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 이런 초식남들이 나타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일본의 경제 상황과 사회문화적인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앞선 세대의 아버지들은 육식남이었다. 즉, 가부장적인 남성 모델을 따랐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직장에서는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집안에서는 권위를 인정받았다. 자녀의 교육과 부모의 봉양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한다는 명목으로 남성의 우월성을 존중받으려 했다. 그러나 이에 시달린 여성들은 황혼 이혼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바쁜 일과 속에서 얼굴을 잘 볼 수 없던 자식들은 아버지 취급을 하지 않았다. 말년에 육식남들을 기다리는 것은 오갈 데 없이 외롭고 병든 자신뿐이었다. 이를 지켜본 아들 세대는 결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기보다 자신에게 더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런 행위에는 언젠가 아내와 아이가 곁을 떠날지도 모르는 가족생활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물론 예전과 달리 양질의 일자리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자신 한 몸 건사하기도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아버지나 남편상에 대한 바람직한 롤모델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초식남들은 책임질 일을 기피하고 섹스마저도 혼자 해결하기 시작했다.
- 29~30p, 「젊은이들은 왜 섹스를 안 하려고 할까?」 중에서
신간 '우리는 왜?: 일상이 바뀌는 29가지 궁금증'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던 사실에 '왜'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 책은 우리가 왜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1장은 '젊은이들은 왜 섹스를 안 하려고 할까?'같은 발칙한 질문으로 우리의 일상을 낱낱이 해부하고 편견을 파헤친다.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지만 야동은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현실, 혈액형이 사람의 성격을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여전히 A형은 소심하다고 믿고 심지어 트리플A형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저자는 너무나 널리 퍼져있어 종종 맹목적인 믿음으로 변신하는 편견의 원인을 다양한 접근을 통해 파악하고 분석한다.
제2장에서는 '왜 내가 없을 때 내 욕을 하는 걸까?', '한국 드라마에 출생이 비밀이 많은 까닭은?'같은 질문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유별나게 두드러지는 특수한 현상의 실체와 내막을 신랄하게 까발린다.
제3장에서는 'SNS를 하면 할수록 외로워지는 까닭', '힐링 콘텐츠가 간과하는 것들', '유명인들은 왜 일찍 운명을 달리했을까?'같은 문제를 통해 개인의 심리적 상태가 사회 속에서 문화적 현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남의 불행을 보면 행복해지는 심리', '점점 더 달달해지는 한국 음식' 등에 대해 의혹어린 시선으로 차가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5장에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굴레에 대해서 날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소수의 슈퍼스타가 99%를 다 가져가는 승자독식의 고리, 암울한 현실에도 짱돌을 들지 않고 침묵하는 젊은이들을 최근에 불거진 '금수저·흙수저' 논란을 통해 말하며 한국 사회의 암울한 현상을 독자들과 고민하고 나누고 싶어 한다.
'우리는 왜?'는 내 안의 속물근성을 건드리고, 감정적이고 다수의 논리에 휩쓸리고 말았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본문 중에서치유와 힐링 코드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찾아내지만 정작 상처를 주는 사람이나 제도, 문화 등에는 관심이 없다. 멘토들은 위로를 하기 바쁘고, 세상은 온통 상처받은 피해자로 가득 찬 것 같다. '미움'을 받는 것 역시 부당한 피해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맥락의 책이 잘 팔리기에 이른다. 물론 상처를 받은 피해자의 아픔은 존재한다. 그러나 피해자와 '피해자 코스프레'는 다르다. 힐링 코드는 약자로서 배려를 받고 상대적인 우위를 확보하려는 피해자 코스프레의 심리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 누구나 다른 이들에게 의도와 상관없이 상처를 줄 수 있고 받을 수도 있으며,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다. 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보다 당한 일을 호소하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상처의 원인을 간과한 힐링 코드는 피해자 코스프레와 영합해 관련 상품과 서비스만 늘릴 수 있다.
- 97~98p, 「갔더니 힐링이 좀 되던가요?」 중에서
남을 의식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인은 외부의 평가와 인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서울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좁은 지역에서, 인구 과밀화가 심한 곳에 살기 때문에 경쟁이 심해지고, 그럴수록 뒷담화는 활발해진다. 약자로 내몰리거나 의사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뒷담화로 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와 권력을 가진 강자들은 뒷담화를 할 필요가 없다. 앞에서 바로 말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고 인정에 목말라한다. 동의하지 않는 뒷담화에도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서 취직이나 연봉 협상, 승진 등 생존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 59~60p, 「왜 내가 없을 때 내 욕을 하는 걸까?」 중에서
그런데 이런 낭만적인 나홀로족의 증가를 반기는 쪽은 어디일까? 바로 기업이다. 기존 시장이 포화 상태인 상황에서, ‘솔로 이코노미(1인 가구 경제)’를 이루는 싱글이 많아질수록 주택, 가정용품, 식재료, 가전제품, 옷, 공연, 안전장치, 식당 등에서 새로운 수요가 생기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1인용 전기매트, 미니 온풍기, 100리터 미만의 1인용 냉장고와 미니 세탁기 등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경제지에서 나홀로족에 대한 찬사가 많은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홀로 쪼개져서 시장 상품의 생산과 소비를 늘리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 79p, 「나홀로족이 많아지면 누가 좋을까?」 중에서
모든 것이 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인간을 불안과 고독의 심리에 빠져들게 했다. 자신의 열정과 의지로 운명을 개척하면서 자존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스스로가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에서 따를 수 있는 실패에 대한 우려는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고독한 개인은 네트워크를 통한 연결을 욕망하게 되었다. 이는 네트워크 이론의 바탕이 된다.
- 124~125p, 「왜 SNS를 할수록 외로워질까?」 중에서
네덜란드 학자 루트 빈호벤의 국가별 행복 수준에 따르면,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의 행복 지수가 높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친사회주의 정책에 따라 중산층을 확충하여 침실 세 칸이 딸린 주택과 혼다 어코드를 몰 수 있는 비슷한 삶의 수준이 유지되는 환경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역시 행복한 정도로는 상위권에 올랐는데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이나 스위스의 절반이었다. 아일랜드에는 '남과 비교하지 말고 네가 가진 것에 감사하라'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한 사회에서 남의 불행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살기가 팍팍하다는 증거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여유가 넘치는 그런 곳이야말로 현대의 이상향이 아닐까.
- 154p, 「남의 불행을 보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