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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 내 아이가 늘 강바닥에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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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집 '물결의 비밀' … 바오닌의 '물결의 비밀' 등 아시아 단편 12편 실려

 

딸은 물의 아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불렀다. 물에 빠진 아기를 아비가 구해낸 이야기는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알았다. 그러나 그 비밀은 아무도 몰랐다. 내 딸조차도 알 수 없었다. 단지 강물만이 안다. 내가 둑에 나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 내 아내, 내 아이, 그리고 이름 모를 여인이 늘 강바닥에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시간, 세월은 그렇게 흘렀고, 강물도 역사도 모두 변해간다. (「물결의 비밀」 중에서)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의 단편 소설 '물결의 비밀'은 강한 충격과 여운을 주는 한 편의 시와 같다.

미군 폭격으로 제방이 무너지고 홍수가 난다. 경비초소를 지키던 남자는 출산한 아내에게 달려간다. 남자와 아내는 아들을 품에 안은 채 물을 피해 나무에 매달린다. 그러다 어떤 낯선 여인의 손길에 의해 아들이 물에 빠지고 아내가 물로 뛰어들고 남편도 뛰어든다. 아들은 건졌지만 아내는 시신도 찾지 못하고 남편은 구출된 후 정신을 잃는다.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비극은 보편적인 비극일 수 있으나 '각각의 사연이 품은 슬픔은 강물보다 깊고 대지보다 단단하다'는 것을 처연하게,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은 여전히 어둠속에 버려진 아시아의 굴곡진 역사와 민중의 얼굴을 우리 앞에 돌려세우는 듯한, 섬뜩한 충격과 슬픔을 담고 있다.

신간 '물결의 비밀'은 계간 '아시아' 10년 역사 160여 편의 아시아 단편 소설 중 최고의 작품 12편을 모은 선집이다. 계간 '아시아'는 국내 유일 한영대역 문예 계간지이다.

터키의 야샤르 케말, 인도의 마하스웨타 데비와 사다트 하산 만토, 필리핀의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 중국의 츠쯔젠, 대만의 리앙, 베트남의 바오 닌과 남 까오, 그리고 레 민 쿠에, 일본의 유다 가쓰에, 태국의 찻 껍짓띠, 싱가포르의 고팔 바라담까지 아시아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실렸다.

인도 작가 마하스웨타 데비의 「곡쟁이」도 인상적이다. 다른 작품들이 여성의 체념이나 자조로 귀결되는 데 반해 「곡쟁이」는 여성의 생존 의지가 두드러진다. 남편이 죽고 아들이 죽고 손자가 떠나도 울지 않던 여자가 처지가 비슷한 친구와 함께 남의 장례식장에서 통곡해주는 곡쟁이 일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다.

슬퍼서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독한 재난을 당한 뒤에도 사람들은 차츰 목욕을 하고 밥을 먹고, 마당에서 고추를 물어뜯고 있는 염소를 쫓아낸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먹지 못하면 죽는다. (,..) 사니차리는 슬픔에 넋을 잃었지만 울지는 않을 것이다. 돈, 쌀, 새 옷, 이런 것들을 대가로 얻지 않는다면, 눈물은 쓸모없는 사치다. (「곡쟁이」 중에서)

먹고 사는 것이 전부인 삶. 생존의 간두에 서 있는 자를 울게 하는 것은 타인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리라는 것. 애도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눈물은 때로 피보다도 진하리라는 것. 그것을 두 곡쟁이 여성을 내세워 이야기하는 이 소설은 뼈아프고 눈물겹다. 장터의 갈보들과 장례식에서 뒹굴며 곡하는 이들의 슬픔이 가짜 슬픔이고 노동이기만 할까. 한 톨의 감정도 그들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고, 소유하지 못하는 이들의 가짜 울음에 가슴 먹먹하지 않을 수 없다.

유다 가쓰에의 「모래는 모래가 아니고」는 삼선(三船) 조난 사건에서 생존한 남자의 내면 풍경을 그렸다.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의 「불 위를 걷다」와 찻 껍짓띠의 「발로 하는 얼굴마시지」는 대지의 현실지형의 문맥을 날카로운 풍자와 강렬한 이미지로 묘파한다. 이들 리얼리즘과 풍자는 서구 소설의 그것과도 다르고,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과도 다른 독특한 아시아적 전통 위에 있다.

츠쯔젠의 「돼지기름 한 항아리」는 놀라운 순간을 경험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런 마술을 보여주는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남 까오의 「지 패오」는 남 까오가 베트남 문학의 ‘별똥별 같은 존재’라는 수삭 과장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리앙의 「꽃피는 계절」은 나무를 사러 꽃장수를 따라 나선 젊은 처녀의 설렘과 두려움을 탁월하게 그리고 있고, 야샤르 케말의 「하얀 바지」 또한 작가의 세계적 명성이 작가의 생동감 넘치는 필치에서 나온 것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레 민 쿠에의 「골목 풍경」은 한없이 퇴폐적이고 쓸쓸한, 여름의 어느 저녁 같은 왕가위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사다트 하산 만토의 「모젤」은 종교전쟁을 남녀의 사랑을 통해 유머러스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리고 있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고팔 바라담의 「궁극적 상품」은 가장 모던하고 첨단적인, 그리고 유일한 SF이다. 작가의 국제적 감각과 과학적 상상력이 한데 어우러진 작품이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풍토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단박에 마음 어딘가에 와 닿는다. '보편'이란 이런 경우를 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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