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언론이 지금처럼 활발해 지기 전이었던 1998년, 혜성처럼 나타나 수많은 사람(citizen)을 네티즌(netizen)으로 쭉 끌어당긴 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어준(딴지일보 총수).
그는 기발하고 때로는 발칙한 발상과 시각으로 인터넷 열풍의 거센 불길에 기름을 부은 장본인이다.
생뚱맞게 시사프로그램을(?)
인터넷상에서 그의 활동이 과거에 비하면 뜸해졌지만(?) 요즘 그를 만나려면 공중파 방송인 CBS라디오(FM 98.1)를 틀면 된다.
"딴지일보총수" "패러디계의 황태자" "비꼬기의 달인"으로 유명한 그가 ''김어준의 저공비행(PD 정혜윤)''이라는 프로그램을 1년째 맡아 진행해왔다.
공중파 방송에서 과연 수위를 잘 조절하고 있을까 걱정도 되는데 아닌게 아니라 방송위원회로부터 방송진행중 위험수위를 넘는 발언으로 두차례나 지적을 받았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열린우리당 유인태의원을 초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보통 어떤 사연이 있을 때 기자들한테 욕을 하셨나요"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XX끼''라는 표현을 하였으며, 진행자가 "특정신문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신다는데"라는 질문을 하자 ''X같은 신문하고, X같은 신문''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이 나오는 순간 밖에서 연출하던 PD와 진행자인 김어준씨도 멈칫했을 뿐더러 발언 당사자인 유인태의원도 순간 당황한 빛이 역력했고 결국 방송위로부터 청취자에 대한 사과명령을 받았다.
김어준, CBS 정통 시사프로그램 전격 발탁 물론 본인의 실수보다는 초대받은 게스트가 위험수위를 넘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빚어진 일이지만 점잖은 손님들로 하여금 얘기를 이끌어내는 그의 솜씨는 CNN의 래리킹에 못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정범구 박사가 진행해온 CBS의 대표적인 정통 시사 프로그램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FM 98.1MHz, 월-토 19:00-21:00)을 덜컥 맡게 됐다.
그가 진행할 정통시사프로그램은 어떨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그의 근황과 인간 김어준에 대해 노컷뉴스가 제법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어준씨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심플한 삶을 살고 싶다"면서 "스스로 열등감과 컴플렉스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왕자병이 있는 것은 아닌지'' 물었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을 시큰둥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화는 수준의 문제가 아닌 취향의 문제다"◇기자:정통시사프로그램을 딴지일보 총수에게 맡긴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
◈김어준:그간 시사 방송이 심심했나... 변화가 필요해서 나에게 맡긴 것이 아닐까. 매너리즘을 경계하는 하나의 새로운 시도라 생각한다.
◇기자:진행 중인 김어준의 저공비행을 통해 청취자에게 전하고 싶은 것 있었나 ?
◈김어준:이 방송을 통해 문화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문화는 한쪽이 더 우월하거나 품위있거나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마이너문화에 조명하는 것은 아니다. 통상적인 문화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내말은 서민들의 예술이 만족시키는 정서가 따로 있다는 것! 고급문화에 기 죽을 필요는 없다
◇기자: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
◈김어준:대부분 후지다. 기대치에 딱 맞는 사람이 기억에 남고, 기대치와 전혀 다른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이인제씨와 김근태장관이 기억에 남는다. 다 나름대로의 의미있는 인터뷰였다.
◇기자:방송은 재미있나?
◈김어준:처음에는 아주 재미있었다.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치인을 다루는 부분에서 명예훼손이나 인신공격의 여지가 드러나 자기검열이 생겼다. 영역이 줄어들수록 재미가 없어졌다. 정치인의 본질을 바라보려면, 경계에 서있는 질문을 해야 윤곽이 드러나는데 대부분 금기이거나 익숙치 않아서 불편해 하는 점이 안타깝다.
◇기자:딴지일보에 대해서 ''너무 드러내놓아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시각이 있다. 본인의 생각은?
◈김어준:딴지일보는 경박하다. 너무 내놓고 드러내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나름의 역할이 있다. 처음부터 그런의도로 시작한 것이다. 즉 비판을 하려면 수준에 맞게 비판해야 한다. ''왜 너네는 재미가 없어? 왜 짧은 시간내에 그 문제의 본질을 재미있게 전달하지 못했어?''라고 비판해야 한다. 지금은 너무나 많이 그렇게 하고, 우리도 재미가 없어지고 있다. 아젠다도 희미해지고 형식도 구태의연해지고 있다. 어느순간, 우리의 역할이 사라지면, 없어져야지.
◇기자: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김어준:아니, 동물적이라 생각한다. 한국적 사상 스펙트럼으로 보면 진보적인 편이다. 그러나 사실은 우파다.
배낭여행 1세대, 여행학창시절 5년간 80개국 여행다녀◇기자:여행을 많이 했다던데?
◈김어준:여행을 많이 다녔다. 여행자율화가 이루어진지 얼마 안되서 배낭여행을 시작해 실은 나는 배냥여행 1세대이다. 일년에 반은 여행을 다녔고 80개국을 가봤다. 여행 경비는 그때마다 각종 아르바이트(지하철에서 신문판매, 배낭여행 설명회, 암달러상)를 해가며 마련했다.
◇기자:여행하면서 느낀점?
◈김어준:음. 예를들면 대치동의 레스토랑보다 시골의 음식점이 더 좋은 경우가 있다. 동물밑에서 자란 사람이 언어능력을 습득하지 못하면 말을 못배우는 것처럼, 미적감각이 개인에게 내재되어 있는데, 어느 시간내에 깨닫지 못하면 발휘를 못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이러한 깨달음에 방해가 되고 있다.
◇기자:추천 여행지?
◈김어준:특이한 경치 보고 싶은 곳. 가장 지구같지 않는 곳은 터키에 가면 중동부 카파도시야라는 곳. 가장예쁜 여행지는 스위스다. 라운튼 블루, 사막, 수에즈 운하가 무척 인상 깊었다. 또 노르웨이 피오르드 계곡은 아주 원시적이다. 가장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인 파리를 여러 번 가요.
김어준이 말하는 사랑 "이세상에 남녀만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아"◇기자:이성관은?
◈김어준:여행을 하다보니까. 각국이 다른 부분이 많아보여도 결국은 다 같은게 보인다. 본질만 남는 것이다. 결국 남녀의 차이만큼 큰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연애를 많이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닥치는 대로 연애해라! 연애는 평생하는 것이다.
◇기자:일부일처제에 대한 생각은?
◈김어준:그건 정말 불가능한 이야기 아닌가. 자연스럽지도 않다. 일부일처제가 이루어진 것은 그 제도가 없을 경우 치뤄야 할 값이 너무 커서다.
◇기자:그렇다면 결혼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인가?
◈김어준:물론 결혼제도가 가진 순기능은 많다. 보통 사람들은 예측가능하고 자신의 권력유지가 되는 사회이길 바한다. 그렇지만, 한 사람만 영원히 사랑하는 것만 아름다운가? 여러사람을 한평생 사랑하면 아름답지 않은가?
◇기자:첫사랑은?
◈김어준:
첫사랑? 생각나지도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 그걸로 족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갈 수 있다해도 관심없다.
김어준이 말하는 나, "그냥 죽으면 안되나?"◇기자존경하는 사람?
◈김어준:어렸을 때는 극지방을 탐험한 아문젠을 존경했다. 그의 전기를 읽고 그의 어린시절과 같이 창문을 열어 놓고 자기도 했다. 현재 존경하는 사람은 없다. 뭘 존경씩이나 하나. 같은 사람끼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사람이 가진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보고 그들은 존경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줄도 모른 채 말이다. 같은 사람끼리 존경까지 할 필요가 있나.
◇기자:자녀 교육이 남다를 것 같은데?
◈김어준:가르치고 싶은 것 없지만 굳이 키워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문제 해결 능력이다. 본질을 보는 안목을 가르치고 싶다. 빨간불, 파란불을 구분해 건너라고 말하진 않겠다. "그냥 사람들 건널 때 건너라"라 말하겠다. 원칙만을 가르치고 싶진 않다.
◇기자:왜 하필 문제해결 능력인가?
◈김어준:배낭여행 가이드를 할 때 함께 온 커플들이 열에 아홉은 헤어져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여행을 같이하면 사이가 더 좋아질거라 생각했는데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커플의 예를들면 그들이 파리에서 3일 있다 비엔나로 가기로 했다치자. 여행 중에는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보통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남자가 훨씬 비겁해진다. 그래서 80%가 여자 탓을 한다. 남녀의 대처 방법이 다르고 그런 문제에 닥치면 그 사람 자체가 가지는 타고난 문제 해결능력이 드러난다.
◇기자:기억에 남는 책?
◈김어준:계몽사에서 나온 "부처의 일생"이 기억에 남는다. 왜 이렇게 고생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회하여 구원받는 것이 과연 필요한가, 그냥 죽으면 안되나라는 의문이 생겼다.
◇기자:그럼 종교가 없는 건가?
◈김어준: 우주를 운행하는 질서가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종교라는 이름의 것은 아닌 것 같다. 왜 득도 해야 하는가? 그냥 동물처럼 살면 안돼는 건가. 나는 본질에 바로 다가간다고 생각한다. 일부러 꼬아서 보는 것 아니라 솔직하게 답하는 것뿐.
◇기자:
인생의 전환점이 있다면?
◈김어준: 대학에 떨어진 것이 전환점이었다. 그 후로 기대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두렵지 않고, 다른사람의 눈에 거슬리는 것이 무섭지 않다. 나는 내가 해방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기자: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김어준:특별한 욕망이 없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 보다 동물에 가깝다. 다르게 진화했다는 점밖에 없다. 사람이 누구나 열심히 살아야 한다.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은 에베레스트산에 올라가는 것. 극점을 가보고 싶다. 어려서부터 꿈인데 은행을 털어보고 싶다. 사람들이 가장 뺏기기 싫어하는 물건이니까. 물론, 성공하면 바로 돈을 돌려줘야지. 그리고 60대에는 식당의 주인이 되고 싶다. 예약제로 이루어지고 음식은 내 마음대로 정하는 식당에서 손님으로 온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해보고 싶다.
노컷뉴스 윤지현/이정윤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