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동안 리우데자네이루를 뜨겁게 밝혔던 성화가 꺼졌다. 사상 최초로 남미 대륙에서 열렸던 리우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새로운 세상'이라는 뜻의 '뉴 월드(New World)'를 슬로건으로 이번 대회는 전 세계 206개 나라, 1만500여 명의 선수가 열전을 펼치며 우정을 다졌다.대한민국 선수단도 세계와 당당히 겨루며 '스포츠 코리아'의 위상을 높였다. 비록 금메달 10개 이상, 종합 10위 이내의 목표에는 살짝 못 미쳤지만 절반의 성공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부족한 나머지 1개의 금메달은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당선으로 채우고도 남았다. CBS노컷뉴스는 17일 동안의 감동과 환희의 리우올림픽을 돌아본다.[편집자주]
최미선, 장혜진, 기보배, 이승윤, 구본찬, 김우진(왼쪽부터)이 12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양궁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당초 리우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이 내건 목표는 '10-10'이었다. 금메달 10개 이상과 종합 10위 이내로 2008 베이징 대회(금 13개, 종합 7위)와 2012 런던 대회(금 13개, 종합 5위)까지 3회 연속 '10-10'을 이뤄 스포츠 강국의 입지를 다진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목표에 딱 금메달 1개가 모자랐다. 기대를 모았던 유도와 레슬링, 배드민턴 등에서 금빛 낭보가 전해지지 않으면서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종합 8위로 10위 이내는 들었지만 금메달 10개를 채우지 못했다.
그러나 금메달 9개의 면면을 살펴보면 목표했던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지녔다. 한국 양궁은 사상 첫 전 종목 석권이라는 신화를 썼고, '사격 황제' 진종오(KT)는 종목 사상 첫 올림픽 3연패를 달성했다. 펜싱 남자 에페 박상영(한체대)은 이번 대회 최고의 금빛 역전 드라마를 썼고, 태권 낭자들은 금빛 발치기로 종주국을 자부심을 드높였다.
골프 여제 박인비(KB금융그룹)은 116년 만에 올림픽에서 부활한 여자 골프 정상에 오르며 대미를 장식했다. 2004 아테네 대회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유승민 삼성생명 코치는 쟁쟁한 선수들과 겨뤄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IOC선수위원에 올라 금메달 못지 않은 감동을 안겼다.
▲뜨거운 브로맨스로 일궈낸 '男 양궁 2관왕'첫 금빛 테이프를 끊은 것은 남자 양궁이었다. 당초 대표팀은 진종오가 나선 7일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금빛 총성이 울릴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런던 대회처럼 이 종목에서 첫 금메달 소식을 전해주려 했던 진종오가 5위에 그쳤다.
하지만 남자 양궁이 이날 금빛 과녁을 맞췄다. 김우진(청주시청)-구본찬(현대제철)-이승윤(코오롱엑스텐보이즈)이 숙적 미국과 단체전 결승에서 6-0(60-57 58-57 59-56) 완승을 거두면서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 소식을 전했다.
특히 런던 대회 4강에서 패배를 안긴 미국에 설욕전을 펼치며 8년 만의 이 종목 금메달을 찾아왔다. 미국 대표팀은 경기 후 한국 선수들에게 절을 하며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남자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미국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남자양궁 대표 구본찬(왼쪽부터) 김우진 이승윤이 6일 오후(현지시간)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태극기를 펼쳐들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여기에서 만족할 수 없었다. 한국 남자 양궁 사상 첫 2관왕을 위한 태극 궁사들의 도전이 이어졌다. 여자 양궁은 런던 대회까지 6명의 2관왕을 배출했기에 남자 대표팀은 살짝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도전은 쉽지 않았다. 세계 1위 김우진이 32강전에서 충격의 패배를 안았고, 막내 이승윤도 8강전에서 덜미를 잡혔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 구본찬이 있었다. 구본찬은 8강과 4강에서 잇따라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에서 이겨냈고, 마침내 결승에서 장샤를 발라동(프랑스)에 7-3(30-28 28-26 29-29 28-29 27-26) 승리를 거뒀다.
박채순 남자 대표팀 감독은 한국 남자 양궁 사상 첫 2관왕에 오른 구본찬을 끌어안고 감격을 누렸다. 박 감독은 8강과 4강에서 흔들리던 구본찬을 "끝난 게 아니다"는 강한 메시지로 일깨워 금빛 결실을 맺었다. 특히 양궁 사상 첫 전관왕의 마침표를 찍은 금메달이었다.
박 감독은 "사실 처음부터 김우진에게 방심하지 말라고 했어야 했는데 내 잘못으로 져서 펑펑 울었다"면서 "그래도 부담스러울 텐데 선수들이 내게 먼저 '감독님, 역사 한번 쓰시죠'라고 얘기해줬는데 정말 고맙다"고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박 감독과 삼총사의 뜨거운 브로맨스(Bromance)가 일궈낸 2관왕이었다.
▲'기보배→장혜진' 여왕의 계보, 4년 뒤엔 최미선?여자 양궁은 역시 세계 최강이었다. 역대 7번째 2관왕을 배출했다. 기보배(광주시청)가 런던의 양궁 여왕이었다면 이번에는 친구 장혜진(LH)이 왕관을 물려받았다.
장혜진은 기보배, 최미선(광주여대)과 함께 나선 단체전에서 8회 연속 금메달을 합작했다. 러시아와 결승에서 대표팀은 강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5-1(58-49 55-51 51-51) 승리를 거뒀다.
여자 양궁은 단체전이 올림픽에 도입된 1988년 서울 대회 이후 단체전 우승을 놓치지 않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들은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받으면서도 장난을 치며 최강다운 호흡을 보였다.
여자 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러시아에 승리한 장혜진(왼쪽부터),최미선, 기보배가 7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양궁경기장에서 금매달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이들도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 직면했다. 바로 장혜진과 기보배가 4강 길목에서 격돌한 것. 여기서 장혜진은 디펜딩 챔피언이자 친구와 대결에서 1세트 강풍에 3점을 쏘는 아찔한 상황을 맞았지만 흔들리지 않고 나머지 네 세트에서 세 세트를 따내며 결승에 진출했다.
가장 큰 장애물을 넘긴 장혜진은 결승에서 리사 운루(독일)를 가볍게 제압하며 2관왕에 올랐다. 장난스러웠던 단체전 시상식과 달리 장혜진은 개인전 금메달을 걸고는 눈물을 지었다. 한국 나이로 30살, 늦깎이 여제의 즉위식이었다.
기보배는 값진 동메달로 2회 연속 메달 2개를 얻었다. 최미선을 8강전에서 꺾은 알레한드라 발렌시아(멕시코)를 누르며 막내의 아픔을 설욕해줬다. 장혜진, 기보배는 경기 후 최미선에게 메달을 걸어주며 동생을 위로했다. 남자 대표팀의 브로맨스 못지 않은 따뜻한 워맨스(Womance)였다.
▲박상영-진종오가 그려낸 감동의 '대역전 드라마'
펜싱대표 박상영이 9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에페 결승전에서 헝가리 제자 임레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박상영 선수가 9대12으로 지고 있던 2라운드가 끝난 휴식시간에 승리의 주문을 외우고 있다.(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스포츠에서 흔히 쓰이는 대역전 드라마라는 용어는 이번 대회에서는 박상영의 결승전에 가장 어울렸다. 그야말로 패배 직전의 벼랑에서 기적처럼 생환해 극적인 금메달을 일궈냈다.
박상영은 10일 대회 결승에서 세계 3위 게자 임레(헝가리)와 맞붙었다. 세계 랭킹 21위이자 21살에 불과한 박상영과 달리 임레는 세계 3위, 41살의 베테랑. 박상영은 패기로 맞섰지만 2피리어드까지 9-13으로 뒤졌다.
하지만 박상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3피리어드에서도 10-14, 단 1점만 내주면 패배로 이어질 위기에서 박상영은 잇따라 전광석화처럼 검을 휘둘러 내리 5점을 따내는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특히 박상영이 2피리어드가 끝난 뒤 대기하면서 혼잣말을 한 장면은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되뇌이면서 마음을 다잡은 박상영은 기어이 큰 일을 해냈다.
사격대표 진종오가 10일 오후 (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데오도루 올림픽 사격장에서 열린 남자 50m 권총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북한의 김성국과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진종오의 다음날 역전극도 짜릿했다. 주종목이자 앞서 2연패를 이뤄낸 남자 50m 권총 결선에서 진종오 역시 위기를 맞았다. 특히 6.6점을 쏘는 등 6위까지 떨어지며 메달이 무산되는 듯했다.
그러나 진종오도 포기하지 않았다. 거푸 과녁 중앙을 맞추면서 순위를 끌어올렸고, 북한 김성국까지 끌어내리고 2위까지 올랐다. 마지막 2발을 남기고 1위 호앙 쑤안 반(베트남)을 0.2점 차까지 추격했다.
여기서 황제의 진가가 발휘됐다. 진종오는 10점을 쐈고, 상대는 8.5점으로 밀렸다. 승부처 집중력에서 승리한 진종오는 마지막 발을 10.3점에 맞추며 사격 사상 첫 3연패를 마무리했다.
▲태권낭자들의 금빛 발차기, 골프 여제의 즉위식
김소희가 17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3에서 열린 태권도 여자 -49kg급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태권낭자들은 강했다. 동생 김소희(한국가스공사)가 먼저 금빛 발차기를 시전했고, 언니 오혜리(춘천시청)가 마무리를 지었다.
김소희는 18일 여자 49kg급 경기에서 잇따라 명승부를 펼쳤다. 김소희는 8강전에서 세계 랭킹 2위의 파니파크 옹파타나키트(태국)에 종료 4초 전까지 2-4로 끌려갔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회심의 왼발차기로 4점짜리 공격을 성공시켜 승부를 뒤집었다.
4강전에서도 김소희는 야스미나 아지즈(프랑스)와 연장 종료 36초 전 극적 몸통 차기로 이겼다. 결승에서 김소희는 티야나 보그다노비치(세르비아)에 7-6 진땀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원래 체급인 46kg급이 올림픽에 없어 체급을 올린 각고의 노력 끝에 거둔 결실이었다.
오혜리가 19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3에서 열린 태권도 여자 -67kg급 결승 경기에서 프랑스 하비 니아레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뒤 환호하고 있다.(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오혜리는 김소희의 기운을 이어받았다. 20일 67kg급에서 오혜리는 세계 1위 하비 니아레(프랑스)에 13-12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1회전에서 0-3으로 뒤졌지만 2회전에서 3연속 3점짜리 발차기를 성공시켰다.
올림픽 3회 출전과 2회 연속 금메달에 빛난 황경선에 밀린 설움을 씻어냈다. 올림픽 3수 만에 거둔 결실이었다.
박인비가 20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골프코스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여자 골프 개인전 최종라운드에서 금메달을 확정짓는 퍼팅을 성공한 뒤 두손을 번쩍 들고 있다.(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태극전사들의 금빛 행진에 대미를 장식한 사람은 골프 여제 박인비(KB금융그룹)였다. 박인비는 21일 마지막 4라운드에서 버디 7개, 보기 2개 등 5타를 줄이며 최종 16언더파로 정상에 올랐다.
무려 116년 만에 올림픽에서 부활한 여자 골프 챔피언으로 우뚝 섰다. 특히 남녀 골프 통틀어 최초로 4대 메이저대회와 올림픽을 석권하는 '골든 슬램'의 주인공이 됐다. 세계 랭킹 1위이자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에 5타 차 넉넉하게 앞선 완벽한 여제의 승리였다.
특히 박인비는 부상을 이겨내고 금빛 결실을 맺어 더욱 의미가 있었다. 올 시즌 박인비는 허리와 왼 엄지 인대 부상으로 컷 탈락과 기권을 반복하는 고된 나날이 이어졌다. "올림픽 출전을 포기할까 고민했다"는 박인비는 그러나 "당당한 올림피언으로 출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마침내 대업을 이루며 한국 여자 골프와 함께 대한민국 스포츠의 위상을 드높였다. 리우의 화려한 마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