 사실은. 둘이 해야 되는. 그러다 보니까 어린 내가 거들게 됐는데. 사실은 이 빈대떡 시는 참 쓸쓸한 시입니다.

◇ 정관용> 왜요?

◆ 박기영> 실향민들은 압니다. 제일 기분 나쁜 날이 추석, 설.

◇ 정관용> 그렇죠.

◆ 박기영> 아주 기분 나쁩니다. 그날 오면 더 우리 아버님 같은 경우는 다른 거 안 합니다. 제사 지내고 나면 이불 뒤집어씁니다.

◇ 정관용> 고향에 두고 온 일가친척들, 처자식들.

◆ 박기영> 그런데 유일한 그걸 달래는 게 흔히 말해서 음식들인데. 빈대떡하고 만두하고 이런 것들인데. 그걸 당신께서 직접 하실 때마다 어떤 느낌이셨겠어요.

◇ 정관용> 고향이 그렇게 그리우셨겠죠, 사무치도록.

◆ 박기영> 이 850만이었거든요, 사실 실향민이. 850만인데 남쪽 정부나 북쪽 정권이나 이 실향 자체를 묵인하고 끌고 가는 거 아니에요?

◇ 정관용> 그렇죠. 이제 뭐 많이들 돌아가셨고.

◆ 박기영> 돌아가신 것보다 2세들이 가지는 충격이 더 큽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실향 2세인데.

◇ 정관용> 실향 2세도 비슷한 정서가 있어요?

◆ 박기영>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고향이라는 데도 가고 귀향을 하는데 갈 데가 없었잖아요. 옆집에서는 친척들 돌아다니면서 돈 걷고 하는데 그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지워지지도 않고요. 그리고 그걸 내가 내 자식한테 물려줘야 된다는 입장이 되면 좀 다릅니다. 이제 이걸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서로가. 제가 사회에 나와서 같은 실향민 2세들을 만날 때마다 가장 잘 친해집니다.

◇ 정관용> 그래요?

◆ 박기영> 왜냐하면 그 명절이 가졌던 60개, 120일이 가졌던 상처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 정관용> 저희가 실향 2세의 아픔까지는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네요.

◆ 박기영> 사실은 심각한 문제거든요. 그쪽에서는.

◇ 정관용> 알겠습니다. 오늘 좀 정리하면서 우리 강헌 씨는 여기 참 진귀한 음식들 쭉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 강헌> 정말 뭐 말로만 들어도 굉장히 말씀하신 어떤 사무침이 느껴져요. 전혀 우리가 가보고 접하지도 못하는 북한, 특히 평안도 음식들이 남쪽 사람들도 대중적으로 많이 누리게 된 것이 저는 굉장히 개인적으로는 좀 굉장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 정관용> 그렇죠.

◆ 강헌> 그런데 오늘 정말 그중에서도 더욱더.

◇ 정관용> 진귀한 것들.

◆ 강헌> 그렇죠. 본질적인 어떤 평안도 음식에 대한 얘기를 들어서 저도 오늘 너무 새로운 얘기를 많이 들어서 굉장히 기쁩니다.

◇ 정관용> 알겠고요. 박기영 시인께서는 처음 시작할 때 제가 ‘시인 맞아요?’라고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서 25년 만에 두번째 시집을 바로 이 음식 이야기로 써야 되겠다.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는지. 마지막으로 한 말씀.

◆ 박기영> 사실 이 시집 원고가 거의 폭풍처럼 왔어요. 폭풍처럼 왔는데 기회가 됐던 건 사실은 세월호 사건이었어요. 세월호 사태를 겪으면서 길을 걸을 수가 없었어요. 차를 타고 가다가도 눈물이 나는데 그 눈물은 어떻게 보면 내 근원에 대한 눈물이었던 것 같아요.

◇ 정관용> 근원에 대한 눈물.

◆ 박기영> 네. 그리고 나서 주섬주섬 나왔던 게 음식부터 시작해서 가장 원초적이잖아요. 맛에 대한 것은 가장 원초적인 것이고 거의 뭐 사실 속수무책일 정도로 쏟아져 나왔어요. 백 한 오십편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중에서 음식들만 가지고. 북쪽 음식, 그다음에 남쪽에서 내가 경험했던 음식들을 따로 모아서 했는데 하여튼 큰 문화적 충격이나 정신적 충격 자체가 근원을 다시 두드리게 하는 겁니다. 그 근원을 두드리다 보니까 내가 누군가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사실 꺼내게 되고 꺼낸 것 중에서 가장 저 같은 경우는 음식 쪽으로 간 것 같아요.

◇ 정관용> 엄청난 충격과 슬픔 앞에서 내 생애 근원을 찾아 음식으로 귀결됐다. 그게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이라고 합니다. 오늘 나와 주신 시인 박기영 씨, 또 대중음악평론가 강헌 씨 오늘 고맙습니다.

◆ 강헌> 감사합니다.

◆ 박기영> 감사합니다.

◇ 정관용> 시사자키 추석특집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밥상 여기에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남은 추석 연휴도 잘 보내시고요. 저는 다음 주 월요일 다시 인사드리죠.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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