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등 국책금융기관과 시중 은행들을 상대로 불법 로비를 해 부실기업에 천억원대의 대출을 하도록 한 금융브로커들이 검찰에 붙잡혔다.
서울 남부지검 금융조사 제2부(부장검사 박길배)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혐의 등으로 최모(52)씨 등 5명을 구속하고,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5일 밝혔다.
또 터치스크린 제조업체 '디지텍시스템스'에 대출을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 챙긴 혐의로 산업은행 팀장 이모(50)씨 등 2명도 구속했다.
이들은 디지텍시스템스 등 기업사냥꾼들이 인수한 회사들이 2012년 12월부터 다음해 11월까지 국책은행 등으로부터 모두 1160억원 상당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불법 로비를 벌이고 뇌물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디지텍시스템스는 한국거래소에서 주식매매정지 처분을 받고 기업사냥꾼들에게 매각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거액의 대출을 받기가 곤란한 상황이었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대출이 어려워지자 기업사냥꾼들은 금융브로커들을 이용해 불법 로비를 벌여 거액의 대출을 받기로 계획했다.
동원된 금융브로커는 모두 11명.
최씨 등 3명은 한국수출입은행과 국민은행 등 국책금융기관과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게 해주는 대가로 2억2000만원~4억5420만원을 받아 챙겼다.
이들은 한국수출입은행과 국민은행, 농협 등의 관계자들에게 불법 로비를 해 400억과 280억, 50억원을 각각 대출하도록 만들었다.
금융브로커 곽모(41)씨와 이모(71)씨도 무역보험공사 관계자들에게 접근해 50억원 지급 보증서를 받아낸 대가로 3억 800만원을 받았다.
나머지 금융브로커 이모(52)씨 등 4명도 불법 로비를 벌여 휴대전화 배터리 제조업체 '엠피텍'이 130억원을 대출받도록 했다.
산업은행 이모(50) 팀장과 전 국민은행 지점장 이모(60)씨, 전 금융감독원 강모(58)씨는 직접 수천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고 대출을 해주거나 대출 관련 담당자를 알선했다.
각종 불법 행위를 통해 천억이 넘는 돈을 끌어다 썼지만, 디지텍시스템스는 지난해 1월 상장 폐지돼 대출금 855억원이 미상환된 상태가 됐다.
산업은행과 국민은행은 미상환 대출금을 부실채권으로 정리해 자산관리회사에 매각했고,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농협 등은 상각 처리하는 등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하다.
검찰 관계자는 "대출 관계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금융 기관 내부의 엄격한 사전 통제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해외로 피신하거나 달아난 금융브로커 김모(52)씨 등 2명의 행방을 쫓고 있다.
디지텍시스템스는 2007년 코스닥에 상장된 업체로 삼성전자에 휴대전화 터치스크린을 납품하던 회사였다.
2011년 기준 매출액이 2300억원에 달할 정도로 건실한 회사였지만, 2012년 2월 자본이 거의 없는 기업사냥꾼 일당에 인수됐다.
이후 기업사냥꾼들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14년 기소돼 중형이 선고됐고, 매출과 주가 조작 등이 잇따라 밝혀지면서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