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을 치른 뒤 정부서울청사 인사혁신처에 무단침입해 필기시험 합격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추가시킨 20대 남성이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6일 오후 서울 미근동 경찰청을 나서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정부서울청사 인사혁신처에 침입해 7급 공무원시험 성적과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20대 '공시생'에 대한 경찰 수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국가중요시설 '가'급(최상급)으로 분류되는 정부서울청사가 공무원시험 준비생에게 5차례나 '뻥' 뚫렸지만 방호 책임 관련 형사입건자는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인사혁신처가 경찰에 비공개 수사의뢰하기 전 사무실 벽면에 적힌 비밀번호를 지운 행위도 '증거인멸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경찰은 판단했다.
인사혁신처 채용관리과 출입문 도어락. (사진=조기선 기자)
◇ 인사처와 행자부 주무관 지시로 일제히 삭제
공무원시험 준비생 송모(27)씨는 지난 2월28밀부터 4월1일까지 정부서울청사를 '제집 드나들듯' 휘저었다.
훔친 공무원증 3개를 이용하거나 상대적으로 보안이 취약한 지하주차장을 통해 정부서울청사 15, 16층에 있는 인사혁신처까지 아무 제지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송씨는 7급 공무원시험 성적과 관련 서류가 보관된 16층 채용관리과 사무실은 문이 잠겨 들어갈 수 없었지만 벽면에 적혀 있는 4자리 비밀번호를 보고 침입에 '성공'했다.
인사혁신처는 외부인이 공무원 컴퓨터에 무단으로 접속해 시험성적 등을 조작한 사실을 지난달 30일 파악하고 내부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외부인 침입 사실을 최종 확인한 인사혁신처는 이틀이 지난 4월1일 오후에 경찰에 비공개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 의뢰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 오후 1시쯤 채용관리과 주무관은 송씨가 침입 당시 이용한 벽면에 적힌 비밀번호를 지워버렸다. (사진=자료사진)
하지만 수사 의뢰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 오후 1시쯤 채용관리과 주무관은 송씨가 침입 당시 이용한 벽면에 적힌 비밀번호를 지워버렸다.
정부서울청사 침입이라는 파장이 큰 사건을 수사 의뢰하기 전에 사무실 비밀번호가 벽면에 고스란히 노출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허술한 보안체계를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라 생각해 삭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무실 비밀번호 벽면 기재는 채용관리과에만 해당되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정부부처가 입주한 서울청사 사무실 벽면 등에는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고, 청사 방호를 총 책임지는 행정자치부도 4월 1일 소속 주무관의 지시로 벽면에 적힌 비밀번호를 일제히 삭제했다.
모두 경찰에 수사의뢰 하기 전에 이뤄진 조치들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증거인멸죄 법리 적용을 검토했지만 형사입건 하지는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증거인멸죄는 자신이 징계를 받을까 두려워 실행했다면 다른 사람의 형사사건 증거라도 인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청사 보안의 책임소재는 청사에서 자체조사를 한 뒤 판단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인사혁신처 사무실에 침입한 경로와 과정에 대해서는 경찰 조사결과를 기관 통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부처 핵심기능이 몰려있는 정부서울청사에 외부인이 침입한 이번 사건은 피의자 송씨만 형사처벌 대상이고, 방호책임자는 자체 감찰 등을 통해 징계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