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미 엔의 신작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이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오래된 사진관을 배경으로,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사진들에 얽힌 이야기를 펼쳐낸다. 주인공 마유는 사진관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외할머니가 죽자 백 년 넘게 영업해온 그곳을 정리하기로 한다. 그녀는 유품을 정리하다가 미수령 사진들을 발견하고, 사진 속 남자 마도리와 함께 이 사진들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에는 상처를 품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주인공 마유는 누구보다 사진을 사랑했지만 4년 전 치기 어린 실수로 친구에게 큰 피해를 입힌 뒤 사진작가의 꿈을 접는다. 또 다른 주인공 마도리는 사고 후 기억을 잃고 나서 사진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알고 싶어 한다.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이 두 사람은 물론,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도 저마다 어두운 과거를 지니고 있다. 기억을 잃은 남자, 사진 유출로 충격을 받고 다시는 카메라 앞에 설 수 없게 된 배우, 훔친 은으로 만든 결혼반지로 청혼한 남자…….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사진관은 예전부터 그런 ‘갈 곳 없는 사람들’을 품어주는 곳, 사람들이 언제든 원하는 만큼 쉬었다 가는 장소였다.
마유도 스스로의 고치 안에 틀어박혀 살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을 찾지 못한 사진들의 비밀을 풀면서, 되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과거와 마주할 용기를 내게 된다. 작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라며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과거에 갇혀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미카미 엔의 시선은 그래서 오히려 더 따스하게 느껴진다.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은 이런 어른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책 속으로
또 만날지도 모른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탁한 발소리를 남기는 인간들은 고양이가 사는 그 낡은 건물을 찾는 일이 많았다. 흡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이어져 있는 듯. 달리 갈 곳이 없다는 듯.
_프롤로그 중에서
계단이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누군가가 스튜디오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내 검은 코트를 걸친 훤칠한 남자가 스윽 나타났다. 짧은 머리에 단정한 생김새. 오른쪽 눈꼬리에 또렷하게 점이 있었다.
바로 사진 속 남자였다.
_40~43쪽 중에서
“그 사진, 네가 인터넷에 올렸지?”
루이가 물었다. 심장이 멎을 만큼 놀랐다. 그는 마유가 꾸민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그런 거 아냐……. 분명히 지웠는데.”
꾸지람을 들은 어린애처럼 더듬더듬 사정을 설명했다. SNS 비공개 계정에 올렸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잘못을 깨닫고 바로 지웠다. 사진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서클의 여섯 명밖에 없다.
‘선배들 중 누군가가 저지른 짓이야.’
_110~112쪽 중에서
“반지 없이 청혼하면 안 되는 거냐?”
겐지는 고개를 들었다. 여기까지 들어놓고도 돈을 빌려주겠다는 말이 없는 걸 보니 정말 가진 돈이 없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무리였나. 체념하려던 순간 삼촌은 느닷없이 무릎을 탁 치며 벌떡 일어났다.
“어쩔 수 없지. 비장의 수를 쓰는 수밖에.”
“……빌려주실 겁니까?”
“내가 빌려주는 건 아니고 따로 빌릴 데가 있어. 가능한지 아닌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빌릴 데라고요……?”
대체 그게 어디지. 겐지도 마찬가지지만 삼촌에게 그런 큰돈을 빌려줄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니시우라 사진관. 후지코 씨를 찾아가려고……. 좌우지간 따라와.”
_172~173쪽 중에서
“사진이라는 건 찰나의 시간과 장소를 잘라내는 행위라고 했죠. 저는 지금 이 섬에 있는 저를……, 얼굴을 빼앗기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제 모습을 기록해두고 싶습니다. 되도록이면 원래대로 돌아갈 기회를 준 가쓰라기 씨가 찍어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증명하고 싶어요.”
“무엇을요?”
“가쓰라기 씨가 사진을 다시 시작해도 누군가의 인생이 그리 쉽게 망가지지는 않는다는 걸요. 한번 망가졌던 인생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걸요.”
_274~275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