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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은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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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배고픔에 관하여'

 

‘배고픔에 관하여' 는 나와 너의 배고픔, 나아가 이 세상의 배고픔에 주목한다.
‘배고픔에 관한 백과전서라고 불러도 좋을 이 책에는 '우리의 위(胃)가 가득 차 있는가, 비어 있는가?'에 따라 일어나는 온갖 일들이 다 담겨 있다. 끼니때마다 찾아오는 익숙하고 개인적인 배고픔부터, 건강을 위한 단식과 절식, 다이어트, 거식증, 종교적 금식, 단식 투쟁, 세계의 절반을 짓누르는 고질적인 기근까지.

우리가 왜 배고픔을 느끼는지, 배고플 때 우리 몸과 정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과학적인 원리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알기 쉽게 설명한다.

저자 샤먼 앱트 러셀은 '배고픔'이란 현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넓고 깊게 탐색한다. 무관해 보이는 것들을 연관시키고, 인류애와 연민을 바탕으로 기근의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는 태초에 배고픔이 있었고 세상 끝에도 배고픔이 존재하며, 우리 인간 존재는 배고픔이라는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배고픔이 곧 우리 숙명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1장 '단식 광대'에서 러셀은 굶주려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참담하게 무너져 가는 인간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소설 세 편을 소개한다. 요즘 말로 하면 굶주림 행위 예술가쯤 될 인물이 등장하는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단식 광대」, 실제 자신의 체험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을 인용하면서 '배고픈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오래된 사회 통념을 되짚어 본다. 생명(삶)이 줄 수 있는 것을 뛰어넘는 무엇, 바꿔 말해 형이상학적 고상함을 갈구하면서 굶주림의 실체를 외면하도록 학습된 우리를 러셀은 "우리는 모두 단식 광대다."라는 표현으로 압축해서 정의한다.

"배고픔은 자기 몸 못지않게 친밀한 주제이다. 점심을 먹기 직전에 내가 느끼는 것이 배고픔이다. 내 몸뚱이, 내 가슴, 내 허벅지만큼이나, 나는 배고픔을 생각한다. 내 어머니는 대공황 때 배고픔을 겪었으므로, 내가 지금의 나인 것은 일부분 그때 그 배고픔 때문이다. 내가 지금의 나인 것은 대부분 나는 비자발적 배고픔을 겪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의 나인 것은 배고픔이 내 세포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이 특정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배가 고프다. 우리는 그네를 타듯 평생토록 배고픔과 배부름이라는 두 기둥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지금도 배고픔은 혈류를 타고 우리 몸속을 돌고 있다. 배고픔은 시상하부에 있는 종을 뗑그렁뗑그렁 쳐 댄다. 배고픔이 우리를 부엌으로 몰고 간다. 우리 자리는 조수석이다. 우리는 모두 단식 광대다."(28쪽)

이 책의 6장은 온전히 '단식 투쟁'에 할애되어 있다. 단식 투쟁가들에게 단식이란 강한 자를 향해 던지는 ‘다윗의 돌멩이’라고 러셀은 말한다. "단식 투쟁가들은 믿는다. 단식의 목소리가 지닌 힘은 그 목소리의 제공자가 지닌 힘과 반비례한다고. 단식이 약자에게는 힘을, 소심한 자에게는 용기를, 강자에게는 겁을 줄 수 있다고. 단식의 목소리는 억눌린 자를 해방하고 불의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99~100쪽)
20세기 초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실비아 팽크허스트 모녀를 위시한 여성 참정권 운동가, 즉 서프러제트 운동가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단식을 선택한다. 그들은 일부러 감옥에 수감된 뒤 짧게는 3일, 길게는 30일 동안 단식 투쟁을 지속한다. 위기를 느낀 당국은 독방이나 징벌방에 가두기도 하고, 잼, 닭고기, 과일 같은 음식으로 유혹하기도 하지만, 서프러제트 운동가들은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급기야 당국은 코나 입으로 고무관을 집어넣고 음식을 투입하는 강제 급식을 실시한다. 실비아 팽크허스트는 강제 급식 첫날을 “겁탈당한 여자처럼 공포스러웠다”고 회고한다. 영국 여성들은 1918년에 불완전한 투표권을 얻었고, 1928년에야 마침내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얻었다.

러셀은 단식 투쟁의 표상과도 같은 간디의 삶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간디가 "영국 정부에 맞서 단식한 적은 아주 드물었"으며 오히려 "인도의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 사이에서, 힌두교도와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낮은 계급층인 불가촉천민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연이어 단식을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7장과 8장은 배고픔에 관한 의학계의 본격 연구에 관한 내용이다. 살아 있는 생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만큼 이 연구는 필연적으로 윤리 논쟁에 휘말려들 수밖에 없고, 실험 대상을 모집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이런 난관을 헤치고 역사상 어떤 연구자들보다 정밀하고 생생한 논문을 남긴 이들이 있으니, 2차 세계대전 시기 나치 치하 바르샤바 게토에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동포들을 돌본 폴란드 유대인 병원 의사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연구를 위해서 환자들을 굶긴 것이 아니다. 굶고 병들어서 죽은 시체가 거리에 나뒹구는 참상 속에서 유대인 의사와 간호사들은 자신들에게 할당된 식량을 환자들과 나누며, 즉 그들 자신도 함께 굶으며 굶주림이 우리 몸을 어떻게 파괴하고 정신을 좀먹는지,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처참하고 극적인지 낱낱이 기록한다. 이 연구를 주도한 이스라엘 밀레이코브스키 박사는 연구 프로젝트의 최종 원고에 덧붙인 짤막한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굶주림은 벽으로 둘러친 게토 내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 징후는 우글거리는 거지 떼와 거리에 즐비하게 누워 있는 시체였다. ……동료 의사들 중에도 굶주린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도 연구를 중단하는 사람은 없었고, 어떤 홍보도 하지 못하는 그 연구를 묵묵히, 겸허하게 수행했다."(131쪽) 연구 결과 굶주림 질병에 "합당한 굶주림 치료법은 오직 음식뿐"임이 밝혀지지만 의사들은 자신들이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를 기록하는 것 말고는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 참혹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의사든 간호사든 환자든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강제 수용소나 게토 안에서 나치에게 살해당한 이들이 태반이고, '바르샤바 게토 봉기'에 참가했다가 부상해서 죽은 이도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도 많았다. 굶주림 질병 연구를 시작하는 데 이바지했고, 강제 이송 화물차까지 질질 끌려가야 했던 이스라엘 밀레이코브스키 박사는 다음과 같은 예언으로 굶주림 질병 연구 논문의 서문을 끝맺었다. "그러니 그대는 그대가 이룩한 일로써 그 졸개에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주 죽지는 않으리라고."(145쪽)

이 책은 인간학 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hunger'를 단일 주제로 삼아 단순한 배고픔부터 비자발적인 굶주림, 전쟁으로 인한 기근 등을 폭넓게 다루면서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생존 본능과 사회적 동물로서의 활동을 다각도로 톺아본다

이 밖에도 러셀은 임신부가 열 달 내내 자신이 섭취한 양분을 기꺼이 태아한테 먹이지만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릴 경우 임신부 자신의 생존에 더 힘쓴다는 실험 결과나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기근에서 비롯된 식인 풍습 등을 다채롭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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