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권 밴드는 오는 9월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콘서트 '걱정 말아요 그대'연다. 콘서트를 앞두고 부산을 찾은 그는 부산에 대한 추억, 음악 인생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사진=slow 배성환 작가 제공)
굴곡진 현대사에 등장해 한 시대를 풍미한 풍운아. 하지만 약에 대한 '중독'과 불안한 정신세계는 그를 끊임없이 흔들었다.
속절없이 바람에 흔들리다 흐른 40여 년. 이제 그는 희망을 노래한다. 세대를 아우르는 모든 이에게 '걱정 말아요'라고 시원하게 목소리를 내지른다. 그를 아무도 '철없는 악사'로 보지 않는다. 뒤늦게 집에 돌아온 탕아, 현대가요의 산 증인, 함께 늙어가고픈 가수로 여긴다.
바로 가수 전인권이다. 상반기 전국 투어를 마친 그가 오는 9월 '마음의 고향'인 부산에서 콘서트를 연다. 콘서트 준비에 여념이 없던 중에도 부산에 들러 방송, 인터뷰 등으로 팬들과 만났다.
땅거미가 져 어둑한 저녁 해운대 달맞이의 한 바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늘 그렇듯 부스스한 머리를 묶고,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온 전인권은 덤덤하게, 담백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아무 이야기나 하고싶은 말을 하라는 기자의 제안에 당황하면서도, 부산에 대한 추억을 먼저 꺼내놓았다.
"부산에는 추억이 정말 많습니다. 30년 전, 부산팬들이 들국화 LP판을 가장 많이 사주셨어요. 공연도 가장 많이 했고, 하루 2차례 공연을 해도 못 들어간 팬들이 밖에서 끝날때 까지 기다리곤 했죠. 허름한 해운대 포장마촌에 가잖아요? 그럼 주인장이 기타를 둘러메고 내 노래를 부른 장면이 한 집 건너 한 집이었어요. 그 모습이 생생합니다."꼬인 길을 돌고 돌아, 자기가 원하던 자리를 찾아서일까? 그에게는 수도승과 비슷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저는 안정된 게 좋은 줄 평생 모르고 살았습니다. 40년 동안 고독했어요. 제가 스스로 오탈 했다고 말하거든요. 약 때문에 철창신세를 진게 다섯번이니 일탈(逸脫)이 아니라 오탈(五脫)이라고 말이죠. 그때는 왜 그렇게 가만히 있기 힘들었는지…. 이제 안정되고 음악에 몰두하니 행복합니다. 너무 행복해요."
마약으로 다섯 번이나 수감될 만큼 곡절 많은 삶을 살아온 그다. 과거 아픈 기억을 끄집어 내는것이 불편할 법도 할 터, 그는 되레 모두 다 털어놓으며 지금의 안정과 행복이 소중하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약물에 의존해서 음악을 했죠. 약에 취해있을 때는 너무 잘하는데, 깨면 말짱 도루묵이에요. 그러니 실력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지. 모든 것이 원점인 거예요. 계속 출발만 하는 거예요. 이런게 잘못됐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죠. 하지만 지금은 음악을 하는게 너무 좋아요. 아…. 그 쾌감과 즐거움을 설명할 길이 없네요."
전인권 밴드는 오는 9월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콘서트 '걱정 말아요 그대'연다. 콘서트를 앞두고 부산을 찾은 그는 부산에 대한 추억, 음악 인생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사진=slow 배성환 작가 제공)
술도 마시지 않고, 밖에 나가지도 않는단다. 그저 종일 가사와 멜로디에 빠져 있을 뿐이다.
"요즘에는 밤 8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요. 눈떠 있는 시간은 계속 연습하죠. 맨정신으로 매진하다 보니, 이게 참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더라고요. 고생한 만큼 나온다는 것, 이제 제 인생의 철학이 됐습니다. 신이 계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 내가 잘할 수 있구나. 내가 잘하는 것 멜로디, 가사 쓰는 것에 더 쏟아보자고 다짐하죠. 이상하게 기운이 나더라고요."드라마 응답하라 1988 OST로 '걱정 말아요 그대'는 거의 국민 노래 반열에 올라섰다. 힘겨워하는 누구에게나 들려주고, 불러주고 싶은 노래. 그래서인지 요즘 콘서트장에는 20~30대가 더 많다.
"지난 2년간 공연을 많이 했어요.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드라마 영향으로 공연이 거의 매진사태를 기록했죠. 서울, 청주, 충주, 울산에 있는 팬들을 두루두루 만났어요. 젊은이들이 제노래를 알고 따라 부르니 묘한 느낌이 들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옛날에나 살아있는, 숨쉬는 공연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도 많은 세대와 함께 어울려 아픔, 슬픔, 기쁨, 사랑을 공감하고 숨 쉬며 공연할 수 있는 게 감사할 뿐입니다."오는 9월 부산에서 열리는 '걱정 말아요 그대' 콘서트에 대해 그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밴드 구성이 '역대급'으로 독보적이라고 자랑했다.
이번 투어에는 베테랑 베이시스트 민재현과 신중현의 아들인 기타리스트 신윤철 등 전인권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음악 동지들이 무대에 오른다. 또, 미국 버클리음대 1세대인 재즈 피아니스트 한충완 서울예대 교수가 전인권밴드에 프로듀서 겸 연주자로 합류했다. 그에게 밴드란 무엇일까?
"밴드라…. 남자끼리 하는 연애? 정신적인 여행? 함께하는 작은 여행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우리는 함께 전국을 많이 쏘다녔죠. 작은 마을에 가서 같이 느끼고, 나누고. 예전에 멤버들에게 걱정을 많이 끼쳤는데 요즘에는 저보고 많이 좋아졌다고들 해요. 나이가 드니 밴드의 아름다움, 고마움이 더 느껴집니다." 인터뷰 내내 주위가 산만했다. 팬이라며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이들, 저녁 메뉴를 뭘로 정해야 하냐는 매니저까지. 시끄럽고 부산함 중에서도 그는 나지막히 마지막 말을 이어갔다.
"제 노래 '2막 1장' 가사 중에 '빗나간 화살이 희망같이 날개처럼 왔다'는 게 있어요 이제 그 뜻을 알겠어요. 죽어라 연습하고 연습하고 싶습니다. 폼잡는 것은 쉽지 폼나는 건 어렵잖아요. 나 이제 멋있게 늙고 싶어요. 그게 소망이에요."선글라스에 뒤에 가려진 눈빛이 전해진다. 이제 더 이상 외롭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아티스트 전인권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