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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환의 리우 메신저] 韓양궁의 애틋함과 잔인함…정치인들이 본받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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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리우 올림픽에서 양궁 전종목을 석권한 대한민국 양궁대표팀이 13일 오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코리아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을 마친뒤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박지환 기자)

 

20대 청춘들이 모였습니다.

감독님과 코치님 빼고 선수들끼리만 소주를 마시고 노래방에 가고 싶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국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어떻게 보답해야할 지 고민된다는 진심어린 걱정도 털어놨습니다.

부모님께 받은 문자, 개인전 탈락 이후 여자친구에게 온 메시지 등이 힘이 됐다는 20대 청춘들.

그 주인공은 바로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전종목 석권이라는 양궁 역사를 새로 쓴 김우진(24), 구본찬(23), 이승윤(21), 장혜진(29), 기보배(28), 최미선(20) 선수들입니다.

이들은 13일(한국시간) 리우데자네이루 바하(Barra)에 마련된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금메달 4개를 따낸 신화가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는 그들은 단체전 동료이자 개인전 경쟁자가 될 수 있었던 서로에게 강한 신뢰감을 표했습니다.

실제로 4강에서 '절친' 기보배를 꺾고 결승에 진출해 금메달을 목에 건 장혜진은 아직도 기보배에게 미안한 감정이 남아있는 듯 했습니다.

"6명 모두 힘든 대표 선발전을 치러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누구보다 목표의식이 뚜렷하고 한가지 목표만 바라보고 온 것 같습니다. 개인전은 선의의 경쟁이고 좀 잔인하지만 그런 시련이 있어야 선수들 개개인이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보배)

'미녀 삼총사!' '2016 리우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왼쪽부터) 최미선, 기배보, 장혜진 선수. 이번 우승으로 한국은 단체전 올림픽 8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리우데자네이루 박지환 기자)

 

"6명이 대표팀으로 최종 선발된 뒤 총감독님은 늘 '우리는 하나다. 양궁장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즐거운 양궁을 하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지도 아래서 모든 코치진과 선수들이 서로 격려해 좋은 팀워크를 만든 것 습니다." (장혜진)

런던올림픽 2관왕으로 리우 2관왕을 노렸던 기보배는 4강에서 자신을 이긴 장혜진이 혹시나 미안해할까봐 선수를 쳤습니다. 배려감이 물씬 묻어났습니다.

장혜진 역시 서로를 의지하고 배려하며 힘든 훈련과 선발전을 치렀던 과거를 가장 먼저 떠올렸습니다.

세계랭킹 1위지만 바람 탓에 8강전에서 탈락하며 눈물을 흘렸던 막내 최미선은 "금메달을 딴 게 아직 잘 믿기지 않고 언니 오빠들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저도 양궁역사를 새로 쓴 것에 보탬이 됐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다"고 말했습니다. 아픔을 털어내고 공을 언니, 오빠들에게 돌린 겁니다.

"개인전에서는 떨어졌지만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남자 단체대표팀은 리우에서 대단한 경기를 보여줬는데 이 멤버로 다시 2020년 도쿄올림픽에 가고 싶습니다." (이승윤)

남자양궁 막내 이승윤은 맏형 김우진, 둘째 형 구본찬과 함께 다음 대회까지 함께하고 싶다며 진한 동료에를 표했습니다.

2관왕 구본찬은 "아직 뒷풀이도 제대로 못했어요. 한국 가면 선생님들 빼고 선수들끼리만 따로 1차에 소주먹고 2차에 노래방 가고 싶어요"라며 돈독한 우정을 과시했습니다.

"누가 술을 제일 잘마시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구본찬은 손가락으로 이승윤을 가리켰고, 김우진 역시 "이승윤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옆에 앉았던 장혜진, 기보배, 최미선은 재밌다는 듯 손뼉을 치며 웃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새로운 '미녀궁사'로 등극한 장혜진 선수에 대해 '원조미녀' 기보배 선수가 한마디 해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기보배는 "우리 미선이가 가장 예쁘지 않아요?"라며 막내를 추켜세웠습니다. 최미선은 활짝 웃었습니다.

혹독한 선발전과 훈련과정에서 겪은 고단함은 감출 수 없었습니다.

'미남 삼총사' (왼쪽부터) 구본찬, 김우진, 이승윤으로 이뤄진 한국 남자 양궁대표팀은 '2016 리우 올림픽'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특히 구본찬은 개인전 우승까지 차지하며 2관왕에 올랐다. (리우데자네이루= 박지환 기자)

 

막내 최미선은 웨이트 도중 발톱이 빠졌고, 장혜진은 힘들었던 새벽훈련에 대한 정신적 압박감을 토로했습니다. 기보배와 김우진 등도 동거동락한 선수들이 치열한 선발전을 거쳐 떨어진 게 가장 부담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세계 최강 한국양궁은 올림픽대표 선발전부터가 세계 신궁(神弓)을 뽑는 자리라 불릴 정도로 치열합니다. 동료를 이겨야 선발된다는 심리적 부담감과 미안함, 그리고 실제 대회 예선에서 서로를 만날 수 있다는 불안감 등이 선수들을 짓누릅니다.

그럼에도 서로를 다독이고 격려하고 배려하는 20대 태극 궁사들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도 값지고 아름다웠습니다.

정치부 기자 신분으로 브라질 리우올림픽을 취재하러 온 제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협치라는 공허한 말잔치 속에 서로에게 으르렁거리는 한국 정치 현실이었습니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을 둘러싼 청와대 서별관회의 적절성 논란, 그리고 친박비박 힘겨루기 등 국민들에게 얼굴 찌푸릴 일만 선사(?)하는 한국 정치인들이 우리 한국양궁팀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P.S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인 이유는 대표 선발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하기 때문입니다. 전(前) 대회 올림픽 챔피언도 처음부터 다시 고통스런 선발전을 치러야 합니다.

이번 리우 올림픽 대표 선발전은 8개월 동안 치러졌습니다. 지난해 9월 1차 선발전에서는 64명(남녀 32명)이 어렵게 뽑혔고, 11월 2차 선발전에서는 16명만이 잠정 대표단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전년도 국가대표 16명이 새롭게 합류해 치러진 3차 선발전을 거치면 다시 잠정 선수는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이렇게 추린 남녀 대표선수 16명 중에서 1, 2차 최종 평가전 성적을 합쳐 6명만이 최종 올림픽대표로 선발됐습니다. 이들이 선발전 과정에서 쏜 화살수만 4000발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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