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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의 맛] '꿩 대신 오리'…오리 요리 30년 외길의 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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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마당' 임순형 사장

외식시장의 전설로 불리는 사장님들이 들려주는 '장사의 철학', 그들의 이야기가 "장사나 해 볼까?" 생각하는 창업 꿈나무들과 장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700만 자영업자들에게 장사의 대한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칼럼을 시작한다. [편집자 주]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돼지고기는 멀리하고 소고기는 있으면 먹고 오리고기는 찾아다니면서 먹어라'라는 말이 있다. 오리고기가 몸에 좋다는 것이야 다 아는 얘기지만 어디에 어떻게 좋은지는 여기서 논할 주제는 아니니 통과. 다만, 오리가 대중화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오리고기를 즐기지 못하거나 제대로 맛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미 오래 전 오리고기로 식도락가들 사이에 화자되던 식당이 있다. 바로 '너른 마당'이다. 그 전에는 오리 백숙이나 소금구이가 전부였는데 1993년 '너른 마당'이 훈제오리를 밀전병에 싸서 먹는 통오리밀쌈을 선보였던 것이다. 불포화지방산 오리 기름은 좋은 기름이지만 먹을 때는 느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밀전병이 느끼함을 싹 잡아준다. 실제로 밀은 기름을 흡수한다. 훈제오리를 전병에 싸 먹는다는 점에서 북경오리와 비슷한 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 그런데 북경오리는 밀전병이 아니라 쌀 전병에 싸서 먹는다.

◇ 꿩 대신 오리

옛날 옛적,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착한 농사꾼이 있었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꿩을 키워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꿩 판로가 막혀 집에서 먹던 방식으로 꿩을 구워 팔기 시작한 것이 '너른 마당'의 시작이다. 30여 년 전, 1980년대 일이다.

요리솜씨가 남달랐던 어머니(故 박길순 할머니)는 집에 손님이 오면 키우던 꿩을 잡아 직접 요리를 해서 접대하셨는데 다들 이 음식을 팔아보면 어떠냐고 입을 모았다. 어떤 요리였을까? 꿩을 양념장에 재워 놨다가 참나무 숯불에 구워 내는 방식이었고 갖은 양념에 참기름으로 마무리하는 어머니만의 양념 비법이 있었단다.

이후, 꿩 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면서 종목을 오리로 전향했다. 오리로 하면 꿩과 비슷할 거 같다는 게 어머니의 생각이었다니 요즘 태어났다면 실험적인 요리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독창적인 오리고기의 훈연법이 나오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다. 꿩 구이와 같은 방법으로 오리를 구웠는데 오리는 꿩과 달리 기름이 많아서 구울 때 연기가 너무 많이 났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훈연이다. 훈연도 쉽지는 않았다. 소나무 한 개만 들어가도 고기가 시꺼매졌고, 담뱃재가 조금만 들어가도 고기를 버려야 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통오리밀쌈이 탄생했다.

처음부터 장사가 잘 된 건 아니다. 워낙에 외진 곳이라 아예 손님이 오지를 않았다. 많이 팔아야 하루에 한두 마리가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아는 지인을 모시고 오겠다고 하더니 연세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을 모시고 왔다. 평소 하던 대로 음식을 만들어 접대했는데, 그 분이 바로 '장군의 아들'을 집필하신 백파 홍성유 선생이었다.

며칠 후 '너른 마당'을 다시 찾은 백파 선생은 "시골에 두기엔 아까운 음식이다. 장안에 내놓을 필요가 있겠다"고 했다. 그는 당시 '주간조선'에 '별미 기행'이라는 코너를 기고하고 있었다. 맛집 기행 같은 칼럼이었는데 영향력이 굉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임순형 사장은 백파 선생도 몰랐고 그 분이 쓰던 칼럼도 매스컴에 대한 인식도 없었다. 기사를 읽고 몰려오는 손님이 많을 거라는 말에 그저 하루에 오리구이 한두 마리를 팔았으니 열 마리쯤 준비하면 되나 했단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기사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토요일 -임순형 사장은 1993년 가을 어느 토요일로 기억한다- 지인 결혼식에 다녀오는데 자동차가 동네 길목을 꽉 메우고 있었다. 백파 선생의 기사를 보고 몰려든 손님들이었다. 그때부터 주말이면 동네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손님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몰려들었다. 그날 이후 23년간 임순형 사장은 점심을 먹지 못했다고 한다.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 초심을 잃지 말라는 가르침

백파 선생은 이후에도 자주 찾아와 아무리 성공해도 '초심을 잃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셨다고 한다. 이것은 지금도 목숨처럼 붙잡고 사는 교훈이다. 백파 선생의 또 다른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절대 골프에 손대지 말라'는 것이었다. 왜 콕 찍어서 골프일까? 골프는 한두 시간으로 끝나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게를 비우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소위 잘 되는 식당 주인은 목숨처럼 가게를 지킨다. 늘 식당 안에서만 생활하는 게 답답하지 않을까?

"그걸 갇혀 있다고 생각하면 식당을 못합니다. 이게 내 삶이라고 생각하고 즐겨야죠. 아침에 출근해서 청소하고 재료를 선별하는 것 자체가 삶의 낙입니다."

그런 임순형 사장에게도 장사가 힘들 때가 있다.

"예전에는 손님에게 야단맞고 하찮은 존재 취급받을 때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손님과 싸우기도 했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도 있었죠. 하지만 이유가 뭐든 손님과 싸우는 건 현명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지금은 손님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나에게 부족한 게 뭔가 생각합니다."

장사를 하다보면 시련이 닥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면 강하게 성장할 수 있고 기쁨 또한 배가 된다.

◇ 무엇 하나 쉬운 것은 없다

고양시 원당 어딘가에 있다는 '너른 마당'을 찾아가려면 수고가 필요하다. 구형 내비게이션은 잘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물어 물어 찾아가보면 대궐 같은 한옥 3채가 포부도 당당히 서 있다. 총 대지 규모 5000평, 텃밭 1000평에 연못 2000평. 동네 공원보다 넓은 이곳은 그야말로 '너른 마당'이다.

이곳은 임순형 사장이 10년 전부터 '너른 마당'의 백년대계를 꿈꾸며 설계한 곳이다. 식당이라고 하기엔 너무 광활하고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멋들어지게 지어 놓은 이곳에 그는 얼마나 투자를 했을까?

"그동안 번 돈 다 투자했습니다. 아마 이 가게에서 수입을 내려면 180년쯤 걸릴 겁니다(웃음)."

앞으로 180년, 6대로 이어질 가업을 꿈꾸면서 그는 '너른 마당'을 지었다고 한다.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이곳에서는 식탁에 올라온 음식의 탄생 과정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뒷마당 한 귀퉁이에 위치한 훈연실에서는 염지된 오리가 익어가고 텃밭에서 가꾼 농작물이 그대로 식탁 위에 올려진다. 심지어 제분소까지 갖추고 국내산 통밀을 직접 빻아서 칼국수를 만든다. 이러다가 밀농사까지 지을 기세다. '너른 마당'에서는 무엇 하나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낱낱이 볼 수 있다.

이 모든 게 손님에게는 축복일 수 있지만 주인으로서는 숨 막힐 일이다. 임순형 사장은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일까?

"다른 식당들과 똑같은 방법으로는 경쟁력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따라 하지 못하는 것, 손이 많이 가지만 나만의 특별한 조리법으로 요리하는 게 저만의 차별화죠. 그 길은 어렵지만 또 편안한 길이기도 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 이렇게 우직한 장사꾼을 본 적이 있는가? 그는 AI 같은 위기가 왔을 때도 다른 메뉴를 개발하지 않았다.

"주인의 조급함에서 나오는 것이죠. 세상 이치가 오르면 내려오고, 내려오면 오르게 돼 있습니다."

그는 어떤 시련이 와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생각으로 버텨왔다. 장사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버티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장안의 내놓으라 하는 장사꾼들은 입을 모은다.

임순형 사장은 뚝심으로 장사하는 사람이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한 발 한 발 흔들림 없이 전진했고 결국 6대를 이어나갈 꿈의 식당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한옥에 앉아 텃밭에서 가꾼 농작물 그대로를 먹은 후 연꽃 연못 주변을 산책할 수 있는 '너른 마당'은 그의 소망대로 많은 이들이 쉬었다 갈 수 있는 너른 쉼터가 되고 있다. 장사를 하고 싶다면 그리고 백년 가게를 만들고 싶다면 그처럼 해야 할 것이다.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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