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환도열차' 중.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연극 ‘환도열차’는 ‘세월호’의 ‘세’ 자 하나 언급하지 않는다. 소재 역시 세월호와 무관하다. 그럼에도 이 연극이 세월호를 지목한다고 느낀 것은 막바지에 등장하는 한 마디 대사 때문이다.
“오늘의 뉴스. 날씨 맑음. 나들이 가기 좋은 날. 현재 시간 4월 16일 오전 7시 35분.” - 미국 나사(NASA)에서 파견된 ‘환도열차’ 조사관 토미(김용준 분)의 대사 중.
◇ 과거에서 온 ‘지순’이 본 한국사회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던 사람들이 휴전 협정이 이뤄지자 다시 서울로 떠나는 환도열차에 몸을 싣는다. 그런데 이 열차가 1952년 서울이 아닌 60년 세월을 건너뛰어 2014년 서울에 도착하게 된다. 이것이 연극 ‘환도열차’의 시작이다.
함께 열차에 탑승했던 사람들은 모두 시체로 발견된다. 유일하게 ‘이지순’(김정민 분)이 살아남는다.
황당하면서도 판타지스러운 설정이지만, 장우재 연출은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평가답게, 탄탄하면서도 매끄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비현실적’인 내용이라 몰입이 안 되는 일 따위는 없다.
연극 '환도열차' 중.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연극은 과거의 인물 '지순'을 통해, 외적으로는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내적으로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시대 사람들의 자화상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잘 살기 위해 남을 짓밟아야 하고, 이기기 위해 사악한 계략마저도 서슴지 않는 한국사회의 이면이 연극 안에 압축돼 있고, 지순은 이에 대해 환멸을 느껴 자신이 살던 1950년대로 돌아가길 희망한다.
◇ 미국에서 온 ‘제인슨 양’과 ‘토미’가 바라본 한국사회
연극에서는 지순 이외에도 한국사회를 남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물이 더 등장한다. 바로 제이슨 양(이주원 분)과 토미(김용준 분)이다.
제이슨 양은 한국인이었지만 한국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미국으로 귀화한 인물이다. 나사(NASA) 직원 신분으로 ‘환도열차’를 조사하기 위해 동료 토미와 한국을 방문했다.
제이슨 양은 누구보다 한국사회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제3의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보길 원한다. 때문에 토미가 의문이 들 때마다 ‘한국은 이런 곳이야’라고 답지를 건넨다.
왼쪽부터 제이슨 양, 지순, 토미.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지순이 ‘과거-현재라는 시간의 축’에서 한국사회를 바라본다면, 제인슨 양과 토미는 ‘미국-한국이라는 공간의 축’에서 바라본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느낀 것은 제이슨 양보다 동료 ‘토미’를 통해 보는 한국 사회였다. 정확히 말하면 토미의 시각이 아닌, 토미의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한국 사회이다.
토미는 매일 아침 한국의 주요 뉴스가 핸드폰 알림으로 뜨게 했다. 그 주요 뉴스가 “모 짝짓기 프로그램 출연자, 화장실에서 자살” 등의 가십성 뉴스들이다. 토미는 이런 게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할 주요 뉴스로 나오는 한국이 이상하다. 하지만 제이슨 양은 그런 내용이 주요 뉴스가 되는 곳이 한국이라고 일러준다.
◇ 2014년 세월호 그리고 언론토미가 뉴스를 읽는 대사는 극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사족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초중반까지 비중도 없고, 있으나마나 할 것 같은 이 대사가 극의 화룡점정을 찍는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오늘의 뉴스. 날씨 맑음. 나들이 가기 좋은 날. 현재 시간 4월 16일 오전 7시 35분”이다.
극의 마지막 장면으로, 토미가 환도열차 조사를 마친 뒤(환도열차 지순을 태우고 다시 과거로 사라진다) 미국으로 떠나는 인천공항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한국의 주요 뉴스이다. 이 대사를 통해 연극 '환도열차'는 '세월호'를 우회적으로 언급한다.
이는 (장우재 연출이 '의도했다'고 직접 밝힌 바는 없지만) 세월호 사고 역시 극의 내용처럼 '돈'이라는 욕망만을 쫓는 괴물같은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물 중 하나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 사회가 고삐 풀린 말처럼 질주하는 데에 언론이 눈을 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장우재 연출은 이 공연을 2014년 3월 14일부터 4월 6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초연한 바 있다. 그런 그가 공연 종료 후 세월호 사건을 접했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장 연출은 올해 재연을 준비하면서 환도열차가 현재로 온 시간을 2016년으로, 아니면 2000년 이전으로 바꿀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2014년을 고집했다. 그리고 초연 때 넣지 않은 대사 "4월 16일"을 일부러 집어넣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과거에서 온 지순이 본 '욕망으로 뒤덮여 있는 한국', 미국에서 온 제인슨 양과 토미가 본 '가짜가 진짜를 뒤덮은 한국'을 계속 보여준 장우재 연출이, 과연 '세월호'에 대해 무어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세월호 참사로부터 2년이 지났다. 아직싸지 침몰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여전히 배는 가라 앉아 있으며, 9명의 미수습자가 있다. 배를 인양하자고 하면 '비용' 얘기가 나오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청문회가 진행되는데 이를 중계하려는 지상파 방송은 없다.
연극을 본 이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본 게 연극인지, 아니면 내가 살고 있는 여기가 연극인지.
~4월 17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중학생 이상 관람. 1만 원~5만 원.
문의 : 02-580-1300