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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정신분열 선긋기'에 더 격화되는 '여성혐오'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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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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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화장실 살인…20대 여성 "사회범죄"주장 거세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 아닌 '여성혐오 살인사건'이라고 주장하는 20대 여성들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여성혐오가 죽였다'라는 주제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경찰이 최근 여성 혐오 논란을 불러온 서울 강남 '화장실 살인 사건'을 재차 정신질환자에 의한 개인 범죄라고 결론 내리자, 피해 여성 또래인 20대 여성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사건의 성격을 여성 혐오 범죄로 보고 사회·구조적으로 예방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경찰은 선 긋고, 여성은 줄 잇고

강신명 경찰청장(52)은 지난 17일 발생한 20대 여성을 겨냥한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 살인사건에 대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강 청장은 23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가진 정례 기자간담회를 통해 사견을 전제로 "특정 대상을 겨냥한 범죄사례가 국내에 축적된 것은 없다"면서 "아직 대한민국에는 혐오 범죄가 없다"고 단언했다.

앞서 경찰은 전날 '혐오 범죄'와 '정신질환 범죄'를 구분 지어야 하며, 피의자 김 모(34) 씨가 여성 혐오를 부인한 점 등을 근거로 이번 범행은 혐오가 아니라 정신질환 범죄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하지만 피해자 또래인 20대 여성들은 경찰이 여성 혐오를 '여성을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것'이란 뜻으로만 한정해 여성 공격적인 범죄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서강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미진(23·여) 씨는 "여성 혐오는 여성을 끔찍하게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만 말하는 게 아니다"라며 "동등한 인격으로 보지 않고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구조적인 폭력을 총망라하는 것인데 경찰이 그걸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여성혐오 범죄 해결에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자칭 페미니스트인 20대 여성 8명은 23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여성혐오범죄 전담 수사단을 꾸려달라는 시위를 펼쳤다.

시위를 주도한 용윤신(26·여) 씨는 "경찰이 이번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볼 수 없다고 한 건 현재 여성의 삶이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이라고 강조했다.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시민들이 '묻지마 살인' 사건 피해자 여성 추모글을 남기고 있다. 피해자 20대 여성은 지난 17일 강남역 인근 상가 화장실에서 본인이 평소에 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용의자 김모씨에게 흉기에 찔려 숨졌다. (사진=박종민 기자)

 

◇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외침…여성 혐오

이들 여성이 경찰의 논리를 거듭 반박하며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라고 규정짓는 이유는 그동안 쌓인 사회 구조적인 폭력의 두려움이 임계치에 달했기 때문이다.

박명주(23·여) 씨는 "화장실 살인 사건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피해자가 생긴 것"이라며 "여자들은 '모든 여자'가 안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성 혐오라는데)공감한다"고 말했다.

김수빈(23·여) 씨도 "화장실 몰래카메라, 소라넷, 살인 등 그동안 축적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들이 잦았다"며 "지금 20대 여성들이 반발하는 것은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표현인 것"이라고 말했다.

4년째 혼자 살고 있는 서 모(24·여) 씨는 "사건 이후 모르는 남자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면 너무 겁이 난다"면서 "여성혐오 범죄를 이야기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 공격적인 범죄에 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화여대 허라금 여성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여성들이 일상에서 공포를 느끼고 행동의 제약을 받는데, 그러한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면서 "여성들이 공포를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사회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대학교 이나영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구조적 성차별에서 발생한 성관련 폭력으로 규정해야 한다"며 여성 혐오가 아니라는 경찰 판단에 대해서는 "경찰이 단선적인 인과구조만 생각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여성 혐오를 말하는 사람들은 가해자를 여성혐오자로 처벌하자는 게 아니다"라며 "그동안 성 관련 폭력에 침묵, 동조, 묵인, 방조했던 많은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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