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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바꾼 '국회의장' 쟁탈전, 부끄러운 헌정사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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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키워드] 국회의장의 '중립'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 벌이는 Ⓐ당과 Ⓑ당의 기세싸움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당은 제1당이 국회의장을 맡는 것이 당연하다며, 합의가 안될 경우 경선이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인 반면 Ⓐ당은 역대 국회에서 집권당이 국회의장을 내놓은 사례가 없다며 경선없이 합의 처리하자고 맞서고 있다."

최근 정가의 분위기를 떠올린 독자라면 Ⓐ당으로 새누리당, Ⓑ당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을 꼽겠다.

하지만 위 기사는 2000년 4월 [한겨레]에 실린 것으로, Ⓐ당은 새천년민주당 Ⓑ당은 한나라당이다.

김대중 정부 당시인 그해 4월 13일 치러진 16대 총선 결과 한나라당은 133석,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115석, 자유민주연합은 17석을 확보했다.

여소야대 속에 어느 당도 과반을 이루지 못하자, 현재와 똑같은 논쟁이 벌어졌던 것.

각각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바통을 넘겨받은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이 이제는 달라진 환경에서 입장을 180° 바꾼 셈이다.

어쨌든 16년 전에는 여당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새천년민주당의 이만섭 의원이 국회의장에 올랐다.

하지만 집권하지 않은 야당에서 국회의장을 낸 적도 없지는 않아서, 16대 국회 후반기에는 한나라당 소속이던 박관용 의원이 의장을 맡았고 그보다 한참 앞선 제헌국회 때의 신익희 국회의장도 야당 소속이었다.

◇ 여소야대 속 더 막강한 국회의장의 권한…행정부까지 '올스톱' 가능

이처럼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꿔서라도 국회의장을 차지하려는 건 그 자리에 걸린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국회의장은 대통령에 이은 국가 의전서열 2위이며, 4천여 명에 이르는 국회 직원들에 대한 인사권과 5500억원이 넘는 국회 예산권을 쥔다.

차관급인 비서실장과 1급 국회 대변인을 포함해 국회의장을 보좌하는 이들이 23명이나 되고, 국회경비대 소속 경호원 4명은 항상 의장 주변을 경호한다.

서울 한남동 소재 국회의장 공관이 주어지며, 의장 집무실은 일반 의원실보다 10배 가까이 넓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의장이 국회의 모든 의사일정을 폭넓게 결정한다는 점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19대 때부터 적용된 국회선진화법으로 직권상정 권한이 제한되긴 했지만, 국회의장은 여전히 논란이 되는 의제를 두고는 아예 개회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국회를 넘어 행정부를 마비시킬 힘까지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러한 권한은 특히 여소야대 지형에서 더욱 커보일 수밖에 없다.

◇ 부끄러운 헌정사, 오늘의 국회의장직 쟁탈전으로

물론 국회의장이 중립적으로 회의를 이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역대 국회의장들의 행적은 현재나 앞으로도 염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역대 이승만·신익희·이기붕·곽상훈·백낙준·이효상·백두진·정일권·정내혁·채문식·이재형·김재순·박준규·이만섭·황락주·김수한·박관용·김원기·임채정·김형오·박희태·강창희·정의화 전 의장들 가운데, 청와대 거수기 논란이나 날치기 파동에서 자유로운 이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모두 24건의 국회의장 불신임안 또는 사퇴촉구 결의안이 제출됐다.

2014년 5월 임기를 마친 강창희 전 의장의 경우 "헌정사상 국회의장실을 점거당하지 않은 최초의 국회의장"이라고 자랑했을 정도로 정치적 편향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박희태 전 의장은 새누리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의장직에서 물러나 국회 전체의 권위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요즈음, 국회의장 자리 확보에 여야가 혈안이 돼 모든 논의가 마비된 정치 현실.

부끄러운 우리 헌정사에 '한 획'을 더 긋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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