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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어떻게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살인자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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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학교 총격 사건 가해자 부모의 이야기

 

콜럼바인 총격 사건은 여전히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이다. 1999년 4월 콜럼바인고등학교의 졸업반 학생 두 명이 별 다른 이유 없이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같은 학교 학생과 교사 13명을 죽이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자살했다. 피해자가 아이들이고, 가해자가 아이들이었기에 사회적인 파장은 더더욱 컸다. 그 후로 버지니아테크 총격 사건, 샌디훅초등학교 총격 사건 등 이 사건을 모방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정도로 영향이 컸다. 사건 당시 가해자들의 나이는 17살이었다. 그리고 17년 후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펴냈다.

이 책은 몇 딜런 클리볼드가 태어나서 사건을 벌이기까지의 17년, 또 사건 발생 후 17년, 총 34년간의 일을 정리하고 있다. 왜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가, 사건을 벌인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이었는가의 이야기가 중심에 있지만, 사건 이후 가해자의 가족들이 어떤 일들을 겪었고, 어떤 생각과 감정을 겪어왔는지 역시 솔직하고 세밀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은 아들의 변명이나 가족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과 마주한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또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쓴 책이다. 특히 인간의 폭력성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차갑게 고발하는 여타의 책이나 영화와 달리, 바탕에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을 깔고 있는 ‘어머니’가 써내려간 글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독특하고 설득력 있으며, 깊은 감동을 준다.

이 책의 부제는 ‘비극의 여파 속에서 살아가기’이다. 말 그대로 이런 유래 없는 끔찍한 사건을 겪어낸 과정을 ‘가해자 가족’의 입장에서 서술한 것이다. 2차 피해의 가능성을 유의해야 하는 예민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저자는 시종일관 희생자 당사자와 가족, 친구들에 대한 ‘예의’를 중심에 놓고 이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낸다. 특히 가해자의 가족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 이렇게 섬세하게 기술한 책은 없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복잡한 사건인 만큼 그 고통과 슬픔과 자책과 수치와 미안함을 온전히 느끼고 사유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방어기제로서 사건 초기의 부인(denial)의 과정, 그것이 깨지는 좌절의 과정, 그리고 다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의미를 부여잡기까지의 과정은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작지 않은 성취로 읽힌다.

앤드루 솔로몬은 자신의 저작 <부모와 다른="" 아이들="">에서 수 클리볼드를 인터뷰한 소회를 “과거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되돌아보는 독일 같다.”고 요약한 바 있다. 또 남편 톰 클리볼드는 이 사건을 집요하게 성찰하려는 자신들이 “아담스 패밀리”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자신이 빠져든 어둠의 정체를 가장 정직하게 직시하려는 이런 노력은 인간으로서의 책임, 인간으로서의 권리, 인간으로서의 존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또 이런 저자를 돕고 위로하고 지지했던 (몇몇 희생자 가족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반짝인다. 특히 범죄자, 살인자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놀라운 공감 능력이야말로 이들의 가장 큰 조력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책과 회한과 고통과 슬픔만으로 가득할 것 같은 이 책 곳곳에서 감사의 표현이 발견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수 클리볼드는 사건 이후 계속해서 리틀턴에서 살고 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만하다. 수의 가족은 살해 위협을 포함한 다양한 협박을 받았지만 그래도 이 지역 공동체에서 추방당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는 이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했다. 특히 수가 근무하던 지역 대학이 취한 조처는 어느 조직에서나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세세하게 되짚어보며 언론이나 법률, 경찰이 이런 이례적인 사건들을 다루는 방식에서의 한계나 어려움, 또 대안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전문가들의 진지한 조언을 구한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양육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가에 관한 책이다. 양육자의 기본 태도라 할 만한 겸허함을 강력하게 일깨워주는 책이다. 아이를 나와는 다른 존재, 내가 알 수 없는 존재로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의 숭고함에 대해 일깨워주는 책이다.

통상 양육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양육자들(특히 엄마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는 자신이 아이를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부모들을 직무유기라도 하듯 낮춰보고, 아이의 삶에 지나치게 몰입해 아이의 삶을 자신의 삶과 구분하지 않는 선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천성적으로 적극적인 부모였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교육자였기에 특히 둘째 아들인 딜런을 키우면서 스스로 대단히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다고 고백한다. 아이와 친밀하게 소통했고, 아이의 행방과 친구관계를 항상 확인했고, 아이의 교육에 열의를 지녔고, 아이에게 좋은 먹거리와 좋은 자연 환경을 제공하려고 노력했고, 특히 올바른 가치관을 키워줄 수 있도록 노력했던 ‘좋은’ 부모였다.

하지만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낯설고도 두려운 타자임을 충격적으로 깨닫고 나서 자신의 양육방식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뇌건강 문제에 대한 저자의 조언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책 속으로

처음에는 압도적인 수치감과 공포, 슬픔만큼이나 강렬한, 알고자 하는 원초적 욕구에 따른 개인적인 이유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내가 쥐고 있을지 모르는 조각들이 많은 사람들이 풀려고 절박하게 매달리는 퍼즐의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배운 것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기자, 내 이야기를 공개하는 일이 힘겹더라도 피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21)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내 아들이 죽인 사람들의 기억을 기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내가 아는 최선의 방법은 할 수 있는 한 정직하게 쓰는 것이다. 그래서 말하지만 이게 진실이다. 결국 희생자들 때문에 울게 되었고 지금도 울고 있지만, 그날에는 울지 않았다.(55)

딜런, 네가 어디에 있든 나는 너를 사랑하고 그리워할 거야. 나는 네가 남겨두고 간 혼란 속에서 애쓰고 있어. 이 모든 일에 대해 네가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렴. 우리에게 평화를 줄 답을 찾고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줘. 도와다오.(103)

내 아들이 악몽 같은 잔인한 행동을 계획하고 저질렀다는 끔찍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피할 길은 더 이상 없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페가수스를 만들어준 마음이 따뜻한 아이, 천 피스짜리 직소퍼즐을 맞추는 걸 어떻게든 거들고 싶어 하던 귀엽고 수줍음 많은 아이, 같이 코미디 드라마 「미스터리 사이언스 시어터 3000」을 볼 때 컹컹 짖는 듯한 독특한 웃음소리로 추임새를 넣던 청년. 그것도 진짜였다. 내가 사랑한 사람은 누구였고, 나는 왜 그를 사랑했나?(242)

짐작하겠지만 딜런과 에릭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를 밝혀줄 딱 맞는 퍼즐 조각 한 개를 찾으려는 생각을 버린 지는 오래되었다. 아이들을 파국으로 몰고간 힘이 뚜렷하게 보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한편 사건 직후에 나온 손쉬운 설명들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학교문화와 괴롭힘이 콜럼바인의 ‘원인’이었을까? 폭력적 비디오게임이? 방임적 육아가? 미국 대중문화가 군대 문화에 물든 것? 이런 조각들이 큰 퍼즐의 일부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들 가운데 어떤 것도, 아니 각각의 효과를 조합하더라도, 두 아이가 보인 증오와 폭력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248~249)

딜런이 종이접기하는 모습을 보던 일을 종종 생각한다. 종이접기 전문가들은 모서리를 정확하게 맞추어가며 접지만 4학년이었던 딜런은 좀 대충대충 했고 아직 손끝이 어설펐다. 그래도 복잡한 패턴을 한 번만 보면 그대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나는 차를 한 잔 끓여서 딜런 곁에 말없이 앉아 딜런의 손이 벌새처럼 날래게 움직이는 걸 구경하기를 좋아했다. 딜런이 정사각형 종이를 개구리나 곰이나 가재로 만드는 걸 보면 신기했다. 종잇장처럼 평범한 것이 몇 번 접는 것만으로 어떻게 저렇게 다른 모양이 되는지, 어떻게 한순간에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되는지 보면서 나는 늘 경탄했다. 또 완성된 형태를 보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감춰진 복잡한 주름들에 탄복했다. 이 경험이 콜럼바인 이후에 내가 겪은 일들과 여러모로 닮았다. 나는 나 자신, 내 아들, 내 가족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뒤집어, 아이가 괴물이 되고, 다시 아이가 되는 것을 보아야 했다.(444~445)

콜럼바인 직후에 나는 글을 쓰면서 일시적이긴 해도 실질적인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일기장을 내 아들과 아들이 한 일에 대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무수한 감정들을 담아놓는 공간으로 삼았다. 그 최초의 나날들에 글을 쓰면서 딜런이 일으킨 슬픔과 고통에 대한 무한한 비탄을 씹어 삼킬 수 있었다. 희생자 가족들에게 직접 다가가기 전에 나는 일기를 통해 그들에게 사죄하고 홀로 애도했다.(111)

시간이 흐르면서 딜런과 에릭의 행동이 다른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리라는 우리의 걱정이 되풀이해서 확인되었다. 버지니아폴리테크닉주립대학교에서 총기 난사를 일으킨 조승희의 소지품 가운데 콜럼바인과 관련된 물건들이 있었고 샌디훅초등학교 총격 사건의 범인 애덤 란자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 발표된 ABC 뉴스의 조사에 따르면 “1999년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격 이후로 이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학교에 대한 공격이 최소 17건, 범행 계획이나 심각한 위협이 36건 있었다.”고 한다.(232)

미국에서 대규모 총격 사건이 증가하는 까닭은, 고성능 총에 접근하기 쉽다는 점과 정신건강에 대한 지식과 지원 부족과 함께, 언론이 이런 사건을 다루는 방식과도 중요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언론보도가 확산을 억제할 수도 자극할 수도 있다면, 프랭크 옥버그와 체이네프 투페키 박사 등 언론 전문가들의 의견대로 살인-자살에 대한 새로운 보도 지침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234)

그는 기자들에게 트라우마에 대해 교육하면서 충격적인 사건을 선정적으로 다루지 말고 대신 사건에 대한 토론을 확대해나가라고 조언한다. 발생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진정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세부요소들은 어떤 것일까? 사람들에게 어디에서 도움을 구하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비극을 정신건강이라는 더 큰 맥락에 어떻게 위치시킬 수 있을까?
원인을 지나치게 쉽게 짚어 단순하게 결론을 내려버리는 일만 삼가도 큰 진전이다. 학교 총기 사건 범인들은 폭력적 비디오게임이나 테크노 음악 ‘때문에’ 사람들을 죽인 것이 아니고, 사람들은 해고당했거나 애인에게 차였다고 자살하지 않는다. 로빈 윌리엄스의 죽음 이후 그렇게나 부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사람이 삶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는 기사를 많이 읽었다. 당연하지만 돈과 인기가 뇌의 병을 막아주지는 않는다.(236)

내가 여기에서 제안하는 바가 검열을 옹호하고 언론 자유를 억압하자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보도를 요청하는 것으로 비쳤으면 좋겠다.(소설가 스티븐 킹은 학교 총기 사건 범인들이 자기 소설 '분노(Rege)'를 인용하자 존경스럽게도 출판사에 요청해 소설을 폐간시켰다.)(237)

공익을 염두에 두고 언론보도 방식을 바꾸어나간 전례가 분명히 있다. 좋은 기자라면 성폭력 희생자의 이름이나 특정 부대의 이동을 공개한다는 건 꿈도 꾸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살인범의 사진과 그가 죽이고 다치게 한 사람의 수를 붉은 피 색깔로 인쇄해 나란히 싣는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게 될 날이 곧 올 것이다.(237)

톰과 나는 다정하고 관심이 많고 적극적인 부모였고, 딜런은 에너지가 넘치고 애정이 많은 아이였다. 늘 염려하며 언젠가는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를 찾기를 빌어야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우리는 딜런을 ‘햇살’이라고 불렀다. 딜런의 금발머리가 후광처럼 빛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딜런에게는 매사가 힘들지 않게 잘 풀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딜런이 내 자식이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했고 온 영혼과 심장으로 딜런을 사랑했다.(22)

그 뒤 몇 달, 몇 해 동안 나는 아들에 대해 내가 몰랐던 사실들을 수도 없이 마주하게 되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바닥이 나지 않을 듯했다. 나는 남은 평생을 내가 알던 아이와 딜런이 한 행동을 하나로 합치는 일로 보내게 될 것이었다. 그날 밤이, 내가 알던 딜런의 모습 그대로를 내 마음속에 담고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밤이었다. 사랑스러운 아들, 동생, 친구의 모습으로.(73)

언론에서 부모로서 우리를 묘사한 것 중에 그나마 우호적인 것이 우리가 부모로서 존재감이 없고 쓸모없고 무능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우리가 증오로 가득한 인종주의자 아들을 알면서도 덮어주었고, 지붕 아래 무기를 쌓아놓고 있는데도 못 본 척해서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했다. 왜 우리를 비난하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나라고 해도 그런 아이의 부모에 대해서는 끝없는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내가 그 아이의 부모가 아니었다면. 증오했을 것이다. 당연히 부모 탓이라고 할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부모로서 우리를 묘사하는 두 가지 상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진실은 그보다 훨씬 더 심란하다는 것을.(93)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웠다. 특히 둘째를 낳았을 때에는 자신이 붙었다. 나는 타고나기를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늘 아이들 목에 뭐가 걸리지 않을까 염려하고, 좋은 버릇을 잘 가르치려고 법석을 떠는 편이었다. 또 한편, 나는 어릴 때부터 아이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취직한 뒤에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가르치는 일을 오래했다. 석사학위를 딸 때 아동발달과 아동심리 과목들이 필수였다. 순진하게도 나는 지식과 경험을 통해 단련된 직관이 있으니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문제를 만났을 때 어디에서 도움을 구해야 할지는 안다고 생각했다.(117)

“나는 괴롭힘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엄청난 수치심을 느꼈어요. 제가 직접 경험해보아 아는데 아이들은 자기가 겪는 고통을 자기 탓으로 돌려요. 나도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건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181)

“딜런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어야 해요. 친구나 동지가 옆에 있어줬어야 했는데. 분노와 우울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달래줄 친구요. 이건 아셔야 해요. 부모님은 그 친구가 되어줄 수 없다는 걸요. 형바이런도 마찬가지고요. 성장과 분리 과정에 있기 때문에 감추어왔던 고통스러운 문제를 부모나 형제자매에게 털어놓기는 극히 힘듭니다.”(182)

우울증이 청소년기에는 성인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도 몰랐다. 어른은 슬프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 반면 십대는 (특히 남자아이들) 방에 틀어박히고 짜증을 잘 내고 자기비판, 좌절, 분노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더 어린 아이들의 우울증은 보통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 징징거림, 수면장애, 매달리는 성향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283)

이게 역설 가운데 하나다. 우울에 시달리는 십대 아이들이 상냥하게 자기 생각을 잘 이야기한다면 도와주기도 더 쉬울 것이다. 우울증 안내 책자 사진처럼 깔끔하고 예쁘장한 외모에 주먹으로 턱을 괴고 슬픈 듯한 눈으로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는 막상 만나면 불쾌할 때가 많다. 공격적이고 호전적이고 무례하고 화를 잘 내고 적대적이고 게으르고 짜증을 내고 솔직하지 않고 위생 상태도 썩 좋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까다롭고 다른 사람을 밀어내려고 하는 아이들이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성향이 도와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312)

싸우지 않았더라면, 특히 어머니날에 싸우지 않았다면 당연히 더 좋았겠지만, 그럴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길에서 벗어나는 것 같을 때에는 나무라야 하지 않나? 지금은 그 싸움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한다. 아들을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했더라도, 아들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손을 잡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리 와 같이 앉아. 이야기하자.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해주렴.’ 딜런의 잘못을 낱낱이 읊고 무엇에 대해 감사해야 마땅한지 일러주는 대신에, 귀를 기울이고 딜런의 고통을 인정해주었더라면.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다. ‘네가 달라졌어. 그래서 겁이 나는구나.’ 하지만 그때 나는 겁나지 않았다. 그랬어야 했는데 안 그랬다.(328)

딜런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산을 움직여서라도 고치려 했을 것이다. 에릭의 웹사이트나 총기에 대해 알았다면, 딜런의 우울증에 대해 알았다면 다르게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는 아이를 기르기 위해 내가 아는 최선의 방식으로 길렀고, 내가 모르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 아이를 기르는 최선의 방식은 알지 못했다.(424)

“자살과 살인 사이에 종이 한 장 차이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 대부분은 살인과 무관하지만,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자살 성향 때문에 그럴 때가 많습니다.” 딜런에게 일어난 일도 그것이라고 생각한다.(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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