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에 4조2천억원을 추가 지원키로 결정한 직후 금융계의 한 고위인사는 기자에게 답답하다는 듯 반문했다. “회생가능성이 없는 대우조선해양에 저렇게 많은 돈을 또 지원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요?”
당시에는 이 질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나 부실이 최근 드러난 상황만큼 심각한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정부와 산업은행이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한 그런 기업에 4조원이 넘는 돈을 지원할 리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대우조선의 부실과 불법의 심각성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4조2천억원의 자금을 지원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대정부질문에서 지난해 10월22일 열린 서별관회의 때 보고된 것이라며 문건 하나를 공개했다. 여기에는 “대우조선에 5조원 이상의 부실이 현재화돼 사실 관계 규명을 위해 감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홍 의원은 정부가 대우조선에 자금 지원을 하기에 앞서 부실과 분식회계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실제, 시장에서는 대우조선이 분식회계를 통해 3조원 이상의 부실을 숨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지난해 7월 처음 나돌았다. 금융계 인사에 따르면 이 무렵 산은과 수출입은행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대우조선의 향후 처리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실사에 들어갔다.
이를 통해 산은은 4조원 대의 부실규모를 파악했고, 실사결과를 토대로 자금지원에 앞서 대우조선에 인력조정, 자산매각, 임금삭감 등의 자구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의 실사 결과는 당연히 당국에 보고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작년 10월22일 갑자기 서별관회의가 열리고, 여기서 대우조선해양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전격 결정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홍기택 당시 산업은행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자금지원은 서별관회의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됐고, 산은은 들러리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발언의 파장이 커지자 홍 전회장은 정부와 산은이 협의해 결정했다고 말을 바꾸었지만 신빙성이 떨어진다.
만약 당국이 대우조선의 불법 혐의를 인지하고서도 천문학적 규모의 대출을 강행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문제는 심각하고, 배임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이와 맞물려 불법성 논란의 위험까지 무릅쓰면서 당국이 서둘러 자금을 지원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둘러싼 의혹도 커지고 있다. 분식회계 등의 범법행위를 덮고 넘어가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대우조선의 부실과 분식회계가 심각한 상황임이 공공연히 알려졌고,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 지원을 전격 결정한데 대한 문제의식이 퍼져있었다. 금융권 고위인사가 "대우조선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고 반문한 것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혈세인 7조원의 공적자금과 4조2천억원의 국가자산이 투입됐고, 앞으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공적자금이 더 투입될지 알 수 없는 상황, 여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분식회계와 불법, 방만경영의 실태가 드러난 사안인 만큼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는 거셀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서별관회의가 비공식 회의란 이유로 회의록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것. 국가경제의 주요 사안을 결정한 회의였지만 공식적으로 어떤 기록도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의사결정 과정을 추적해 책임소재를 밝혀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서별관회의에 참석한 정부고위인사들을 상대로 당시 논의된 내용을 직접 조사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정부 최고위인사들이 대상이고, 사안의 성격 상 검찰 수사 대상이 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청문회가 불가피다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서별관회의 참석자들이 청와대나 정부 고위인사들이란 점에서 검찰수사나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며 “청와대나 경제 정책 당국자들에 대한 책임문제, 지금까지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 효과에 대한 판단 등을 규명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국정조사나 청문회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