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감염은 바이러스 감염이 아니라 SNS 감염이었다", "5월말부터 인터넷과 SNS에서 괴담이 급속히 유포됐다", "서울시가 심야 긴급 브리핑을 하면서 보건당국 중심의 '원 보이스' 원칙이 무너졌다".
보건복지부가 '부실 방역'으로 38명의 사망자를 낸 메르스 참사를 근 1년 만에 백서로 정리해 펴냈지만, 여전히 사태 원인을 'SNS괴담'과 '지자체 비협조' 등에 돌려 논란이 되고 있다.
복지부가 29일 발간한 '2015 메르스 백서 : 메르스로부터 교훈을 얻다!'는 488쪽 분량의 본 책자와 672쪽 분량의 부록으로 구성됐다.
지난해 메르스 대응 과정을 종합하고, 정부 관계자 245명과 현장 전문가 46명의 평가와 제언을 통해 미래의 유사 상황시 교훈으로 삼겠다는 취지로 제작됐다.
정진엽 장관은 서문을 통해 "메르스 경험이 희망의 씨앗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이 백서가 미력하나마 역할을 하고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길 기대한다"며 "메르스와 관계된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백서는 먼저 메르스 사태가 확산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책임지는 리더십의 부재'를 꼽았다. 사태 당시부터 줄곧 제기됐던 '콘트롤타워 부재'를 시인한 것이긴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국민적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
대다수 언론과 국민들은 '범정부 차원의 리더십 부재'를 메르스 사태의 원인으로 지적했지만, 백서는 "이론과 현장 경험을 겸비한 야전군사령관이 없다보니 이를 외부에서 보완해야 했다"며 질병관리본부 차원의 문제로 선을 그었다.
"현장을 파악하고 책임을 지고 실질적 리더 역할을 해야 하는 '방역관'이 없어서 아쉬웠다"는 복지부 관계자의 증언은 이를 뒷받침한다.
반면 정부는 사태 확산의 배경으로 '국민 불안과 인터넷 괴담 대응의 한계 노출'을 지목하면서, 국민적 불신이 생긴 탓을 사실상 언론과 SNS에 돌렸다.
백서는 "평택성모병원에서 첫 확진환자와 동일 병실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확진환자로 판정되면서, 5월 말부터 인터넷과 SNS에 괴담이 급속 유포됐다"며 "적시에 대응하지 못해 국민 불신이 높아져갔다"고 기술했다.
또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과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가 지난 2012년 만든 '감염병 보도준칙'을 거론하면서 "일부 보도를 기점으로 정부 조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되기 시작했다"고 책임을 돌렸다.
정부는 지난해 5월 20일 이후 메르스와 관련해 289건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는데, 일일 현황 자료 129건을 제외한 160건 가운데 35건은 '보도 해명자료', 24건은 '보도 설명자료'였다. "대중들에게 정확한 정보들이 소통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수치"란 게 백서의 평가다.
백서는 또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시 삼성서울병원 환자와 관련해 심야 브리핑한 점을 언급하면서 "보건당국을 중심으로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원 보이스' 원칙이 무너졌다"고 한탄했다. "대외적으로 지자체와 중앙정부간 소통 문제로 비춰지면서 보건당국의 신뢰성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1천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메르스 백서에는 '반성'이나 '사과', '실책' 같은 단어는 사실상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SNS'는 25번, '괴담'은 17번, '유언비어'는 7번 사용됐다.
당국의 방역대응 실패로 사망자 38명과 감염환자 186명 또 격리자 1만 6693명를 낳은 참사였음에도, 정부가 이로부터 과연 어떤 교훈을 얻었다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백서는 다만 "메르스를 '중동식 독감'으로 칭하거나 '병원내 공기 감염이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정부가 거짓말을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의료기관을 공개하면서 '경유 병원은 안전하다'고 발표한 걸 두고도 성급한 정보를 전달했다는 논란이 야기됐다"는 내용도 적시했다.
메르스가 창궐하던 지난해 6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한 초등학교를 찾아 "독감은 매년 유행하고, 중동식 독감이 들어와 난리를 겪고 있는데 손씻기라든가 몇 가지 건강한 습관만 잘 실천하면 메르스 같은 것은 무서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당시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여론 압박에 병원명을 공개하면서도 'BH(청와대) 요청'이란 문구가 적힌 쪽지를 받은 뒤 "경유 병원은 감염 우려가 없다"고 발표해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백서 스스로 강조한 '리더십의 부재' 문제가 비단 방역관 수준에 그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