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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의 맛] 한 시간 이상 줄 서는 동네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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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종' 정웅 사장…국내파 제빵사의 도전

외식시장의 전설로 불리는 사장님들이 들려주는 '장사의 철학', 그들의 이야기가 "장사나 해 볼까?" 생각하는 창업 꿈나무들과 장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700만 자영업자들에게 장사의 대한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칼럼을 시작한다. [편집자 주]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1990년대까지만 해도 빵의 계급 차는 크지 않았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기성품이냐, 제과점에서 만든 수제품이냐 하는 차이 정도? 물론 그때도 제과점 빵이 갑이었지만. 제빵 기술을 익혀 동네 빵집이라도 운영하면 맛이나 상권과 관계없이 먹고 살만하던 시절이었다.

2000년 이후, 프랜차이즈 빵집들의 습격을 받은 동네 빵집들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싹쓸이를 당했다. 급기야 홍대의 랜드마크였던 '리치몬드 제과점'이 철수하고, 30년 전통의 신촌 명물 ‘이화당’까지 폐업 위기에 처하면서 동네 빵집 시대는 끝나는 가 했다. 참고로 리치몬드 제과점은 성산동으로 이전했고 이화당은 새 단장을 하고서 프랜차이즈 빵집들과 한판 승부에 나섰다. 지금도 이화당이 신촌 명물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걸 보면 승부에서 밀리지 않은 모양이다. 다행이다.

그런데 2010년 이후 동네 빵집의 역습이 시작됐다. 슬금슬금 프랜차이즈 빵집들의 포위망을 뚫기 시작하더니 몇 년 사이에 골목상권의 강자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강하게 성장한 동네 빵집들은 특징이 있다. 비주얼 위주의 간식빵이 아니라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식사빵 위주라는 것. 더불어 유기농 재료와 천연 발효종으로 만들고 빵 종류가 단촐하다. 담백한 맛에 매료된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그 파급력은 꽤 컸다. 이제는 동네마다 식사빵 위주의 개인 베이커리가 하나 둘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 최고의 인테리어는 손님

이태원의 '오월의 종'은 동네 빵집 시대를 연 대표선수다. 또한 천연발효종 빵을 대중화 시킨 초기 주자다. 평소 빵 좀 뜯어봤다는 빵 마니아들 사이에서 '오월의 종'은 성지 같은 곳이다.

이 집 빵을 먹기 위해서는 한 시간 이상 줄서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만 한다. 구매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간혹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와 사재기하는 사람도 있다. 늘 오랜 시간 줄서야 하거나 멀리서 왔기 때문일 것이다.

재밌는 건 빵의 대량구매를 가장 적극적으로 말리는 사람이 정웅 사장이라는 것이다.

"빵은 갓 만들어 온도가 적당해야 맛있으니 알맞게 구입하시라고 말씀드려요. 그래서 동네빵집에도 가보시라고 하죠. 찾아보면 맛있는 빵이 많거든요."

'오월의 종' 정웅 사장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요식업 최고의 인테리어는 손님이라는 말이 있다. 손님이 많은 가게는 믿고 들어가도 된다는 얘기다. 정웅 사장은 고도의 마케터일까? 그를 한번 만나보자.

정웅 사장은 해외 유학은 고사하고 그 흔한 연수 한 번 다녀오지 않은 순수 국내파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시멘트 회사에 다녔다. 적성에도 맞았고 일도 즐거웠지만 성취도가 떨어졌다. 직장생활이라는 게 승진해도 어차피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회의가 들었다. 남한테 간섭 안 받고 내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일이 바로 빵 만드는 일이었다.

그와 빵의 만남을 두고 뭔가 운명적이고 드라마틱한 것을 기대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가 될 테니까.

정웅 사장이 다니던 시멘트 회사 근처에 제빵학원이 있었다. 매일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 '저기는 뭐하는 곳일까?'하는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2층 창문 너머로 빵 만드는 사람을 보고 자신이 찾던 일(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그래, 저걸 한 번 해보자'라고 결심했다. 그렇게 싱겁게, 문득 길거리에서 그는 빵을 만났다.

제빵학원에 다니기 전에는 음식을 만들어 본 경험도 없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요. 시멘트 만드는 연구실이랑 빵 만드는 장소가 굉장히 유사하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제빵학원 다니면서 알게 됐어요."

더 재밌는 건 그는 빵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제 돈을 주고는 빵을 사본 적이 없어요(웃음) 좋아하지도 않았거든요."

인생이라는 건 이렇게 반전이 있어서 재밌다.

◇ 명장을 만나다

빵을 좋아하지 않았으니 자신이 등록한 학원이 어떤 학원이었는지도 몰랐을 터. 그런데 그 학원은 바로 그 유명한 '리치몬드' 제과 산하의 제빵 명장 권상범 씨가 이끄는 학원이었다. 그래서 권상범 명장에 대해서 물었다.

"제 인생에서 또 하나의 막을 열어주신 분이죠. 저한테는 정말 크신 분이지만 스스로 제자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정웅 사장에게 권상범 명장은 단순히 제빵 스승 그 이상이었다.

제빵기술학원에는 나이 제한이 있었다. 물론 모든 과정에 나이 제한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는 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니 많이 배워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가장 긴 제빵 과정을 신청했는데 그것은 진학과 취업을 위한 정규반 과정이라 나이 제한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는 서른 한 살이었다. 그 나이가 제빵을 배워 진학하거나 취업하기에는 늦은 나이라는 얘기일 거다. 꼭 하고 싶다고 떼를 쓰는 그의 입학을 받아준 건 다름 아닌 권상범 명장이었다. 그리고 늦깎이 제빵사인 정웅 사장을 자신이 운영하는 리치몬드 제과점에 취업시켰다.

그는 "늦은 나이에 말 딴 제빵사로 갈 데가 없어서 였을 겁니다(웃음)"라고 했지만 후배 양성에 특별한 뜻이 있는 권상범 명장의 눈에 정웅 사장의 재능 혹은 태도가 남달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권상범 명장을 만나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둘은 닮은 데가 있었다.

그렇게 제빵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2년 동안 하루 8시간씩 빵을 만들었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열심히 했고 해외 관련서적들을 독파하며 공부했다. 자격증을 딴 후엔 리치몬드 제과점 등 다른 빵집에서 3년 경력을 쌓은 후 드디어 2005년 5월 12일 일산에 '오월의 종'을 창업했다.

보통 제빵업계에서 3년 경력으로 창업을 한다는 건 힘든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에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처음 빵을 배우겠노라고 했을 때 아내에게 '3년이란 시간을 내게 주면 3년 후 빵가게 열어 수입을 내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나를 믿어주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켜주고 싶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빵의 종류는 엄청나게 많다. 그 가운데 정웅 사장이 바게트 같은 하드계열의 식사빵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제가 만든 케이크는 맛이 없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바게트로 눈을 돌렸고, 이후 그는 다양한 식사빵을 만들어 왔다.

정웅 사장이 빵가게를 오픈할 당시에는 달고 부드러운 빵을 선호할 때였다. 당시 사람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빵 때문에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많았다. 샤워종(천연발효종의 하나) 호밀빵은 원래 시큼한데 상한 빵을 팔았다고 격하게 항의하면서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 그건 원래 그런 빵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손님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빵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겐 그게 당연했다. 그런 상황이니 장사가 됐을 리 만무하다. 결국 보증금만 날리고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3년 버틴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생애 첫 가게였던 일산 '오월의 종'은 상처만 남긴 채 그렇게 문을 닫아야 했다. 빚만 1억이었지만 빵가게를 그만 둘 생각은 없었다. 더 작고 소박한 가게를 찾아 이태원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때만 해도 유럽식 식사빵이 먹힐 곳은 이태원이나 강남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이태원에서도 하드계열의 식사빵은 이른 감이 있었다. 3년이나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아예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다. 새로 빵 가게가 생겼다고 해서 한번 온 손님이 단골이 되고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그게 쌓이고 쌓인 게 3년. 조금씩 손님이 늘더니 급기야 매일 줄을 서는 빵집이 되었다.

정웅 사장이 가장 자신 있는 빵은 뭘까?

"바게트입니다. 동시에 가장 어렵고 자신 없는 빵이기도 합니다. 바게트는 가장 단순한 빵이지만 대신 사람이 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여기서 잠깐! 리치몬드의 권상범 명장에게도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제가 그래도…. 식빵은 자신 있는데…."

제빵 명인이 최고로 뽑는 빵 역시 가장 기본이 되는 식빵이었다. 내가 만난 명인들의 공통점은 기본에 충실하고 기본에 가장 공을 들인다는 것이다. 역시 기본은 옳다.

◇ 직원은 모두 파티시에

담백한 빵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단골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웰빙 바람과 맞물리면서 스타 빵가게로 자리매김 하자 여러 기업들이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상호만 빌려달라거나 백화점에 입점하자는 제안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보다 규모를 늘려서는 빵맛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아요. 어떤 제안이 들어와도 안할 겁니다."

가맹점은 절대 안 하겠다는 그는 대신 걸어서 2, 3분 근거리에 2호점을 냈고 리브레 커피와 손잡고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3호점을 냈다.

가맹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매장의 빵이 그의 손을 거치는 건 아니다. 가게마다 빵 종류도 다르고 만드는 사람도 다르다. 그렇지만 '빵은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철직만큼은 분명히 고수한다. 권상범 명장도 그랬다. 빵이 움직이면 맛이 변한다고. 그래서 가맹점을 해서는 빵맛을 지킬 수 없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둘은 많이 닮았다고!

오월의 종은 모든 직원이 빵을 만드는 제빵사다. 빵을 포장하고 계산을 해 주는 이도 마찬가지다. 빵을 만든 사람이 손님에게 직접 빵을 소개하고 파는 것이 어쩌면 가장 질 높은 서비스가 될 지도 모르겠다. 정웅 사장도 이태원 시절의 초기 3년을 그렇게 버텨왔다. 손님에게 다소 생경해 보이는 빵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소통한 것이 단골을 만든 비결이었던 것이다. 뭐든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니까.

◇ 장인의 손끝은 느리다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오월의 종'은 이태원에 문을 연 지 일곱 해나 지났고 연일 줄을 서야 빵을 살 수 있지만 하루에 만드는 빵의 양은 크게 늘지 않았다. 일정 생산량을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지금보다 양을 늘리면 빵맛이 변해요. 호밀빵 같은 경우, 발효부터 반죽까지 일주일 정도 걸리고…. 비교적 재료나 과정이 간단한 바게트나 식빵도 기온이랑 습도에 민감해 손이 많이 가거든요."

나름대로 매일 맛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선에서 한계치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 아닌 지 의심한다.

"저는 그 정도로 머리가 똑똑한 사람은 아니고요….(웃음) 빵에 집중하다 보니까…."

그의 꿈은 빵 만드는 일을 오래 오래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일을 오랫동안 즐겁게 하려면, 일단 맛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이쯤 되면 정웅 사장에게는 수입이나 손님보다 빵 혹은 빵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인다. 그래서 '오월의 종'에서의 중요도를 순서대로 꼽아보라고 했다. 역시나 1위가 빵이고 2위가 빵 만드는 직원이고 3위가 손님이라고 했다. '손님은 왕'이라고 했는데 겨우 '넘버 3'라니 손님 입장에선 다소 괘씸하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그것이 '장인'의 자질이 아닌가 감히 생각해 본다. 예부터 장인들은 손님이나 제자보다 자신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을 더 애정하지 않았던가. 장인이 공들여 만든 빵을 먹고 싶지 않은 사람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인의 빵은 많이 만들어 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정판일 수밖에 없다. 인내하고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장인의 빵을 먹게 될 것이다. 그런 빵은 변함없는 품질을 유지할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 정웅 사장이 돈과 손님에게 휘둘리지 않을 때 그 빵은 지켜질 터. 또 어느 정도는 우리 손님이 지켜줘야 할 몫이기도 할 것이다.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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