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계 검열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전에는 논란이 생기면 검열이 잦아들곤 했는데, 현 정부에서는 더욱 당당하게 자행됩니다. 분노한 젊은 연극인들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검열에 저항하는 연극제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를 5개월간 진행하겠답니다. 21명의 젊은 연출가들이 총 20편의 연극을 각각 무대에 올립니다.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작품으로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려는 연극인들의 이야기를 CBS노컷뉴스가 시리즈로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글 싣는="" 순서="">
① “검열이 연극계 판을 분열시키고 있다”
② “비논리적인 그들의 검열 언어, 꼬집어줄 것”
③ “포르노 세상에서 검열이란”
④ “검열, 창작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
⑤ “검열을 '해야 된다'는 그들…왜 그럴까”
⑥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⑦ “'불신의 힘', 검열 사태 이후 나에게 하는 살풀이”(계속)
'프로젝트 그룹 쌍시옷' 송정안 연출.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생각지도 못했어요. 전혀요."
송정안(32) 연출은 자신의 연출 인생이 시작부터 이렇게 험난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공연을 올리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마냥 힘든 대학로에서 그는 공연 기회를 얻었지만, 예상치도 못한 사건으로 그 기회를 내려놓아야 했다.
그는 지난해 하반기에 터진 연극 검열 사건 중 하나인 '팝업씨어터' 사태를 몸으로 겪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는 '팝업씨어터'에 참여했던 3명의 젊은 연출가들에게 대본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김정 연출의 '이 아이'가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게 그 시작이었다. 공연예술센터는 '이 아이' 공연을 방해한 데 이어, 송정안·윤혜숙 연출에게도 대본을 요구했다. 세 연출 모두 대본 제출을 거부했고, 이들은 대학로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들이 됐다.
송 연출은 당시 공연하지 못한 '불신의 힘'을 이번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무대에 올린다. 당시 공연은 15분짜리라, 1시간 정도 공연으로 다시 만들었다. 당시 올리려고 했던 내용과 함께 '팝업씨어터' 사태 이후 본인이 겪고, 느낀 것을 담았다.
송 연출은 "대본은 본 주변 사람들은 ‘송정안이 팬티만 입고 달리는 작품 같다’고 할 정도로 나의 이야기이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에게 하는 살풀이나 씻김굿 같기도 하다"고 전했다.
'팝업씨어터' 사태는 그만큼 자신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당시의 분노, 이후의 밀려드는 고민의 연속 등을 한번은 짚고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성장 스토리인 셈이다.
연극 '불신의 힘'은 오는 14일부터 17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공연한다. 다음은 송 연출과 1문 1답.
▶ 프로젝트 그룹 쌍시옷 소개를 해달라.= 내가 극단 소속이 아니라,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에 참여하면서 겸사겸사, 심기일전해서 ‘프로젝트 그룹 쌍시옷’을 만들었다. 나를 포함해 지난번 팝업씨어터 때 같이 한 배우들 이름에 시옷이 들어간다. ㅅ과 ㅅ을 더해 “쌍시옷 어때?”라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렇게 10분 만에 지어진 이름이다.
▶ 처음에 ‘욕’인가, 했다.= 다들 여러 의미로 보시더라. ‘쌍시옷’이 얼핏 보면 욕 같기도 하고 경박한데, 그런 의도가 있는 건 아니다.
▶ 프로젝트 그룹이면 이번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에서만 활동하는 건가.= 프로젝트 그룹이라고 해서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작품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 이번에 올리는 '불신의 힘'에 대해 설명해 달라.= 지난해 팝업 씨어터 때 15분짜리 공연을 위해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쓴 작품이다. 당시 봤던 소재 중 “불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충격이 있어 작품을 썼는데, 검열 사태로 인해 공연을 못하게 됐다. 이번에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에 참여하면서, ‘불신의 힘’이랑 팝업 씨어터 때부터 현재까지 반 년간 경험을 녹여서 다시 1시간 남짓한 공연으로 만들었다.
▶ 그때 봤다고 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어떠한 내용이었나.= 북한이 쳐들어 와 전쟁이 일어날 거라 예언하는 한 여성 전도사의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그 내용이 불신의 씨앗이 퍼질 수밖에 없는 불안전한 사회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팝업씨어터 사태를 겪고, 작품을 준비하면서 생각의 방향이 달라졌다. 그 이야기를 이번 공연에서 하고자 한다.
▶ 그러면 극 중 극의 형태로 지금 말한 내용이 들어가나.= 그렇다. 팝업씨어터 이후 내가 경험한 이야기 안에 '불신의 힘'이 들어간다. 지난 반년동안 '불신의 힘'을 붙잡고 새로 작품을 구성하면서 사회를 불신한다는 것이 꼭 나쁜 일일까, 불안정한 사회에는 불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건강한 불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를 자문해 왔다. 계속 글을 고치고 있는데, 혹자는 ‘송정안이 팬티만 입고 달리는 작품 같다’고 할 정도로 나의 이야기이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에게 하는 살풀이나 씻김굿 같기도 하다.
'프로젝트 그룹 쌍시옷' 송정안 연출.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 팝업씨어터 사태 이후 어떻게 보냈나.= 정신이 없었다. 일이 터졌을 때부터 대처하고 공연을 취소하는 과정이 정신도 없고,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 일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고 뜻을 같이하는 결정적인 순간들이 나에게 많은 것을 시사했다. 나는 그 일이 있기 전에 나름대로 사회의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너무나 빈약하고 허약한 것이었다. ‘검열’이라는 단어를 직접 곁에서 마주하고 대하다보니, 내 안의 기준 자체가 명확하지 않았던 느낌이 들어서, 지난 반년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그들을 통해 내가 많이 변하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작품 자체가 성장 스토리가 될 수도 있겠다 생각도 든다.
▶ 본인에게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있나.= 아니, 정말로 전혀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작품소개, 의도를 낼 때도 적은 건데, 제 안에 직접 당한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 뚜렷한 기준이 없다보니, 이야기를 한다 한들 내 안의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지 모든 게 모호했다. 사실 사건을 저지른, 비난 받아야 할 대상은 너무나 명확한데 그 화살이 그곳에 안 꽂히고 나에게 오더라. 그래서 누구나의 이야기이지만, 나같이 허약한 사람이 없길 바라며,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들 나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
▶ 젊은 연출가라 이런 이야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자신보다 연극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다.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휩쓸리지 않고, 건강하고 줏대 있게. 내가 그러지 못해서….(웃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