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계 검열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전에는 논란이 생기면 검열이 잦아들곤 했는데, 현 정부에서는 더욱 당당하게 자행됩니다. 분노한 젊은 연극인들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검열에 저항하는 연극제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를 5개월간 진행하겠답니다. 21명의 젊은 연출가들이 총 20편의 연극을 각각 무대에 올립니다.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작품으로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려는 연극인들의 이야기를 CBS노컷뉴스가 시리즈로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글 싣는="" 순서="">
① “검열이 연극계 판을 분열시키고 있다”
② “비논리적인 그들의 검열 언어, 꼬집어줄 것”
③ “포르노 세상에서 검열이란”
④ “검열, 창작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
⑤ “검열을 '해야 된다'는 그들…왜 그럴까”
⑥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계속)
응용연극연구소 박해성 연구원.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젊은 연극인들의 검열 반대 페스티벌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7월 첫 공연은 ‘자유가 우리를 의심케 하리라’(응용연극연구소)이다.
7월 7일부터 10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박해성(39) 연출에게 극단 소개를 부탁했더니, "극단이 아니라 연구소입니다"라는 예상치도 못한 답변이 나왔다.
게다가 본인은 연출이 아니라 연구원이라고 덧붙인다.
박 연구원에 따르면, '응용연극연구소'는 기존 다른 곳에 소속돼 연극을 하던 배우와 연출 그리고 디자이너가 나와서 새로운 방향의 활동을 연구해보자며 모인 곳이다.
그동안 무대에 올린 작품이 없어, 이번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가 일종의 데뷔 무대가 됐다.
제목에서 풍기듯이 ‘자유가 우리를 의심케 하리라’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에 대해 '의심'해 보자는 취지의 질문을 던진다.
공연 형식 역시 극이 아니다. 무대 위해 오르는 배우(?)는 극 중 인물이 아닌 자연인 그대로의 이름을 갖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는 질문이라는 대화를 통해 관객뿐 아니라 자신을 포함 주변 창작자들이 당연하게 생각해온 모든 것에 의심하고, 또 의심하기를 원했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우리는 사회적으로 학습된 자유에 갇혀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우리 속 동물일지도 모른다.
다음은 박해성 연구원과 1문 1답.
▶ ‘응용연극연구소’, 이름이 재미있다. 극단 소개를 부탁한다.= 극단이 아니라 연구소이다. 각자 활동을 해오던 배우, 디자이너, 연출들이 기존에 해온 연극과는 다른 소재, 방향, 방법을 연구하려고 모였다.
▶ 이전 작품은 어떤 게 있나.= 이번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가 ‘응용연극연구소’의 데뷔 무대이다. 연구소 연구원들이 평소 하던 얘기도 그렇고, 페스티벌 소재나 주제도 그렇고, 공연을 하는 데 있어 좀 더 구체적인 표현과 말이 필요했다. 에둘러 가거나, 은유나 비유, 스토리나 상징 등이 아니라 직접적이고 명료하게 말하기 위해 다른 방식의 연극 언어를 사용하려 한다.
▶ 다른 방식?= 명확하게 말하자면, 대화 형식이다. 무대 위 누군가가 어떤 역할을 맡거나 상황을 연기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 자체로서 관객과 직접 대화한다.
▶ 작품명이 ‘자유가 우리를 의심케 하리라’인데, 공동 구성으로 돼 있다.= 모두가 작가이고 연출이라 ‘공동 구성’이다. 연구원 4명이 토론하고 의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질문들을 관객과 같이 나눠보려 한다.
▶ 대본 쓰기 어렵겠다.= (토론하는) 모든 과정이 다 대본이다.
▶ 어떤 내용인가.= 검열 정국에 대한 현상적인 부분은 다른 작가나 연출들이 이야기할 거다. 우리는 그것을 동의하는 전제하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섬세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표현의 자유의 범위, 그로 인해 감내해야 할 것들, 합의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합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
사전적 의미의 검열을 포함해 그 이외의 맥락적인 검열까지 다룬다. 맥락적인 검열이란, 자기 검열, 혹은 내가 타인에게 행하는 검열 등이다. 아마 공연은 질문의 연속이 될 것이고, 그 질문에 대해 관객과 생각해보는 형식이 될 것이다.
▶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검열 문제가 불거진 게 현상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 전에 시민이 합의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가 말하는 문제제기와 이야기에 동의하되 , 그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섬세한 담론을 이야기할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응용연극연구소 박해성 연구원.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 말한 대로 우리 사회는 '표현의 자유'의 범위에 대해 합의라는 게 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생각한 답이 있고, 그것을 관객에게 제시하는 건가. = 답은 없다. 우리 사회가 워낙 불안하고 무질서하다 보니 흔히들 명쾌한 답을 원한다. 그런데 결과 도출을 위해 과정을 폭력적으로 뛰어넘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 답을 내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전진하기 위해 넘어갔던 사이사이의 예민한 문제들 더 생각해 보자는 거다. 설사 답이 안 나왔다 하더라도 그 간극을 메우는 게 중요하다.
▶ 검열 사태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검열하는 주체가 어쩌면 자신이 검열하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겠다 생각해봤다. 본인이 생각하는 어떤 정당한 대의와 이익을 위해 한 행동이 검열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정이다. 결과적으로 검열은 행해졌는데 왜 그들은 자신이 검열했는지 모를까. 입장을 바꿔보자. 나는 공권력이 없으니 지금과 같은 검열을 해본 적은 없지만,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약 우리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되거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된다면, 그 어떤 검열도 없게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검열이 꼭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뤄지는가. 우리가 우리 자신과 다른 이를 검열한 적은 없는가. 적과 아군을 만들고 싸워나가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전제에 대해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부당한 검열은 없어져야 하지만, 누구에 의한 부당한 검열이든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의심들이 시작됐다.
▶ 이야기를 듣다보니 묻고 싶어졌다. 근래 논란이 됐던 ‘홍익대 일베 조각상’ 철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공교롭게 이 연구가 진행되는 도중에 그 일이 터졌다. 연구원들이 이 문제와 관련된 정보나 상황을 매일 업데이트하면서 서로 의견을 나눴는데, 각자 매일 생각이 바뀐다. 당연히 결론은 없다. 오늘 버전으로 이야기하자면, 그 창작 현상에 대해 다른 시민들이 논의하고 비판, 비난할 기회가 원천 차단된 일은 아쉽다는 정도이다.
▶ 관객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메시지.= 관객뿐 아니라 나 자신과 동료 창작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그저 주어진 정의가 아니라 각자가 생각해보는 정의가 필요하다. 결론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생각해보는 경험과 과정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 옳다 하면 옳은 거고, 정당하다 하면 정당한 걸까.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정의가 아니라, 내가 의심하고 회의하고 때로는 나 자신을 의심하고 비판하기도 한 끝에 나온 정의가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게 진짜 정의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과정이 있어야 이런 폭력적인 검열, 더 나아가 어떤 폭력이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