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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김성훈 감독 "세월호 떠올리는 현실 자체가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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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부터 영화 '터널'의 김성훈 감독과 배우 하정우. (사진=쇼박스 제공)

 

"제가 보고 싶은 것을 제가 찍고 싶었어요."

올 여름 극장가는 마지막까지 활기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성훈 감독의 영화 '터널'이 있었다.

'터널'은 현재 700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믿고 보는 배우 하정우의 '원맨쇼' 역시 김성훈 감독이 잘 짜놓은 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터널' 이전에 그는 영화 '끝까지 간다'로 관객들과 만났다. '터널'처럼 흥행한 것은 아니지만 신인 감독이나 다름없었던 그의 역량을 증명해보이기에는 충분한 작품이었다. 그 해 잘 만들어진 영화로 호평 받았기 때문이다.

재난 영화에서도 김성훈 감독의 유머 감각은 빛을 발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웃음 포인트들은 영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우리 일상이 어떤 장르로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유머가 섞여 있는 게 삶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본질도 놓치고, 유머도 놓치면 최악이죠. 그런 위험한 방법이 통했을 때 쾌감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진지한 이야기도 재미없으면 보지 않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터널에 조난 당한 정수 역의 배우 하정우와는 환상적인 호흡이었다. 하정우 또한 김 감독처럼 '유머'를 즐기는 스타일이었다고.

"웃기고자 하는 욕망도 강하고, 눈 떠서 감을 때까지 그런 생각을 하더라고요. 억지로 코미디가 되면 현실성이 없어질 수도 있는데 그게 자연스럽게 된 건 배우의 힘인 것 같아요. 배우가 관객을 믿게 만드는 힘인 거죠."

영화 '터널' 스틸컷. (사진=쇼박스 제공)

 

사실 '터널'은 재난 영화가 성공할 만한 어떤 특징도 갖고 있지 않다. 재난을 피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정우는 등장 5분 만에 터널에 갇히고, 오직 터널 안의 생존기와 밖의 구조기가 대비를 이루며 흘러갈 뿐이다.

"한 명이 터널 안에 갇혀 있는 상황. 사실 영화로 표현하기에는 제약 요소가 많아요. 너무 단조롭고 칙칙하죠. 그렇지만 지금까지 재난을 피하려는 재난 영화는 많이 봤으니 제가 보고 싶은 걸 다른 사람들도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만들었어요. 아기자기한 재난 영화라고 해야 될 것 같네요."

'아기자기'하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 효과를 써야 하는 장면이 많았다. 모두 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하면 편했겠지만 김성훈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과 실제 조형물을 적절히 섞는 방식을 선택했다.

"뛰어난 할리우드 그래픽에 익숙한 관객들을 어떻게 우리만의 디자인으로 설득할 것인가. 터널이 처음 무너지는 장면이나, 구조대가 터널에 들어갔는데 2차 붕괴되면서 차를 이끌고 후진하는 장면 등은 안전이나 특수 효과 모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컴퓨터 그래픽만 쓰지 않고, 실제 특수 효과 조형물을 만들어서 섞었어요. 아직 컴퓨터 그래픽만으로는 그 충격감과 무게감을 전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더라고요."

모두가 정수의 구조를 포기했을 때, 구조대장 대경(오달수 분)만큼은 끝까지 정수를 구해내기 위해 필사의 힘을 다한다. 만약 대경이 없었더라면 정수는 구조를 기다리다 꼼짝 없이 터널 안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김 감독에게 '대경'은 어떤 특별한 영웅같은 인물이 아니다.

"제가 갇혔을 때 단 한 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마지막으로 정수의 생존을 확인하러 내려간 것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양심에서 우러난 행동이죠. 저는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어요. 이 사회가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못할 뿐이지 대경은 지극히 평범한 우리 누군가일 수도 있어요. 그저 사람을 구하는 자신의 일에 끝까지 충실했던 거잖아요.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끈을 놓지 않은 거고요. 저는 누구나 여건이 된다면 아파하는 사람을 위해 손을 내밀 것이라고 생각해요. 시스템이 그렇지 않도록 만든 것 뿐이죠."

영화 '터널'에서 터널에 조난 당한 정수 역을 맡은 배우 하정우. (사진=쇼박스 제공)

 

정수 역시 인간성을 시험 당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또 다른 생존자 민아를 만나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나눌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장면이다. 김 감독은 여기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정수의 모습을 보여주며 갈등을 부드럽게 풀어 나간다.

"그걸 고민한다는 자체가 사람 아닌가요? 알파고였다면 절대 주지 않았겠죠. 한 관객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너무 말도 안되게 물을 나눈다. 본인은 하정우가 물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전 좀 있으면 구조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같이 살아서 나갈건데 안 주면 너무 야박하고 민망하잖아요. 쉽게 준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작은 걸 주려고 했다가 좀 더 따르고…. 이런 게 모두 보편적이고 나약한 인간의 갈등이죠. 제가 그래서 그 관객에게 민아가 죽었을 때 미안하지 않았냐고 그랬더니 미안했대요. 그런 딜레마를 주고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 또 다른 생존자를 어린 여성으로 설정했어요."

영화는 대한민국에 일어났던 여러 재난 사고를 연상시킨다. 터널 붕괴에서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떠오르고, 겉치레식 정부 관계자들의 모습에서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스쳐 지나간다.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세월호 침몰 사고를 염두에 두고 의도한 것이 아니냐는. 일단 원작 소설이 있었으니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건 아니에요. 다만 이 영화를 보고 세월호를 떠올린다면 현실 자체가 슬픈 것 같아요. 아직도 치유가 되지 않은 너무나 아픈 기억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거죠. 영화가 가장 큰 시스템이 붕괴된 이후에 나타난 상황들을 그려내잖아요. 현실 반영적이고 비판적인 부분이 있으니까 그렇게 연상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월호는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슬픔이고, 직접적으로는 관계가 없는 5천만 국민들에게도 너무 아픈 상처가 된 사건이니까요. 그래서 세월호로 소환될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요?"

'터널'이 그리는 정부 관계자들이나 책임자들은 다큐멘터리처럼 진지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살인자처럼 악독하지도 않다. 그보다는 우습거나 우스꽝스러운 쪽에 더 가깝다.

"영화가 현실로 소환된다면 너그럽게 웃고 넘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풍자로 이해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유머를 많이 넣기도 했고요. 할리우드는 꿈의 공장이니까 꿈만 만든다고 해도 국내 영화들은 현실을 대입한 영화들이 많죠. 부패 경찰 이야기를 그린 '끝까지 간다'도 집단을 조롱하고 비하한 것이 아니라 큰 권력 집단은 청렴해야 한다는 풍자이자 우화였어요. '터널'에서 악인을 만들려고 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영화의 본질이 왜곡될 것 같더라고요. 그 사람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한 게 아니고, 그들 역시 내몰린 사람들이죠. 지쳐서 무뎌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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