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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빛을 두고 싶었어요. 등 뒤에 있는 빛의 웅덩이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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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의 단편 모은 소설집 '중국식 룰렛'

- 단편은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의 첨단
- 타인을 이해하는 게 곧 연대의 시작 아닐까?
- 한국사회의 가장 큰 惡? 타인에 대한 폭력!
- 타인에 대한 이해는 곧 상상력의 문제일수도
- 다양한 인간 군상 그린 소설 통해 상상력 확장 필요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6년 9월 5일 (월) 오후 7시 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은희경 작가

 

◇ 정관용>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이런 소설들 여러분 기억하시죠? 지난 95년에 데뷔해서 벌써 20년을 넘긴 중견 소설가 은희경 작가. 이번에 6편의 단편을 모은 단편집 ‘중국식 룰렛’을 들고 다시 여러분 앞에 섰네요. 오늘 은희경 작가를 스튜디오에 직접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은희경>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지금까지 장편 몇 개, 단편집 몇 개?

◆ 은희경> 총 13권인데요. 아마 반씩?

◇ 정관용> 반, 반.

◆ 은희경> 네, 그런 것 같아요.

◇ 정관용> 바로 그런 점에서 꾸준히 장, 단편을 왔다 갔다 쓰시는 대표적 작가로.

◆ 은희경> 네, 꾸준하긴 해요. (웃음)

◇ 정관용> 왜 그러세요? 장편과 단편이 다 나름 재미가 있으세요?

◆ 은희경> 네. 굉장히 다른 장르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단편소설은 약간 정물화 같은 느낌? 그런 것이고. 장편소설은 풍경화라고 할까요? 그래서 뭔가 제가 생각하고 있는 어떤 근본적인 생각의 변화, 아이디어 이런 건 단편에 쓰고요. 딱 이야기로 쓰고 싶을 때가 있어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야기로. 그럼 장편 쓰고. 대부분은 장편 쓰고 다음에 또 단편집 내고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 정관용> 방금 언급하신 근본적 생각의 변화는 단편에 실린다?

◆ 은희경> 네.

◇ 정관용> 상식적으로는 큰 장편, 심지어 대하소설 이런 것 속에서 자기의 생각과 사상, 철학, 문명론 이런 게 다 녹아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의외인데요? 단편이 생각의 변화를 보여준다?

◆ 은희경> 단편이 훨씬 좀 실험적이고요. 그리고 가장 또 뭐랄까.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첨단.

◇ 정관용> 아, 알겠습니다.

◆ 은희경> 제가 지금 도착한 사유라고 할까요? 그런 것에 더 동기부여가 돼요.

◇ 정관용> 그러니까 끝까지 검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 이건 이런 것 아닐까?’ 싶을 때 단편을 쓰신다?

◆ 은희경> 네. 그런 것도 있어요. 장편은 충분히 많은 이야기가 안정이 돼야지 쓸 수 있으니까요.

◇ 정관용> 아, 이해가 됩니다. 이번 단편집은 그럼 어디에 도달한 생각입니까? (웃음)

◆ 은희경> 제가 2년 전에 단편집을 또 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쓴 단편 6편이고요. 그 이전 제 단편집하고 성격이 안 맞아서 놔뒀던 것들, 그런 게 두 편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 표제작이 된 ‘중국식 룰렛’은 8년 전에 썼던 거고요. 그리고 뒤에 있는 것들은 지난 2년 사이에 쓴 것들입니다.

◇ 정관용> 2년 사이에 쓴 것들이고. 그래서요, 거기서는 어디에 도달한 생각을 주로 담으셨던 것들입니까?

◆ 은희경> 글쎄요. 최근 작이 어쩌면 가장 저의 최근 근황이라고나 할까요? 그럴 수 있는데. 어떻게 설명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 소설이 전의 소설에 비해서 좀 연대감?

◇ 정관용> 사회적 연대감?

◆ 은희경> 그렇죠. 연대감 그리고 제 소설은 그렇게 표현했어요. 우리는 어차피 부조리한 세상의 어둠을 피해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겠지만, 우리 인간이. 하지만 뒤에서 어떤 다정한 부력이 우리를 안아줄 거라는.

◇ 정관용> 지탱해 주고 있다.

◆ 은희경> 네, 그런 생각을 좀 해 봤어요, 이번 소설에서는.

◇ 정관용> 삶이 힘들어도 누군가 옆에서 나를 붙들어준다?

◆ 은희경> 그렇게도 표현할 수 있고 아무튼 조금 빛이 있어요. 빛을 두고 싶었어요. 등 뒤에 있는 빛의 웅덩이 같은 거?

◇ 정관용> 그게 누구예요? 사람입니까?

◆ 은희경> 우리들이 그렇게 서로를 알고 이해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정관용> 힘든 우리들?

◆ 은희경> 네.

◇ 정관용> 우리들이 서로서로 붙잡아줘야 된다, 이런 거?

◆ 은희경>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소설을 쓸 때 ‘이런 걸 내가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이걸 말해야지’ 이런 것보다도 ‘나는 도대체 모르겠는데 이것 좀 질문해 보자’ 그런 생각으로 쓰기 때문에 어떤 결론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쨌든 소설을 쓸 때 그 문제에 아주 많이 빠져들었고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

◇ 정관용> 독자들이 느껴야죠, 그걸 가지고.

◆ 은희경> 네.

◇ 정관용> 지금 6편의 소설 중에 보니까 남성이 주인공이고 화자인 소설이 더 많아요.

◆ 은희경> 네.

◇ 정관용> 원래 그렇게 하십니까?

◆ 은희경> 네. 좀 그래요. 지금까지 소설에도 남자 화자가 훨씬 많아요.

◇ 정관용> 왜 그렇죠? 남자를 잘 아세요?

◆ 은희경> 그럴 때는 남자 입장에서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인간 대표를 남자로 두는 거예요.

◇ 정관용> 아.

◆ 은희경> 그러니까 특별히 어떤 여성문제라거나 사회적인 그런 거일 때 이 주인공은 꼭 여자여야 된다, 심리적으로 보더라도. 그럴 경우가 아니고는 보통의 이야기를 쓸 때는 좀 남자 주인공으로 얘기를 하는 게 일단은 쓰기가 편해요.

◇ 정관용> 그 보통의 이야기의 화자이고 주인공인 남자들은 이 책에서도 보면 ‘중국식 룰렛’의 남자는 ‘나는 운이 없는 남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남자이고. ‘대용품’에서는 ‘나 자신은 다른 사람의 대용품에 불과하다’ 이렇게 말하는 남자고. 어찌 보면 그렇게 막 잘나가는 남자 이런 게 아니고 세상에 치이고 좀 보잘 것 없고 그냥 보통 그런 남자들이거든요.

◆ 은희경> 네. 여자 주인공도 마찬가지고요. 제 소설은 조금 이렇게 되고 싶다는 사람이 안 나오고 왜 이렇게 돼버렸을까, 그런 사람들이 주로 나와요. 그럴 때는 남자주인공이 꼭 어떤 남성성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어떤 한 사람이 인간으로서 이야기를 풀어가기가 더 쉬워서 그렇게 남자화자를 대표로 세운 것일 뿐이에요.

◇ 정관용> 그래서 ‘난 이렇게 힘들다’, ‘난 이렇게 운이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결국은 그 사람들도 뒤에서 떠받혀주는 뭔가가 있다?

은희경 작가

 

◆ 은희경> 그렇게 답이 딱 나온 것 같지는 않은데요. 어쨌든 간에 일단은 모두가 힘든 상황 그리고 이게 우리 잘못이 아닌데도 무엇인가 어떤 부조리하고 모순된 폭력 같은 것이 우리를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 그런 생각들이 기본적인 제 소설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그 전에 제 소설은 세상을 못 바꾸니까 나라도 바꾸자. 내 생각이라도 바꾸자. 약간의 자기방어적인 그런 경향이 있었는데 어쨌든 제가 지난번 소설집부터, 지난번 소설집에는 그냥 ‘고독의 연대’라는 말을 많이 썼어요. 각자 고독한 사람들끼리 무슨 힘을 합치자가 아니라 가만 놔두자, 이게 연대다. 그런 얘기를 썼는데 이번 소설에는...

◇ 정관용> 이번에는 불운의 연대입니까, 그러면?

◆ 은희경> 조금... 불운, 너무 비극적이에요. (웃음)

◇ 정관용> (웃음)

◆ 은희경> 그런데 어쨌든 간에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타인을 이해한다는 게 연대의 시작이라는 그런 생각도 좀 해봤어요.

◇ 정관용> 네가 운이 없으면 나도 없고, 이렇게 공감하는 것.

◆ 은희경> 네. 그리고 술 얘기에서 썼지만 천사가 2%를 가져간다고 해도 맛있는 술에서만 가져가는 게 아니라 모든 술에서 가져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공평한 것 같아요.

◇ 정관용> 위스키를 숙성시키다 보면 2% 정도 증발돼 나가는 것, 그걸 천사가 먹는 것이다. 이렇게 보통 표현하는 지금 그걸 말씀하시는 거죠?

◆ 은희경> 네.

◇ 정관용> 그런데 그건 좋은 술이나 나쁜 술이나 똑같아요? 2%가?

◆ 은희경> 네.

◇ 정관용> 그런 게 운이 없는 겁니까, 그러면? 2% 뺏기는 게?

◆ 은희경> 그러니까 자기가 생각할 때 ‘나는 왜 운이 없을까. 다 뺏기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뭐랄까요. 제가 설명하기는 좀 어렵지만 어쨌든 간에 그냥 자기 선택이라는 게 중요하고 자기가 보는 자기 인생이 중요하다는 그런 뜻도 될 것 같아요.

◇ 정관용> 자기 선택. 자기가 보는 자기 인생.

◆ 은희경> 네.

◇ 정관용> 이런 말이 또 나옵니다. ‘별의 동굴’이라는 소설에 ‘기준을 낮게 잡으면 낙천적이 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욕망을 조절하면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이런 표현. 이런 게 자기 선택, 자기가 보는 자기 인생 이건가요?

◆ 은희경> 조금 그건...

◇ 정관용> 눈높이를 낮춰라, 이건가요?

◆ 은희경> 아니, 그게 지금 이 주인공의 결론이 아니에요. 그렇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안전지대에서 머물 수는 없어요. 그런 사람에게도 결국 더 어떤 험난한 선택을 해야 될 상황은 오거든요. 아무리 저런 식으로 나는 그냥 크게 바라지 않는다. 나는 이 정도 자존심 살리면서 그냥 이렇게 살겠다. 이렇게 해도 어차피 운명은 피할 수 없어서 우리가 그것마저도 포기해야 되는 순간이 온다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했던 주인공이 결국은 그것 때문에 무너지는 것.

◇ 정관용> 그래요. 이런 건 없을까요? 남의 잣대에 비추어서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할까. 내지는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모두가 그런 상실감과 아픔 같은 것들을 다 조금씩 갖고 있단 말이에요.

◆ 은희경> 네.

◇ 정관용> 그런데 거기서 ‘그래, 여기서 만족하고 눈높이를 낮추자’ 이런 선택만 가지고도 답이 안 된다. 이런 말씀이시잖아요.

◆ 은희경> 그렇죠.

◇ 정관용> 그럼 아예 가치관과 생활세계 자체를 바꿔서 남이 생각하는 기준이 아니라 자기의 어떤 행복 이렇게 나가는 그런 건 없을까요?

◆ 은희경> 그러니까 사실 거기까지가 제 이전의 소설 색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세상을 못 바꾸니까 내 생각을 바꾸고 나의 어떤 관점을 바꾸고.

◇ 정관용> 나라도 행복하게.

◆ 은희경>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생각한 사람에게 그렇다고 해서 안전하지는 않다는 얘기를 이번 소설에서는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건 결국 악을 두둔하는 것밖에 안 됐어요. 지금 우리를 자꾸만 구속하고 있는 그런 불합리한 세계를 강화시켜주는 것밖에 안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좀 솔직해지는 소설이었어요, 그 ‘별의 동굴’에서는.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던 게 정말 내가 그래서인가. 나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랬던 게 아닌가.

◇ 정관용> 맞아요. 자기 혼자 행복 이렇게 하면 사실 시대의 방관자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결국은 악을 두둔한다.

◆ 은희경> 네.

◇ 정관용> 은희경 작가에게 한국사회의 가장 큰 악은 뭡니까?

◆ 은희경> 타인에 대한 폭력이죠. 그러니까 타인을 하나의 그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내 질서로 타인을 자꾸 재단하는 것.

◇ 정관용> 독단, 독선 이런 것.

◆ 은희경>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개인을 존중해 주지 않고 결국 어떤 식으로든 폭력적인 상황이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 정관용> 그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죠, 그런데? 안 되나요?

◆ 은희경> 글쎄요. 제 생각에는 소설을 많이 읽으면 될 것 같은데.

◇ 정관용> 그래요? 소설을 많이 읽으면 생각이 바뀌어요?

◆ 은희경> 글쎄요. 다는 아니지만 한 가지 방법은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왜냐하면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상상력의 문제일 수 있다는 봐요. 그러니까 상상력이라고 하면 무슨 우주를 상상한다거나 미래를 상상하는 이런 것도 물론 조금은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타인의 지금 생각과 마음과 그런 걸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걸 이해를 도와주는 것이 그야말로 인간학인 소설이 아닌가.

◇ 정관용> 소설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을 하고 그것도 아주 정형화된 형태로 등장을 하고 그 인간들은 한 명, 한 명이 나름의 역사와 나름의 세계관과 나름의 문명에 대한 통찰과 이런 걸 다 반영하잖아요.

◆ 은희경> 그렇죠.

◇ 정관용> 그 사람들,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을 한 번 생각해보면서 읽으면 타인을 보는 눈이 넓어진다?

◆ 은희경> 네.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소설 주인공들은 소설 등장인물들은 어디까지는 전부 나와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선택을 하거든요, 대부분. 그래서 그런 어떤 나와 다른 선택을 하는 것 자체가 그걸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사람에 대한 인간을 보는 유연함 이런 것이 좀 깊어지지 않을까.

◇ 정관용> 그게 관용의 정신이죠.

◆ 은희경> 그렇죠.

◇ 정관용> 제 이름이 관용이듯이. (웃음)

◆ 은희경> 네. 유도하시는 것 같았어요. (웃음)

◇ 정관용> 소설을 통해서 그렇게 독단, 독선으로 타인을 폭력을 가하는 그런 사회적 악도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버릴 수 있다고 믿는다?

◆ 은희경> 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정관용> 이번 소설집에도 다들 칙칙한 사람들 많이 나오지만 그 사람들이 그래도 뭔가 뒤에서 뒷받침해 주는 어떤 연대.

◆ 은희경> 네. 무슨 어떤 진짜 실제적인 연대라기보다도 일단 이해받는다는 것 자체가 이 세계가 나와 연대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싶어서 누군가에게는 이해받는 어떤 그런 설정을 많이 했어요.

◇ 정관용> 여기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누군가에게 이해 받습니까?

◆ 은희경> 그러니까 등장인물들 대체로 이해받기 어려운 인물들이에요.

◇ 정관용> 그런데 이해 받아요?

◆ 은희경> 네.

◇ 정관용> 그거 중요하죠. 은희경 작가를 제일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 은희경> 찾아봐야겠어요. (웃음)

◇ 정관용> 갑자기 안 떠오르시나 봐요?

◆ 은희경> 아니, 무슨 상황별로 다르니까요. 어떤 연대라는 게 진짜 굉장히 다양한 연대가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연대를 같이 하는 건 그것도 또 폭력 같아요.

◇ 정관용> 다르죠, 다르죠. 삶의 영역별로 가족이 차지하는 영역, 친구가 차지하는 영역 다 다르죠.

◆ 은희경> 네.

◇ 정관용> 그래도 많이 이해받고 계신 거죠?

◆ 은희경> 네. (웃음)

◇ 정관용> 누군가는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다. 이번 단편집에서는 거기까지.

◆ 은희경> 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

◇ 정관용> 그런 사람들을 좀 일찍 만나고 주변에 많이 만난 사람은 정말 행운인 사람들인 거고.

◆ 은희경> 그렇지만 관계는 늘 변하거든요.

◇ 정관용> 물론 변화하지만.

◆ 은희경> 그래서 일찍 만나서 행운이라는 말은 조금 위험한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을 딱히 정해줘서 그 사람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모든 관계를 만들어가는 거니까.

◇ 정관용> 그렇죠.

◆ 은희경> 그래서 그런 사람을 찾지 말고 이 관계의 유연성을 가지라는 그런 소설이 아닌가 싶어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관계의 유연성까지. 아까 은희경 작가께서 하신 말씀을 제가 그냥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생각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그것을 소설을 통해서 읽어보고 자기 생각을 넓히고 서로를 좀 허용하는, 이해하는 그런 문화가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커져가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 은희경> 정말.

◇ 정관용> 그래야 소설가 분들도 좀 먹고 살기 쉬워지죠. (웃음)

◆ 은희경> (웃음)

◇ 정관용>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네, 감사드립니다.

◆ 은희경> 네, 감사합니다.

◇ 정관용> ‘중국식 룰렛’ 들고 오신 은희경 작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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