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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전태일이 '헬조선'에 심은 씨앗…"우린 기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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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0년 11월 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스스로 몸을 불사른 스물두 살 청년이 있습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이 된 전태일(1948~1970) 열사죠. 그는 왜 일터요 삶터였던 그곳 시장에서 근로기준법 책자를 껴안은 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사그라져야만 했을까요.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그가 남긴 일기와 글을 소개합니다. 자료는 전태일재단 홈페이지(www.chuntaeil.org)에서 빌려 왔습니다. [편집자주]

◇ 필름 없는 가짜 X레이 검진…하루 13시간 노동에 휴일은 고작 월 2회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영정을 가슴에 품은 전태일 열사의 모습을 나타낸 작품(사진=전태일재단 홈페이지)

 

진단을 받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건강진단이라고 인정할 수 없으며, 진단을 하던 의사를 믿을 수 없습니다. 서류상의 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X(레이) 촬영시 필름을 사용하는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근로조건: 종업원의 직종 ①재단사 ②미싱사 ③시다.

①재단사는 대부분 남자로서 연령은 23~50세 층으로 1200명이며 1개월 월급은 평균 3만 원. ②미싱사는 전체가 여성으로서 연령은 18~23세 정도이며 1만 2000명, 1개월 월급은 평균 1만 5000원. ③시다는 전체가 어린 소녀이며 연령은 13, 15, 17세의 다층이며 1만 2000명, 1개월 월급은 3000원입니다. 4, 5년 전 책정된 임금임.

1일 작업시간 평균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1개월 작업시간 28일(첫주와 삼주 휴일) 336시간.

③번에 해당하는 시다들은 시간수당이 없으며 연령이 어린 관계로 장시간의 많은 작업량과 정신과 육체적으로 성장기에 있으므로 정·육(정신과 육체) 발육 과정에 재기할 수 없는 심한 피해가 됩니다.

진정인 대표
평화시장 종(업)원의 침목회인 삼동 침목회 회원 일동

대표 전태일, 서기 이민섭, 정회원 신진철 최종인 김영문 조병섭 강진환 주현민, 별첨 93인

◇ "밤거리 뒷골목 누비고 다녀도…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말라"

1965년 8월 25일 오전 5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그럴까요?

존경하시는 신사숙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삼키며 밤거리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사랑만은 단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말라.

◇ "휴식시간에도 햇빛 받을 장소가 없음"…평화시장 실태조사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갓 취직했을 때 동료 시다·미싱보조들과 함께한 전태일(뒷줄 왼쪽에서 세번째·사진=전태일재단 홈페이지)

 

호수 286호 3층까지 호당 10명의 종업원, 평화시장 직공명수는 약 1만 명. 825호 가, 나, 가, 나 중 1줄은 이층 가계로 제외, 뒷골목 통일상가 동화시장까지.

전체 명수 1만 명에서 직책별로 나누어 보면 미싱사 약 4000명, 시다 4000명, 재단사 300명, 재단보조 400명, 기타 시아계·공장장·점원 300명, 주인·주주 1000명, 합계 1만 명.

하루의 작업시간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10시 30분까지 1일 14시간 작업, 1달 920시간 중 372시간, 휴일은 매달 첫주일과 삼주일 2일, 국제 근로 기준의 2배에 해당하는 시간임.

급료는 직책별 재단사 1만 5000원에서 3만 원까지, 미싱사 7000원에서 2만 5000원까지, 시다 1700원에서 3000원까지, 재단보조·시아계 점원 3000원에서 1만 5000원까지.

연령별 직책은 12세부터 21세까지 시다, 19세부터 38세까지 미싱사, 22세부터 50세까지 재단사, 17세부터 25세까지 재단보조·점원. 12세부터 21세까지 여자 시다가 하루 수당 70원, 14시간 작업.

건강상태
재단사: 100% 전원이 신경성 소화불량, 만성위장병, 신경통, 기타병의 환자임. 미싱사: 90%가 신경통 환자임, 위장병, 신경성 소화불량, 폐병 2기까지. 시다: 평균 15세 어린이들로서 하루 14시간의 작업을 당해내지 못함. 평화시장 종업원 중 경력 5년 이상 된 사람은 전부 각종 환자임. 특히 신경성 위장병, 신경통, 루마치스가 대부분임.

시장 안의 구조는 현대식 3층 건물로서 1층은 점포, 2~3층은 공장임. 1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건물이면서도 환기 장치가 하나도 없으며, 더구나 휴식시간 오후 1시부터 2시까지에도 햇빛을 받을 장소가 없음.

작업정도는 우리나라의 어떤 노동보다도 제일 힘과 정신이 빨리 피로해지는 노동임. 정신적, 육체적 최하 노동. 공임은 우리나라에서 여기보다 더 싼 데가 없음. 경영주들은 서로 경쟁을 직공들의 공임에서 함. 가령 하루에 8시간을 작업하고 1개월 급료가 1만 원인 사람과 하루에 15시간을 작업하고도 1개월 급료가 1만 원밖에 안 됨.

◇ "방치된 어린 동심을 빨리 구출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사진=전태일재단 홈페이지)

 

사업계획(목적)

정당한 세금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도 제품 계통에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경제인에게 입증시키고, 사회의 여러 악여건 속에 무성의하게 방치된 어린 동심을 하루 한시라도 빨리 구출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나는 이 사업을 위하여 보잘 것 없는, 물질적으로 본다면 1달러의 값도 없는 나의 전부를 여기에 바칠 것이다.

◇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근로기준법 준수하는 일"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

무엇을: 제품계통에서 근로자를 위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일
누구와: 제품계통에 종사하는 어린 기능공들과
언제: 1970년 음력 6월 이전에
어디서: 서울평화시장에서

이 일을 하려면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가? 1969년 4월달부터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문제는 1968년 12월에 착상한 것이다. 나 자신이 꼭 해야 될 문제로 생각했다. 그러나 1969년 서울특별시 근로감독관실에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심사도 받지 못하고 말았다. 나 자신이 너무 어리다고 무시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직접 제품사업을 시작해서 정당한 세금과 기능공을, 기계와 다른 인간적인 배움의 적령기에 있는 소년 소녀들에게 여기에 합당한 대우를 하고도 사업이 성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사회의 여러 경제인, 특히 평화시장제품계통의 사업주에게 인식시키기 위함이다.

첫째는 사업자금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의 여러 복지가들에게 나의 목적하는 바를 이해시키고 자금을 구하는 것이다. 사회는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궁색하고 메마르지 않은 것을 믿기 때문이다 각자가 다 해방과 육이오를 겪은 강박관념을 떨쳐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정신적인 오해이다. 나는 사업 계획을 세워 놓았고 나를 도와서 일을 할 수 있는 여러 사람이 주위에 있다. 때문에 사업자금만 준비되면 일의 80% 이상을 행한 거나 다름없다.

지난 2012년 8월 28일 전태일재단 방문이 무산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서울 종로구 청계천 6가 전태일 다리로 이동해 전태일 열사 동상 앞에서 추모하려 하자 한 쌍용자동차 노조원이 드러누워 이를 거부하고 있다. 박 후보는 당초 서울 창신동에 있는 전태일 재단을 찾아 전태일 열사를 추모할 예정이었으나 "진정성이 없다"는 유가족 측의 반대로 무산됐다. (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자금을 구하기 위하여. 나는 학력이 없으므로 대학 동창이 없다. 또한 집안 친척들 중에도 나의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댈 만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나의 가진 것 중에는 사회에 내어 놓을 것이라고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 즉 한 쪽 눈을 사회에 봉사할 것이다. 눈을 사회에 봉사하고, 나는 사회의 자금주를 소개받을 것이다.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이 사업을 꼭 이루고야 말 결심이다. 아래 행하는 두 번째 방법이다

㈜BC 사업주에게 행할 수 있는 이득된 조건 제시. 나는 이 사업이 3~5년간 내가 전 권한을 책임지고 맡는 대신에, 이 사업이 완전한 궤도 위에서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자타가 공인할 시기엔 아무런 조건 없이 전부를 자금주에게 반환할 것이다. 자금주는 나의 온 정열과 한 눈을 바친 알찬 결실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건이 좋기 때문에 투자를 할 것이다. 나는 이 사업이 끝나면 경제계를 떠나서 주 사업에 일생을 바칠 것이다

1970년 3월 17일 10시 전태일

◇ "저희들의 요구는"…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중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 1일 10~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 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

◇ "근로감독관님께,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은 하루 15시간의 고된 작업으로…"

전태일 열사 장례식에서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아들의 영정을 껴안은 채 울부짖고 있다. (사진=전태일재단 홈페이지)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 번영을 이룬 것은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여러분의 애써 이루신 상업기술의 결과라고 생각하시겠습니다만은, 여기에는 숨은 희생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즉, 여러분들의 자녀들의 힘이 큰 것입니다.

성장해 가는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은 하루 15시간의 고된 작업으로 경제발전을 위한 생산계통에서 밑거름이 되어 왔습니다. 특히 의류 계통에서 종사하는 어린 여공들은 평균 연령이 18세입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여러분들의 전체의 일부입니까? 가장 잘 가꾸어야 할, 가장 잘 보살펴야 할 시기입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느 면에서나 성장기의 제일 어려운 고비인 것입니다.

이런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동심들에게 사회생활이라는 웅장한 무대는 가장 메마른 면과 가장 비참한 곳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메마른 인정을 합리화시키는 기업주와 모든 생활 형식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말살 당하고 오직 고삐에 메인 금수처럼 주린 창자를 채우기 위하여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곧 그렇게 해야만 현 사회의 극심한 생존경쟁에서 승리한다고 가르칩니다. 기업주들은 어떠합니까? 아무리 많은 폭리를 취하고도 조그만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합법적이 아닌 생산공들의 피와 땀을 갈취합니다. 그런데 왜 현 사회는 그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지 저의 좁은 소견은 알지를 못합니다.

내심 존경하시는 근로감독관님. 이 모든 문제에 한시 바삐 선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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