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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식 전 총장, '세월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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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에세이, 김우식의 일흔일곱 굽이 인생수업

 

신간 '세월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은 저자 김우식이 어린 시절 겪은 전쟁, 피 끓는 청년 시절의 방황, 그리고 교육자의 길에서, 국가의 미래를 다지는 길에서 한결같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온 어른 세대의 솔직 담백한 서른세 편의 에세이이다. 삶을 방향을 고민하는 청년, 주어진 일에 책임지는 성숙한 중년,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어른 세대의 삶의 자세까지 희수를 맞아 일흔일곱 굽이 인생길에서 얻은 깨달음과 삶의 소중한 원칙이 담겨 있다.

저자 김우식은 대한민국을 만들어온 주역 중 한 사람이다. 공학도 출신으로는 최초로 연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면서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앞장서고, 학계 출신으로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인화의 정치,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비전과 과학기술인에 대한 처우 개선 등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퇴임 후에도 (사)창의공학연구원의 이사장으로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는 현역이다.

이 책에는 어린 시절의 짓궂은 개구쟁이 김우식, 우연찮게 듣게 된 부모님의 대화에서 자신의 미션을 발견하거나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평화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닫는 소년 김우식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쌀 한 말과 책 열 권을 들고 절에 들어가던 모습, 오리무중의 미래를 헤쳐가기 위해 고민과 방황, 사업과 사랑의 실패로 좌절하는 청년 김우식은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과 꼭 닮아 있다.

4.19 혁명 당시의 청년의 의분과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교수로 있으면서 맞은 80년 5월의 무기력함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모습은 인간 김우식의 진솔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80년대 중반 민주화 열기가 고조된 대학에서 '연세춘추'의 주간과 대학 언론의 발행인을 맡아 동분서주하던 때의 고민과 제자들에 대한 연민, 학생처장 시절 겪어야 했던 설인종 군 사망사건에 책임을 지는 모습은 현대사의 파란을 온몸으로 겪어온 스승의 고민을 엿보게도 한다. 하지만 시종일관 그는 남을 탓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고난의 시간에서 삶의 보석과도 같은 지혜를 얻어내며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다. 총장 시절, 학교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모습, 국가를 위해 관료로서 움직이던 모습에서는 어릴 적 부모님의 대화 속 비전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한결같음을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나눔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어른으로서 해야 할 바를 묵묵히 실천하는 모습은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서른세 편의 에세이에서 저자는 곤궁했던 어린 시절도, 방황과 좌절의 청년 시절도 따뜻한 시선으로 회고한다. 이러한 따뜻한 시선의 다른 이름은 바로 '무한긍정의 정신'이다. 이러한 무한긍정의 정신이야말로 저자가 이룬 성취의 가장 든든한 뿌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따뜻한 시선은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리느라 지나쳐 온 것들에 눈길을 주어야겠습니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내 인생의 남은 길을 차분히 걸어가면서 길가의 소소한 풍경에 인사를 건네고, 그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을 좀 더 살뜰히 보살펴야겠습니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기만 합니다. 너무 공부에 시달리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학교에, 학원에, 과외에, 여기저기서 해야 할 공부가 넘쳐납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에 대한 부모의 관심도 넘치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도 넘칩니다. 굳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일침을 떠올리지 않아도, 감당하기 힘든 공부와 도를 넘어선 관심이 자칫 더 넓게, 더 높게, 더 깊게 볼 수 있는 아이들의 시야를 막고 있는 건 아닌가 염려스러울 따름입니다."

이러한 따뜻한 시선은 가족과 사회의 낮은 곳을 바라보는 데에서도 한결같다. 아버지로서 노안이 온 큰 딸을 바라보는 측은함, 새벽에 일어나 작은 딸의 집 안 구석구석 청소하는 모습, 임신이 더뎌진 아들 내외를 위로하는 모습과 당신 때문에 임용 과정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던 아들을 바라보며 전전긍긍하는 모습 등이 그러하며, 탈북 청소년을 돕고, 해마다 크리스마스에 즈음하여 어려운 이웃을 직접 찾아가 돕는 사랑의 닛시운동도 그러하다. 생색을 내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시켜서 하는 일이다. 이러한 마음은 오래전 볶은 찹쌀을 한웅큼 쥐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나눠 먹던 시절부터 이어진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원칙을 다짐한다.

"베푼 것은 즉시 잊고, 받은 은혜는 오래오래 기억하고 감사하자."

하지만 일흔 살 생일을 맞을 즈음에 남은 생의 원칙을 정하는 대목에서 김우식의 삶의 절정을 보는 듯하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온 그가 마지막까지 견지하려는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배움이다.

"배우고 익힌다. 깨닫고 이룬다. 나누고 떠난다."

그러면서 "인생이라는 수업 앞에서 우리는 모두가 무지한 학생입니다. 그러니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온 숱한 세월은 접어 두고, 이제부터는 맨 앞줄에 앉아 수업을 경청하는 학생의 마음으로 죽는 날까지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겠다 싶었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말고, 작은 것이라도 깨닫고 이루자고 다짐했습니다. 실천의 열매가 따르지 않는 깨달음은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아가 깨달아 이룬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떠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겠다 다짐했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그는 "인생 수업을 통해 얻은 것은 더불어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과 나누고, 빈손으로, 가난한 마음으로, 왔던 곳으로 조용히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용렬한 인간들, 가진 자일수록 더 가지려 하고 권력을 쥔 자들이 그 권력에 더 집착하는 모습이 횡행하는 시대에 이러한 삶의 원칙, 떠남의 원칙을 천명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스승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책 속으로

어쩌면 나는 저 너머 높은 곳 어딘가에 나부끼고 있을 깃발의 환영을 보고 여기까지 달려왔는지도 모릅니다. 조금만 더 달리면,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그것은 결국 삶을 부르는 하나의 손짓, 생을 욕동欲動시키는 아름답고 고마운 신기루였는지도 모릅니다. _p.16 <내 삶="" 속의="" 나침반="" 하나="">

“부족하다고 해서 부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아이들은 하늘 아래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었으니까요. 나 역시 그렇게 자랐습니다. 배부르지는 않아도 자연을 벗 삼아 놀고 배우면서 나름 인내심도 생기고 마음도 넉넉해졌다 자부합니다. 좋게 말하자면, 없었기에 오히려 더 풍성해지는 삶이었습니다. _p.41 <저마다의 인생="" 밑그림을="" 그리는="" 일="">

역사의 거울, 즉 한국전쟁이라는 사경에 비춰 볼 때, 우리에게는 항상 전쟁이라는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것으로 평화만큼 소중한 가치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다시는 피난 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우리 시대, 아니 미래의 세대들에게 다시 경험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배움도, 과학기술도, 정치·경제도 그 지향점은 오로지 평화여야 한다는 생각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어린 나이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뼈아픈 성장통을 겪으며 얻은 소중한 깨달음입니다. _p.61 <전쟁이라는 아픔="" 속에서의="" 깨달음="">

태어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늙고 병들고 죽음에 이르는 일이 모두 아픔을 수반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아픔을 나쁘다 여기고, 아픔 없이 사는 삶을 추구합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개인의 삶을 통틀어 볼 때 아프지 않고 성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아픔을 겪었을 때 한층 성숙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성숙해지기도 합니다. 아픔이 약인 경우입니다. 더러는 그 아픔으로 인해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을 학대하기까지 합니다. 아픔이 독인 경우이겠지요. 거스를 수 없는 섭리라면 아픔을 약으로 승화시킬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야 자정에 마신 샘물의 시원함처럼, 이른 아침 풀잎에 맺힌 색동 보석과 같은 이슬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느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_p.66 <늑막염이 내게="" 가르쳐="" 준="" 것="">

학생들이 진로에 대해 고민을 물어 올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신조에 대해 들려주곤 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그 길을 향해 정성을 기울이면 안 될 일이 없다. 단, 하늘이 감동할 정도로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뜻을 품기까지는 내 안에서 수많은 꿈들이 서로 치열하게 각축을 벌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작은 시도들이 있을 것이며,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갈 곳 잃은 사람처럼 이리저리 방황할 수도 있고, 쓰디쓴 실패의 경험을 맛볼 수도 있을 테지요.
그러나 그런 것들이야말로 청춘에게 주어진 ‘약’이라 믿습니다. _pp.67~68 <방황과 실패는="" 청춘의="" 특권이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이 일어날 무렵의 어느 날엔 한 학생이 “교수로서의 용기를 보여 달라”며 강의 도중에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 적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과 나 사이에, 격변하는 역사의 풍랑 속으로 뛰어들 용기를 얻고 싶은 제자들과,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할 스승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용기가 없었고, 솔직히 용기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_p.85 <역사의 아픔을="" 딛고="" 승리로="" 가는="" 길="">

책임은 무겁고 또 무서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 책임으로 인하여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역량을 발휘하고, 용기를 내어 더 큰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책임을 진다는 말은 그 무겁고 또 무서운 세상의 일에 당당히 맞선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책임을 지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일 테지요. 책임에서 자유로워지자 세상의 일에서 비켜서고자 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책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_p.110 <책임이라는 무거운="" 옷="">

“총장님, 제가 마음에 안 드시더라도 나라를 위해 봉사 좀 하세요. 대학 총장도 결국엔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자리 아닙니까. 이쪽에 오셔서 국가를 위해 봉사 좀 해 주세요.”
그때, 나라를 위해 봉사하라는 그 한마디 말에 마음속의 자물쇠가 철컥, 하고 열려 버렸습니다. 그 말은 대통령의 입을 통해 우연히 나온 말이었지만, 내게는 어떤 결정적 힌트가 되는 말이요, 삶이 내게 부과한 평생의 과제라 여기며 살아온 일이었습니다. 그 앞에서 ‘아니오’라는 대답을 고집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니오’라는 대답은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_p.142 <나라를 위해="" 봉사하라는="" 그="" 한마디="">

결국 인생은 하나하나 쌓여 가는 인연과 서서히 축적되어 가는 경험이 교차되면서 직조되는 하나의 직물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삶이 끝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 형태와 크기를 알 수 있는 그런 직물 말입니다. 씨줄과 날줄처럼, 이런저런 인연과 다채로운 경험이 삶을 일구어 가는 동안, 어떤 이는 지나가는 계절처럼 잠시 머물렀다 가고, 어떤 이는 깊은 상처를 남기고 떠나고, 또 어떤 이는 한 시절을 함께하는 소중한 벗으로 남습니다. 어찌 됐든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선물 같은 귀한 인연이 찾아올 터. 기다리는 셈치고 인생을 끝까지 완주해 볼 일입니다. _pp.157~158 <인생은 인연과="" 경험이="" 짜낸="" 비단="" 같은="" 것="">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어린 학생들이 매번 강연자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걸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될성부른 떡잎은 도처에 있구나, 그저 떡잎으로 끝나고 꽃을 피우지 못해 그렇지.’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떡잎이 떡잎으로 끝나는 게 어찌 떡잎만의 문제이겠습니까. 될성부른 인재를 좀 더 일찍 알아보지 못하고, 각자의 개성에 맞게 잘 길러 내지 못하는 교육 환경과 시스템의 문제인 것을. 사실 인재는 그 잠재력이 구현되는 순간에야 비로소 되는 게 아닌가 말입니다. _p.175 <인재의 싹을="" 알아보고="" 물을="" 주며="" 키워="" 내는="" 일="">

나는 베란다의 남작에서 아파트 정원의 헐벗은 나뭇가지로 눈길을 돌려 한참을 바라봅니다. 저 나무들은 죽은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봄이 오면 다시 새싹이 돋을 것입니다. 그러면 햇빛과 비, 바람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한 해가 저들에게 주어질 테지요. 그러나 우리의 삶은 저들과 다를 터. 우리에게는 지나가면 다시 못 오는 세월처럼 그 해의 한 번의 봄과 한 번의 푸르름, 한 번의 단풍과 한 철의 추위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어느 계절에 머무르고 있든, 어느 현자의 말대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매순간 최선을 다해 성숙한 자세로 살아 볼 일입니다. _p.192 <자연은 내게="" 삶의="" 이치를="" 조근조근="" 속삭이고="">

그날 오후 나는 다시 골방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이번에는 막힌 문제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깨끗이 포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입은 은혜를 떠올렸고, 그걸 백지 위에 쭉 적어 내려갔습니다. 적다 보니 백지 한 장이 금세 채워지더군요. 훌륭한 부모님과 따뜻한 형제자매를 만났고, 학교에 품은 뜻도 어느 정도 이루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단란한 가정도 꾸렸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주위의 좋은 사람들이 더해준 따뜻한 도움과 사랑 덕분에 분에 넘치는 선한 결실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날 오후 단숨에 빼곡히 채워진 백지는 내가 잊고 지냈던 것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것은 내 삶이 오래전부터 내 그릇에 넘치는 은혜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_pp.225~226 <나눌수록 빛나는="" 생명의="" 깃발,="" 사랑의="" 닛시운동="">

나는 맘 편히 살기 위해 더 이상은 그런 ‘셈’을 하지 않고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셈’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아가 인화를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인간관계의 원칙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베푼 것은 즉시 잊고, 받은 은혜는 오래오래 기억하고 감사하자.” _pp.245~246 <결국엔 사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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