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아버지를 잃은 정명교 세월호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 정명교 대변인 (사진 =변이철 기자)
인천 용유초등학교 동창생 11명과 세월호를 타고 환갑여행을 떠났다가 사랑하는 가족과 영원히 이별한 고 정원재 씨.
그는 친구들의 권유에도 한사코 '단체 환갑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인천에서 두 아들과 함께 조경건설업을 했던 그에게 4월은 매우 바쁜 시기였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5일. 세월호는 밤 9시에 인천항을 출발했지만, 고 정원재 씨는 이날도 오후 1시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그런 그가 마음을 바꾼 것은 맏아들의 갸륵한 효심 때문이었다. 정명교(36) 씨는 아버지께 30만원을 드리며 "제주도에 가셔서 친구 분들과 맛난 것 드시고 좀 푹 쉬시라"며 거의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세월호에 오르게 했다.
그리고 다음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그로부터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인천가족공원 내에 건립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과 추모탑
◇ 초등학교 동창생 환갑여행…그리고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 지난 15일 낮 화창한 봄 햇살이 쏟아지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인천가족공원. 이곳에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건립됐다.
맏아들 정 씨는 세월호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원회 임원들과 함께 추모관 개관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추모관은 하늘에서 봤을 때 리본 모양을 형상화했다. 단원고 학생·교사를 제외한 일반인 희생자 45명 중 41명의 봉안함이 안치됐다.
봉안함 옆에는 가족사진과 함께 사랑하는 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유가족들의 마지막 편지도 들어 있었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희들 마음속에 계신 울 엄마 이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수천만 번을 봐도 수천만 번을 불러도 보고 싶고 보고 싶은 우리 아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이 세상 모두 잊고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거라."
추모관 안에서 상영되는 세월호 CCTV 영상
◇ "진상규명 의지 없는 건 세 살짜리 꼬마도 알아"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고통과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정 대변인은 "죄책감에 아버님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며 욕조에 찬 물을 받아놓고 한참 몸을 담그기도 하고 물속에서 견디기 힘들 때까지 숨을 참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추모관에는 세월호 내부의 CCTV 영상도 상영되고 있었다. 3층 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4층 갑판에서 밤바다를 보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밝은 표정의 단원고 학생들 모습이 또 한 번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 대변인은 "정부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대해 제대로 지원하지 않고 여당 추천위원들도 청문회에서 원고 읽듯이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유가족들은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여당이 뭔가 진실을 제대로 밝히고 싶지 않아한다'는 것은 이제 세 살짜리 꼬마도 다 알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20대 총선에서 서울 은평갑에서 승리한 '세월호 변호사'인 박주민 (43) 당선자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세월호 변호사인 박주민 후보를 국민이 이번 총선에서 선택한 것은 '세월호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 강하게 담겨 있다고 봐요. 팽목항에서 2년 동안 유가족들과 동고동락한 분이 국회로 가면 진상조사에 힘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추모관 내에 전시된 세울호 모형
◇ "국민안전처 생겼지만, 달라진 것 없어"추모관에는 정교하게 제작된 세월호 모형도 설치됐다. 마치 침몰 직전의 세월호를 두 손으로 건져 올려내는 듯한 모습이다.
4월 16일은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후속대책 담화에 따라 제정된 국민안전의 날이다.
국민안전처가 주최하는 국민안전다짐 대회가 열리고 중앙부처 장·차관과 시·도지사들은 직접 현장에 나가 안전실태를 점검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전보다 안전해진 걸까. 정 대변인의 생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2014년 4월 16일 이후의 대한민국은 변해야 한다'고 해서 국민안전처가 새로 생겼지만, 거기서 뭘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피부에 와 닿는게 하나도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