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천상륙작전' 스틸컷.
'인천상륙작전'하면 누구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주인공은 그가 아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기까지 한국 해군 첩보 부대와 켈로 부대 그리고 민간인들의 활약을 담아낸 영화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인 셈이다.
그렇다면 개개인의 '희생'과 그에 따른 '감동'을 자아내는 방향으로 나아갈 법한데 '인천상륙작전'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처절한 개인의 '희생'이 머릿속으로 인식은 되지만 기억에 남지는 못하는 것이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들이 있고, 이 같은 영화에서는 작전 속에서 불가피하게 목숨을 잃는 희생자들이 등장하곤 한다. 관객들은 이들의 죽음을 보며 함께 아파하고 눈물 짓는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각 캐릭터들이 품은 이야기가 잘 구축됐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영화 내내 캐릭터들은 관객들과 관계를 쌓아 나가야 하고, 그래야만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에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좋은 영화에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해도, 그들 모두가 관객들 속에서 살아 숨쉬기 마련이다.
결국 이 사전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인천상륙작전'의 희생자들은 북한군과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마치 '배틀로얄'처럼 죽어간다. 영화 말미, 작전 지원 동기를 말하는 장면에 이르러서야 캐릭터들은 설명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개개인의 서사를 탄탄하게 다져놓지 않은 상황에서 비참한 '죽음'만 반복되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언정, 감정의 전이나 몰입이 어렵다. 절정에 올라야 할 순간까지도 '무색무취'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인적 희생이라기 보다는 집단을 위한 영웅적 희생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는 짐작이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스틸컷.
◇ 북한군은 무조건 악당?
그렇다면 '인천상륙작전'은 어디에 힘을 쏟았을까. 유일하게 '악취'가 나는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한국 해군 대위 장학수(이정재 분)와 끝까지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치는 북한군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 분)이다.
공개처형부터 부하사살까지 일삼는 림계진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악당의 전형이다. 또한 '이념이 피보다 짙다'고 생각해, 이념이 다른 혈육까지 죽일 수 있는 극단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비단 림계진뿐만 아니다. 북한군의 지배 하에 있는 인천은 공포가 지배하는 끔찍한 지옥도처럼 묘사된다. 시도 때도 없이 반동분자들은 공개 처형되고, 그 시체는 자극적인 문구가 적힌 팻말을 목에 매달고 전봇대에 전시된다. 전투에서도 북한군의 잔인함은 림계진을 통해 그대로 나타난다. 첩보 부대원들이 아이를 대피시키는 동안 림계진은 총격을 두려워하는 여가수를 인간 방패 삼아 반격에 나선다.
왜 림계진이 이처럼 극단적인 공산주의자가 됐는지, 그가 그토록 잔인한 인간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악'인 림계진 및 인민군과 '선'인 장학수 및 부대원들의 극명한 대립만이 존재할 뿐이다. 장학수와 함께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림계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 악'을 구현하기 위한 이미지에 갇혀 있다.
비단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어떤 이념이든 잘못 활용되면 모두 '악'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한채선(진세연 분)을 설득하는 장학수의 입을 통해 '잘못된' 공산주의가 '악'이 아니라 공산주의 자체가 위험하고 악한 것임을 강조한다. 장학수가 전향하게 된 아버지에 얽힌 충격적인 사연 또한 그렇다.
담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표현 방식은 '공산주의 사상에 반대하기 위한 영화'의 그것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념적 색채를 기반으로 영웅인 국군과 '괴물' 같은 인민군을 극명히 대비시킨다는 점에서 '인천상륙작전'은 '반공 영화'라는 논의를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스틸컷.
◇ 더글러스 맥아더는 무조건 영웅?
상당한 비중으로 다뤄지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속 맥아더(리암 니슨 분) 장군은 몇 가지 이미지로 대변된다. 훌륭하고 인격적인 리더, 감동적인 언사, 한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집념.
성공 확률이 낮고 어려운 인천상륙작전에 왜 그렇게 집착하느냐는 두 번의 질문에 맥아더 장군은 전 부대가 몰살된 와중에도 '적을 죽일 총알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소년병과 '어머니를 지키고 싶다'며 첩보 부대에 지원한 장학수 대위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서 그들과 자신이 똑같은 군인이고 그들의 나라를 지켜주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더글러스 맥아더 위인전에나 어울릴 것 같은 감동적인 사연이 그대로 영화를 통해 나오고 있는 지점이다.
물론, 맥아더 장군이 실제 어떤 인물이었든 '인천상륙작전'에 그의 공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유명하고 민감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해석은 영화일지라도 어느 정도 치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작전을 지휘하는 수장으로서의 맥아더 장군을 보다 건조하게 그렸더라면 과한 영웅적 프레임을 씌웠다는 비난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