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여고생'은 열여덟 여고생의 홀로 여행기이다. 직접 발로 뛰며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홀로 아파하다, 즐거워하다, 울적해지는 ‘나만의 여행’이었다. 특별한 여행지나 대단한 에피소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에 올린 셀카 사진과 여행담은 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았다. 낯선 여행지를 혼자서 뽈뽈거리고 다니는 여고생이 흥미로워서? 삼각대를 세워놓고 ‘나’를 사진으로 담아낸 여고생의 발칙한 일탈이 재미있어서? 여기에 대한 슬구의 답은 단순하다. 홀로여행을 하며 세상의 온기를 느끼고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슬구의 목표는 명문대학의 입학증명서가 아니다. 바로 지금 행복한 삶을 사는 것. 좀 더 나다운 삶을 찾는 것이다.
슬구의 사진과 글을 읽고 홀로여행을 떠났다는 친구,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 위해 슬구를 주제로 한 여행 ppt를 만들고 있다는 친구, 입시준비에 지쳐 힘이 들 때마다 슬구의 사진들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는 친구, 그리고 우울증을 앓던 삶에 슬구의 글이 한 가닥 희망이 되었다는 연지….
책 속으로추운 날씨 탓에 나뭇잎들이 얼어서 걸을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좋았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는 특히 더. 그래서 나는 풀숲만 찾아 걸었다.
길거리든 남의 집 담벼락이든, 내 마음에 들면 마냥 좋았다. 이곳은 별로다 싶으면 바로 발걸음을 옮겼고, 생각보다 너무 좋은 곳을 갈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어둑해질 즈음 숙소로 돌아가곤 했다. 시간과 계획의 틀을 버리니 여행은 좀 더 나다워졌다. 이번 여행의 계획은 딱 하나였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좋아하는 곳을 찾는 것.
세상에 빈틈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마치 제주의 돌담처럼.
멀리서 보았을 땐 내가 저 나무보다 키가 클 줄 알았지. 타이머를 꾹 누르고 나무 옆으로 뛰어가는데 생각보다 나무가 훨씬 큰 거 있지?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버렸어. 그러면 저 꼭대기에 손은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말이야. 하지만 택도 없었지. 원래는 나무와 어깨동무를 하려 했는데, 어쩐지 열매마냥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돼버렸지 뭐야.
여행은 마음이 울컥하는 거예요. 바로 옆 동네일지라도 그곳이 당신의 가슴을 뛰게 했다면, 그것은 여행이에요.
10대에는 10대만이 느끼고 경험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인생에 한 번뿐인 나의 열여덟을 추억할 때, 독서실에 처박혀 의미 없이 샤프를 돌리는 나보단 오늘의 나를 떠올리고 싶었다.
삶이 사막이라면 여행은 우물을 찾는 과정이 되겠지.
제주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깨끗한 푸른색과 따뜻한 녹색쯤이 좋겠다.
넓디넓은 세상에 비하면 우리의 인생은 한없이 짧다. 우리는 부지런히 걷고, 경험하고, 또 행복해야 한다.
삶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기 때문에 삶이 여유로운 것이다. 여행은 사치가 아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파란 도화지 같은 하늘은 무엇을 그려도 작품이 될 것만 같았고, 그래서 나는 나를 그렸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억새풀을 휴지통에 버렸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걸 버린 게 참 아쉽더라. 그 순간의 억새는 딱 그거 하나뿐인데, 말려둘 걸. 코팅이라도 해서 꼭 간직해둘 걸. 그래서 가끔 열여덟의 내가 생각날 때, 꺼내어 볼 걸.
엄마, 저는요. 혼자 돌아다니며 세상의 따뜻함을 느꼈고, 그만큼 앞으로 나는 무수히 많은 슬픔을 겪게 될 거라는 걸 알았어요. 하지만 잘 이겨낼 수 있다고, 슬픔보다 따뜻함이 더 많은 세상이라는 것도 알아요. 엄마, 저는 이런 여행을 하고 있어요.
10초의 타이머 앞에서 모델이라도 된 양 한껏 포즈와 표정을 짓다가, 찰칵 소리와 함께 다시 수줍은 여고생으로 돌아온다. 나는 그 10초 사이의 슬구가 좋다. 그 10초를 만드는 카메라가 좋다.
인생이 딱 한 번뿐인 항해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아주 튼튼한 돛을 만들고 있는 거야. 어떤 돛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평생의 항해는 달라지지. 아주 튼튼한 돛을 만들기 위해선 찢어지는 방법도, 구겨지는 방법도 알아야 해. 그래야 어떤 폭풍우를 만나도 끄덕 없는 돛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살면서 딱 하나 헤퍼도 좋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웃음이 아닐까?
그래서 나도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 진짜 행복한 일이 많아지길 바라면서.
사막 한가운데 숨겨진 오아시스처럼, 소복이 쌓인 눈에서 피어나는 야생화처럼. 우리는 마음속에 작은 낭만을 품어야 한다. 낭만이 없는 삶은 메마른 사막, 생기 없는 겨울이다.
여행을 다녀와서 망설였던 걸 시도하기도 하고,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에게 용기 내 메시지를 남겨보기도 한다. 나는 그날 밤의 천장을 기억한다. 생각에 잠겨 몇 시간을 껌뻑거리며 바라보았던 이층침대의 나뭇결을 기억한다.
여행을 마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난 다시 치열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여행은 뜻밖의 모습으로 내게 스며들어 있다. 난 좀 더 진실 된 미소를 지을 수 있고, 인내할 수 있으며, 따뜻한 소통을 할 수 있다. 여행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날 성장시킨다.
자신 있게 걸어가세요.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다시 되돌아오면 되니까. 대신 조급함은 잠시 내려두기. 지름길엔 없는 뜻밖의 풍경을 마주칠지 누가 알겠어요?
‘넌 어떤 사람이니?’ 그 답을 찾기 위해 나는 또 여행을 한다.
슬구(신슬기) 지음/ 푸른향기/220쪽/14,000원
60대 엄마와 30대 아들의 세계여행 완결편, '엄마, 내친김에 남미까지!'가 출간됐다. 앞서 출간한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에 이어 태원준 작가의 세계여행 완결편이다. 이번 책은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중남미의 장대한 자연 속에서 500일간의 여정을 아름답게 마무리한 모자의 코끝 시큰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제대로 된 조명 하나 없는 멕시코시티 지하철역에서 시작된 여행. 중남미에 대한 무서운 소문에 베테랑 여행자인 모자도 졸아들었다. 하지만 길 위의 천사 같은 이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여행은 시작됐고, 그렇게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모자 앞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펼쳐지는데!
여전히 물 공포증으로 고생하던 엄마가 상어와 함께 스노클링을 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치킨버스라 해야 할지, 닭장버스라 해야 할지 모를 비좁은 현지 버스에서 그 어떤 스턴트맨보다도 멋진 차장의 액션활극에 넋이 나가고, 온두라스의 택시 안에서 맥가이버 칼까지 꺼내드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다. 또한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물개와 이구아나, 바다거북과 수영하는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우유니 소금 사막과 이구아수 폭포에서 장대한 자연을 온 마음으로 만끽한다.
500여 일, 70개 국, 200여 개 도시. 이동 거리만 약 10만 킬로미터, 이동한 시간만 1270시간. 이 시간 동안 아들은 세계는 물론 '엄마' 여행했다고 고백한다.
책 속으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런 기이한 여행들을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아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으셨던 것이다. 당신이 딱히 즐겨하는 일이거나 능숙한 일이 아님에도 아버지는 당신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나서고 보는 아들과 여행을 하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으셨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등산도, 낚시도, 하다못해 숙소를 찾는 것도 능숙하지 못한 분이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설 때는 늘 웃으셨다. 나는 지금도 그 작은 웃음이, 잠시 한눈팔았다면 보지 못했을 그 따뜻한 웃음이 너무도 그립다. _262쪽, 〈문득 떠오른 이름〉
2015년 1월 1일 0시. 한여름에 여행을 시작해서 어느덧 해가 바뀌었다. 여기는 마추픽추 유적 바로 앞에 위치한 작은 마을 ‘아구아스 깔리엔떼스’. 마추픽추에 오르려면 쿠스코를 거쳐 무조건 들러야 하는 전진기지와도 같은 곳이다. 나는 엄마를 위한 새해 선물로 무려 마추픽추를 준비했다. 엄마의 환갑 선물로 세계여행을 계획한 아들인데 새해 선물로 마추픽추 정도는 드려야 하지 않겠나? 하하하. _281~282쪽, 〈당신의 드림 스폿, 마추픽추〉
엄마가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엄마를 여행했다. 풍경을 여행하는 것도, 시간을 여행하는 것도 모두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했지만 엄마를 여행하는 것이 내겐 최고의 여행이었다. 여행을 함께하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엄마의 삶을 탐험했다. 엄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엄마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봤고, 엄마의 삶에서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을 함께 감탄하고 추억했다. 때로는 여행하는 것보다 엄마와 교감하는 시간이 더 재미있고 흥분되었다. 멋진 풍경을 보는 것보다 활짝 웃는 엄마의 얼굴을 보는 게 더 좋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보다 엄마의 박수 소리를 듣는 게 더 좋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미처 몰랐던 엄마를 차근차근 여행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_358쪽, 〈엄마를 여행한 시간, 5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