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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박찬욱 감독 "멋있는 여주인공, 희귀하니까 매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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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박찬욱 감독이 고백한 '아가씨' 이모저모

영화 '아가씨'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오랜 인터뷰 일정에 굳은 다리를 풀려는 듯, 박찬욱 감독은 테이블 주위를 걸어다녔다.

그 날의 인터뷰는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치 산책처럼 이어졌다. '아가씨'를 향해 던져지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차분하고도 진중했다. 답변 하나 하나에는 영화를 향한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가씨'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중에서는 최단 기간 200만 관객을 돌파했음에도 박찬욱 감독의 기분은 그저 평온해 보였다. '다 잘될 거라고 생각하고 만들어서' 그렇단다.

"연휴 이후가 중요한 고비라고 하더라고요. 반응이 좋을 것은 기대했죠. 영화를 만들면서 당연히 그렇게 기대하면서 만들지 않을까요? 언제나 그랬어요. 믿기지 않겠지만 '박쥐'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도 좋은 반응을 기대하고 만들었습니다."

'아가씨'에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가 가득하다. 그는 스스로 세상에 능통하다고 믿는 어리숙한 '숙희' 캐릭터와 원작에 비해 많이 달라진 백작 캐릭터를 대표로 꼽았다.

"숙희는 본인이 세상물정을 잘 알고, 히데코를 갖고 놀면서 조종한다고 생각하죠. 히데코가 보기에도, 관객이 보기에도 전혀 그렇지 못한 부분에서 생기는 유머가 있다고 생각해요. 백작은 더 큰 변화가 있었죠. 물론 보통 남자보다는 더 나쁘긴 하지만 보통 남자에 가깝게 그렸어요. 두 여성이 사랑하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뒤통수를 맞으려면 좀 허술한 면이 있어야 했거든요. 숙희를 희롱한다던가, 히데코를 겁탈하려고 한다던가 이런 장면에서 관객들이 '나쁜 캐릭터니까 당연히 그렇지'라고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데 신경을 썼어요. 증오하기 보다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실망하게 한다고 해야 할까요."

영화 '아가씨' 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처음 '아가씨'는 '합의 없는 노출 수위'로 유명세를 떨쳤다. 동성애, 베드씬 등으로만 시선이 몰리는 것에 불편한 마음은 없었을까. 박찬욱 감독은 '너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우리가 고의적으로 흘려서 마케팅을 한 것도 아니고 유출된 자료였거든요. 힘들게 오디션 보고 합격했는데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할 수도 있다길래 마음에 준비 된 사람만 오라고 하는 그런 뜻이었어요. 영화 보고 나서는 별 것도 없다고 하는 관객들도 많던데요? 뭘 기대했느냐고 되묻고 싶긴 하지만요. 상업영화 특성 상, 노출이나 수위가 있다고 하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하는 대중의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 문제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걸 포함해서 종합적으로 폭 넓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어요."

박찬욱 감독은 베드씬의 자세 하나까지도 숙희와 아가씨의 관계 변화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 이유 없이, 자극과 재미만을 위한 씬은 없었고, 모두 철저한 계산과 생각 끝에 이뤄진 것들이었다.

"여성 간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자세를 씬에 넣었죠. 옆에서 보았을 때 완전히 대칭이 되는 모양새를 하고 있어요. 두 주인공이 신분과 나이 그리고 민족 모든 요소에서 격차가 있는데 그것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이 영화의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각적으로 봤을 때 대칭구도가 중요한 모티브였고요. 또 그 자세는 힘있고 애틋하기도 하고,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경계한 것은 남성에 치우친 시각이 영화에 씌워지는 것이었다. 특히 여성 간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기 때문에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물론, 여전히 '아가씨'를 두고 남성 중심적인 여성 로맨스라는 비판은 존재한다.

"그렇게 보일까봐 조심을 많이 해서 나온 결과가 지금이에요. 그런데도 그런 비판이 있다면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간단하게 해버릴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정밀한 분석을 요하는 논의거든요. 영화에 나오는 두 개의 정사씬만 보면 이야기하기 쉽지만 대답하긴 어려워요. 어떤 앵글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질문하면 대답할 수 있겠죠."

영화 '아가씨' 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숙희 역의 배우 김태리는 박찬욱 감독이 손수 지도에 나섰다. 함께 공식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지금, 박 감독에게 김태리는 자랑스럽고 대견한 배우다.

"첫 촬영하기 전에 태리가 제 사무실에 매일 출근했죠. 대사를 읽고, 전사도 설정하고, 연습을 많이 했어요. '호탕하게 웃으라'는 지문이 있었는데 어떻게 웃는 건지 모르겠다고 해서 이렇게도 웃어보고, 저렇게도 웃어보고…. '태리야끼'라는 별명도 있는데 무대인사 다녀보면 태리를 향한 환호가 말도 못해요. 거의 김태리 팬클럽이던데요?"

베테랑인 배우 김민희와 호흡을 맞출 때는 신인다운 매력을 내보이기도 했다. 숙희와 히데코 사이에 결정적인 감정이 오가는 장면을 촬영할 당시였다.

"숙희가 히데코의 얼굴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컷을 했을 때 (김)민희 양이 (김)태리한테 '너 너무 세게 잡는 거 아니니?'라고 했거든요. 화를 낸 건 아니고 얼굴이 구겨져서 나올까봐 그런건데, 태리가 막내니까 거기에 겁을 먹었을 거예요. 감독님은 계속 세게 잡으라고 그러지…."

김민희는 일본인인 히데코 역을 보다 자연스럽게 소화해내기 위해 일본어 공부에 매진했다. 박 감독은 예상을 벗어나는 김민희의 연기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죠. 준비도 많이 해오고. 일본어로 대사가 진행되는 낭독회 장면을 보면 굉장히 자신감에 넘치는 걸 알 수 있어요. 사법고시라도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리고 저는 틀에 박힌 뻔한 연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어딘가 이상한 지대에 있는, 클리셰와는 거리가 먼 묘한 표정들이 항상 나오곤 했죠."

사실 영화는 원작과 상당 부분 다른 지점이 많다. 두 여자 주인공 주변의 남자 캐릭터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도 그 중 하나다. 박찬욱 감독은 등장인물 네 명 모두를 주인공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고백했다.

"저는 일단 네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봤어요. 하정우나 조진웅의 스타파워를 이용한 거라고 하기도 하고, 제가 남자 감독이라 남자들로 후반부를 채우고 싶었던 것 같다는 지적이 많다고 들었어요. 그런 프레임으로 보는 한은 어쩔 수 없이 그런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두 여자 주인공들을 살리는 차원에서 남자 캐릭터들이 더 보강될 필요가 있다고 봤어요. 악당이 매력있어야 주인공이 살아나잖아요. 또 일제강점기 배경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당시 친일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들여다 보고 싶었고요. 그러려면 남자 캐릭터들 각자의 이야기가 중요했거든요. 저는 '아가씨'가 여자들로 시작해서 남자들로 끝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영화 '아가씨'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대형 상업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을 찾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국내 영화계 또한 남자 배우들과 남성적 시각에 입각한 영화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박찬욱 감독은 끊임없이 여성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구상하고 만들어왔다.

"멋있는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가 별로 없죠. 그래서 그런 주인공이 나오면 더 멋있어지게 되어버렸어요. 희귀하니까요. 제 기준에서 멋있다는 것은 자신보다 힘이 강한 것과 맞서는데 굴복하지 않고, 자기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인정하고, 잘못과 죄의식을 가지며 그 고통에서 회피하지 않는 거예요. 저는 그것이 영웅이라고 봅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 주류 영화에서 그런 여성 영웅이 많지가 않아서 제가 그것을 자주 하게 되는 건데 사실 사명감보다는 한 번 나오면 더 멋있기 때문에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마치 백작은 히데코와의 초야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데 히데코는 숙희의 노래를 들으며 혼자서 즐기고 너 따위는 필요없다고 하는 그 장면처럼 매혹당하게 되는 거죠."

대사에는 특별히 공을 들였다. 우아하고 격식있는 말 속에 감춰진 욕망 가득한 속내들이 즐거운 묘미였다고. 이밖에도 대사를 통해 전할 수 있는 재미들이 무수히 많았다.

"제가 원래 중의적 표현을 좋아하고, 반복을 통해 똑같은 표현에 다른 의미를 넣는 것이 '아가씨'의 재미라고 생각해요. 사실 대사가 좋은 영화들이 없지는 않은데 현대 한국인의 언어관습이라는 것이 너무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변한 것 같아서요. 그래서 그 동안 별로 없었던 종류의 대사로 묘미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옛날 배경이기도 하고, 일본어 대사는 자막으로 읽게 되니 문학적인 표현이 가능하죠. 점잖빼면서 우아한 척하는 말. 그 안에 숨은 뜻은 그렇게 우아하지 않고, 속으로 자신의 욕망을 감추는 것이 재미있어요. 마치 히데코의 후견인 코우즈키가 모으는 장서들이 겉으로는 멋있지만 그 안에 지저분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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