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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리우 레터]'감동·폭소 유발자' 박상영, 인터뷰도 역대급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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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10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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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펜싱 에페 사상 첫 금메달, 좌충우돌 생생 인터뷰

'동일인입니다' 10일(한국 시각)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한국 에페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박상영이 감격에 겨워 하는 모습(왼쪽)과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는 모습.(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한국 펜싱 에페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의 역사를 이룬 박상영(21 · 한국체대). 세계 랭킹 21위, 누구도 기대하지 못했던 깜짝 금메달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패배 직전의 위기를 극복하고 이뤄낸 대역전 드라마가 더 짜릿했습니다. 여기에 부상 역경을 딛고 일궈낸 성과라 깊은 울림을 주는 메달이었습니다.

박상영은 10일(한국 시각) 브라질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3에서 열린 남자 에페 개인전 결승전에서 게자 임레(헝가리)에 15-14로 극적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세계 3위이자 4강전에서 세계 1위 구띠 그뤼미에(프랑스)를 꺾은 임레를 누른 승리였습니다.

지옥과 천국의 순간이 찰나에 결정될 만큼 짜릿한 승부였습니다. 박상영은 3피리어드 중반까지 10-14로 뒤져 패색이 짙었습니다. 1점을 더 내준다면 메달 색깔이 금빛에서 은빛으로 바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저 역시 금메달을 따는 것으로 써놨던 기사를 은메달로 고치고 있던 터였습니다. 대부분 우리 취재진이 그랬습니다. 도저히 뒤집을 가능성이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박상영은 포기하지 않고 침착하게 1점씩을 만회했습니다. 내리 4점을 따내 동점을 만든 순간 경기장은 이미 대역전극의 분위기로 흘렀습니다. 또 다시 기사를 고쳐써야 하는 취재진의 타이핑 소리도 커졌습니다.

결국 팬들의 열띤 응원 속에 박상영은 드디어 마지막 금빛 찌르기를 성공시켜 환호했습니다. 정신없이 기사를 고치면서도 우리 취재진 역시 함성을 내질렀습니다. 반면 헝가리 취재진은 탄식을 내쉬었습니다.

'골든 크로스' 펜싱대표 박상영이 9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에서 열린 펜싱 남자 에페 결승에서 헝가리의 게자 임레를 상대로 마지막 찌르기를 하는 모습.(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박상영의 인터뷰 역시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베이징과 런던, 소치올림픽은 물론 아시안게임 등을 취재하면서 봤던 어떤 선수의 인터뷰보다 흥미진진한 역대급 인터뷰였습니다.

끝모를 좌절과 고뇌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인터뷰 장소를 숙연하게 만들다가도 곧바로 유쾌한 답변으로 취재진을 찔러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마치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인터뷰는 끝내는 깊은 감동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금메달 시상식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으로 들어선 박상영은 "금메달은 생각도 못 했다"면서 "세계인의 축제인 만큼 즐기자는 생각이었다"고 얼떨떨한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어 "컨디션이 좋았던 것은 '언제 올림픽을 뛰어보겠어요. 후회없는 경기를 하자'는 생각이 행동으로 나왔기 때문"이라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10-14로 뒤진 순간 박상영은 "정신 차리자, 너무 급하다, 가슴에 대한민국 태극기를 달았는데 이렇게 질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습니다. 이어 "상대가 원래 팔을 찌르는 공격 잘하는데 그때는 상대가 앉아서 어깨를 찔렀다"고 역전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긴장의 끈을 놓고 시상대에 서자 비로소 아팠던 지난날이 떠올랐습니다. 박상영은 "전방 십자인대 부상으로 국가대표에서 나왔던 그 생각이 났다"면서 "시상대에 올랐을 때 힘들었던 순간이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박상영은 지난해 3월 왼무릎 인대가 파열돼 9개월여의 힘든 재활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후 복귀했지만 제 컨디션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박상영은 "지난해 12월에 복귀했는데 재활하면서 감각도 떨어져 되게 힘들었다"면서 "자기 전에 항상 올림픽 뛰는 순간을 상상하면서 버텼다"고 회상했습니다.

펜싱대표 박상영이 9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에페 결승전에서 헝가리 제자 임레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박상영 선수가 9대12으로 지고 있던 2라운드가 끝난 휴식시간에 승리의 주문을 외우고 있다.(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숙연해지는 분위기도 잠시. 박상영은 "금메달을 딴 순간 (다른 누구보다) 무릎 생각이 났다"며 취재진을 웃겼습니다. 으레 나올 법한 부모님이나 은사보다 무릎이 고마웠던 겁니다.

박상영은 이어 "무릎이 잘 버텨줘서 고맙다"면서 "운동량을 늘리면 열이 나고 붓고 잘 굽혀지지 않아 준비하는 데 힘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박상영은 또 "복귀해서 대회에 나가면 1회전에서 떨어졌다"고 돌아봤는데 대표 선배인 최병철 KBS 해설위원이 "그래도 지난해 2월 나오자마자 국제대회(캐나다 밴쿠버 월드컵) 동메달을 땄다"고 거들더군요.

그래도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박상영은 대회 전 대한체육회가 준비한 선수단 소개에 "금메달을 따겠다"는 당찬 포부를 남긴 바 있습니다. 정말 자신이 있었던 걸까. 박상영은 "진짜 금메달을 따겠다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기왕 따려면 금메달을 따겠다고 한 것"이라며 또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긴장을 했다고 했지만 결승전에 입장하는 동안 관중석과 중계 카메라에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에 대해 박상영은 "올림픽 현장이 너무 좋아서 그랬다"면서 "사실 펜싱 선수가 이런 많은 관객 앞 경기하는 게 적잖아요"라고 되물었습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과 4년 만에 한번 받은 조명이 절실한 선수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꿈에서 두들겨 맞으면 성적이 좋다고 했던가요? 박상영은 "이번에는 맞는 꿈은 아니었다"면서 "1회전 상대와 경기하는데 반칙승으로 어이없이 이기는 꿈이었다"고 또 웃겼습니다.

정진선(화성시청), 박경두(이상 32 · 해남군청) 등 에페 대표 선배들의 뜨거운 동료애도 전했습니다. 박상영은 "형들이 '지금처럼 해라. 너는 잘 하고 있다'고 조언했다"면서 "(그러는 형들이) 울려고 하고 목소리도 떨리는 게 진심이 느껴져서 고마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진지한 표정은 곧바로 풀어졌습니다. "이제 형들과 단체전에서도 메달에 도전해야 한다"는 취재진의 말에 박상영은 "그럼요. 저 사실 단체전 보고 왔어요"라고 폭소를 유발시켰다. 개인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깜짝 금메달을 시인한 셈이라고 할까요?

펜싱대표 박상영이 9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에서 열린 펜싱 남자 에페 결승에서 헝가리의 게자 임레와 경기에 승리한 후 조희제 감독을 부둥켜안고 있다. 박상영은 15-14 로 대역적승을 거두며 한국선수단 세 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부모님을 떠올리면 언제나 뭉클합니다. 박상영은 "무릎 말고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당연히 부모님"이라고 운을 뗐습니다. 이어 "지금까지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손에 꼽을 만큼만 했다"면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자랑스러운 아들로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위기가 얼마 가지 못합니다. 박상영은 "부모님께서 무슨 말씀을 해주셨느냐"는 질문에 "아~!"하며 잠시 생각하더니 "해주신 말들은 많은데 내가 바쁘다고 심부름해야 한다고 했다(그래서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또 웃음 바이러스를 퍼뜨렸습니다.

좌절의 순간은 없었을까. 누구보다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박상영은 "십자인대 부상 뒤 첫 복귀전인 국내 대회에서 사람들이 '박상영은 이제 끝났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그때 자괴감이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박상영은 또 유쾌하게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어떻게 이겨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힘들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꿈의 올림픽 꿈의 무대에서 뛰는 생각을 했다"면서 "워낙 많이해서인지 꿈에 다 나왔는데 꿈에서는 3번이나 (금메달을) 땄다"고 또 파안대소했습니다. 이어 "꿈에서는 1위 구띠도 이기고, 정진선 형도 다 이겼다"고 또 취재진과 함께 웃었습니다.

펜싱 대표팀 막내지만 첫 금메달로 분위기를 이끌었죠. 박상영은 김지연(여자 사브르), 신아람(여자 에페) 등이 예선 탈락한 데 대해 "런던 대회 때도 4일차부터 메달이 나왔는데 내가 4일차"라면서 "내일부터는 승승장구해서 메달이 나올 것 같다"고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박상영 역시 금메달을 땄지만 단체전이 남아 있습니다. 21살 청춘답게 "여자 친구가 있는데 싸워서 연락을 못 했다"면서 또 대폭소를 유발한 박상영은 "아직 단체전이 남아 있으니까 (이후에 연락하겠다)"고 승부사다운 면모를 보였습니다.

이후 박상영은 도핑 테스트를 위해 총총히 믹스트존을 나섰습니다. 결승에서 짜릿한 역전승으로 온 국민들의 새벽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박상영. 기자회견에서도 취재진을 들었다 놨다 한 박상영의 인터뷰도 금메달이었습니다.

박상영(왼쪽)이 고교 시절 은사인 정순조 경남체고 감독과 함께 한 모습.(사진=정순조 감독)

 

p.s-이렇게 유쾌상쾌한 박상영이지만 훈련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다고 합니다. 옛 스승들이 국제전화를 통해 귀띔한 내용입니다.

박상영을 펜싱으로 입문시킨 은사 현희 진주제일체육중학교 코치는 "상영이는 중학교 1학년 말부터 칼에 호기심을 갖고 친구랑 같이 펜싱을 시작했다"면서도 "그러나 시작과 동시에 펜싱에 파고들며 연습벌레처럼 훈련한 결과가 지금의 금메달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경남체고 시절 은사인 정순조 감독도 "정말 쉬라고 말릴 정도로 상영이는 지독하게 훈련을 했다"면서 "내가 알기로는 고교 시절 동안 여자친구 한번 사귄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펜싱 입문 3, 4년 만에 세계청소년선수권을 제패할 만큼 발전 속도가 달랐다"고 칭찬했습니니다. 경기는 즐기지만 훈련은 지독한 프로인 겁니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현재 싸웠다는 박상영의 여자 친구는 대학에 와서 사귄 걸까요? 만약 고교 시절부터 사랑을 키워온 것이라면? 그런 거라면 고교 시절 은사도 모르는 비밀 연애일 것인데, 정말 그렇다면 일과 사랑을 구분할 줄 아는 박상영은 진정한 프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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