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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철과 술의 정치학…중국 한대의 개혁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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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금, 쇠, 술'

 

'소금, 쇠, 술'은 2,200년 전 중국의 한나라에서 벌어진 유례없는 논쟁을 기록한 책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와 국가 경영의 본질, 그리고 백성의 편안한 삶을 위한 정책을 놓고 수구 기득권 집단과 신진 개혁세력이 치열한 이론 투쟁을 벌인다.

"과연 정치의 본질은 무엇이고, 정치의 도道는 어디에 있는가? 국가는, 그리고 관리(정치인)는 백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소금과 철과 술의 전매제도의 유지와 폐지를 둘러싸고 고위 관리들과 소장 관리들이 소위 계급장을 떼고 벌인 논쟁을 통해 '국가란 무엇이고, 정치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한다.

"쓸모없는 관리들은 시급하지 않은 공공사업을 만들어 나라 재정을 낭비하며, 뒤로는 자기 뱃속을 불리고, 그 재물로 음란하고 사치스럽게 살며 조정에 기대어 탐욕을 해결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나라 재정은 늘 부족하고 아래 백성은 늘 궁핍한 것입니다. 지금 이런 근본적인 것들을 감소시키지 않고, 말단적인 것들로 나라 재정을 넉넉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름이 아닙니다."(본문에서)

이 책은 중국 한나라 때 소금과 철과 술의 이용과 유통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을 기록한 '염철론鹽鐵論'을 편역한 것이다. 이 논쟁은 중국 전한(前漢/서한)의 8대 황제인 소제가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진 이유와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논의를 하라고 어명을 내리면서 시작되었다.

이 토론에는 공경대부公卿大夫 등 보수적인 고위 관리들과 문학文學과 현량賢良 등 개혁적인 소장 관리들이 참여하였다. 논쟁은 주로 문학(현량)이 기존의 정책을 비판하면, 대부가 이에 대해 반박 내지 옹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문학은 국가 재정이 궁핍해지고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진 일차적 원인으로 소금과 철과 술의 전매제도와 균수법을 지적한다.(때문에 이 논쟁을 염철논쟁鹽鐵論爭, 혹은 염철주鹽鐵酒논쟁이라고 한다.)

그들은 소금과 철과 술의 전매제도와 균수법이 국가경제 및 백성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아주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며 그로 인한 폐해들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아울러 전매제도와 균수법이 가져온 관리들과 백성들의 인식의 변화, 즉 도덕과 예는 사라지고 오로지 이익만을 쫓는 세태에 대해서도 비판하며 이렇게 한탄한다. "옛날에는 덕德을 귀하게 여기고 이익을 천하게 여겼으며, 의義를 중요하게 여기고 재물을 가벼이 여겼습니다. …… 이에 공경하고 겸양하는 예가 찬연하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서는 예의가 무너져 내리고 미풍양속이 멸하여 종식되었습니다. 이에 녹봉을 받는 군자君子들은 의義를 버리고 재물만을 따르다 기울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어떤 이는 1백 년 동안 쓸 수 있는 재물을 축적했고, 어떤 이는 허기진 것을 채우고 몸을 가릴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토론의 주제는 다방면으로 진행되어, 국가 정책 전반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대외정책에 대한 양측의 입장차는 뚜렷하다. 즉 전쟁을 통해 주변 민족들을 복속시킬 것인가, 아니면 도와 덕에 기초한 유화정책으로 그들을 우방화할 것인가의, 국방정책 및 대외정책에 대한 시각차다. 전자를 지지하는 대부들의 입장에서는 국방비를 충당하기 위해 당연히 전매제와 균수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후자를 주장하는 문학들의 입장에서는 군사적인 대외정책이야말로 실질적인 효과도 없이 막대한 비용으로 국가 재정을 파탄시키고, 전쟁에 백성들을 끊임없이 동원함으로서 백성의 삶을 파괴하는 나쁜 정책인 것이다. 당연히 대외정책을 전환하면 전매제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문학들은 국가가 통제하는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하며, '나라는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마라'고 일갈한다. 나아가 '법과 형벌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며 폭압적이고 강경 일변도인 통치정책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한편 문학들은 많은 부분에 걸쳐 관리(정치인)들의 등용과 인사정책, 관리들의 마음가짐과 책임 등에 대해서도 논한다. 즉 관료와 정치가들에 대해 '1만 명의 노고를 먹는 자'로 규정하고, 그런 만큼 자신의 이익보다 1만 명의 바람을 먼저 생각하라고 주문한다. 관리들에게 관할 지역 백성들의 삶이 좌우되는 만큼 그들의 역할이 막중하고 책임 또한 중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군주가 재물은 사사롭게 주어도 되지만, 관직만은 사사로이 주지 말라'고 말한다.

이처럼 논쟁은 재정정책과 경제정책을 넘어 국방과 외교, 인사정책, 사회사상, 문화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결국 소장파인 문학(현량)들이 논쟁에서 승리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논쟁에서의 승리와 달리 현실적으로는 술의 전매만을 폐지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물론 백성들의 삶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각 정치세력들의 권력다툼이 숨겨져 있음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소금과 철과 술의 전매와 균수법 등의 재정정책을 유지할 것인가, 혹은 폐지할 것인가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한 기록이면서, 이를 통해 정치의 근본과 백성에 대해 보수 기득권 세력과 유학자인 신진세력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뚜렷하게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또한 당대 지식인들의 역사인식과 사상(철학), 백성들이 삶과 문화 등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면서, 국가의 역할과 정책에 대해 시대를 초월하여 현대 정치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 책이다. 국가의 힘이 기우는 시작은 권력의 주체가 어디인지, 그 근본을 잃어버리는 데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어떤지 짚어 보고 진단하여, 교훈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 가득하다.

원저인 '염철론'은 한나라 이전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전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원전 그대로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되도록 원전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이 조금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국가와 백성을 위해, 신랄하다 못해 피가 튀기는 듯한 치열함으로 논쟁을 벌이는 그들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현실과 대비되어 더욱 의미있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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